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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인 연세대 교수(자료 사진).
문정인 연세대 교수(자료 사진). ⓒ 권우성

9월 들어 남북관계가 변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대승호를 송환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해 왔다. 남한은 100억 원 규모의 수해지원을 하겠다고 했고, 민간 쌀 지원도 허용했다. 전쟁기념관에서 강경대북조치를 선언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일에는 세습은 북한 내부 문제이며, 북한이 하기에 따라 제2개성공단도 가능하다고 했다.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이라고 표현하겠다는 계획도 접었다.

지난 20일 만난 문정인(59)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변화조짐이 분명하게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 현 정부 집권 이후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피로 ▲ 이명박 대통령의 상황인식 변화 ▲ 중국과 미국의 6자회담 재개 움직임 등을 이같은 변화가 나타난 배경으로 꼽았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은 앞으로도 남북관계에 큰 장벽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의 학자와 관료 중 유일하게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하는 등 남북관계 전문가로 손꼽히는 그는 "천안함 문제는 계속 제기하되 다른 문제는 또 그대로 병행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천안함 때문에 모든 현안을 인질로 잡을 수는 없다"고 조언했다.

긍정적 움직임 속에서도 역풍도 적지 않다. "북한의 비축 군량미가 100만톤 이상"이라는 말이 별다른 근거 제시도 없이 퍼지고 있다. 대북 쌀 지원의 근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주장이지만,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말을 꺼내자 정부당국자들이 이례적으로 분명하게 확인해 주고 있다.

문 교수는 이에 대해 "실제로 그렇다면 오히려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쌀 지원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관비용도 많이 들고 도정한 쌀은 1년 이상 저장하기도 힘든데 북한이 100만 톤 이상을 어떻게 보관하겠느냐"는 것이다. '100만톤 이상 비축'이라는 주장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시각에서 나온 역설적 표현이다.

문 교수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북한의 후계문제에 대해 국내의 상당수 전문가들이 이달 28일에 열리는 당대표자회가 김정은의 후계공식화를 위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과는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그는 "공자보다 더 유교적인 사회가 북한인데, 당장 아무런 업적도 없고 인민에게 봉사한 기록도 없는 김정은을 후계로 임명할 만큼 김정일 위원장이 비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라면서 "지난 13일 톈진에서 열린 하계다보스 포럼에 나온 중국국제문제연구소의 북한 문제 전문가인 양시위 선임연구원, 옌쉐통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 등 중국 인사들도 나와 의견이 같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때 '북한의 승계위기'에 대해 발제했었다.

다음은 문답 전문.

- 최근 남북관계가 해빙으로 가고 있다고 보나.
"그렇게 본다. 지극히 당연한 수순 아닌가. 남북관계는 본질적으로 모순관계다. 서해에서는 교전을 하면서도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선이 오가는 그런 관계이다. 분쟁 구조가 내재화, 장기화될수록 이런 모순 관계를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갈등공간을 최소화하고, 평화와 상생의 공간을 극대화하는 게 관건이다. 불행히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밝은 쪽은 죽고 어두운 면만 계속 부각됐다. 이제 순리대로 가야 한다. 북한 당국과 접촉하고 대화하고 따지다 보면 천안함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생길 수도 있다. 남북이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사과를 받아내겠나. 다소 희미하긴 하지만 정부가 남북관계를 선순환 관계로 전환시키려는 의지가 보인다."

"MB정부 대북정책 변화 조짐 분명히 보인다"

-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은 분명히 보인다. 무엇보다 국민이 대북정책에 대한 피로증후군에 빠져 있다. 국민의 거부감이 가시화되고 있는데 대북 강경책을 계속 고수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상황인식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이번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서 한국-북한-러시아 3국 협력 구도를 강하게 시사했다. 시베리아 종단 철도, 러시아와 가스 파이프라인 연결 등 이 대통령이 희망하는 것은 북한과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즉, 러시아, 중국이라는 새로운 생존과 번영의 공간을 확충하기 위해서도 북한과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 같다. 이것도 하나의 변수로 작용한 것 아닌가 한다. 사실 철도, 가스 파이프라인 건은 2004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러 때 논의되었던 것인데 이번에 재확인한 것이다.

그동안 대북강경책을 써서 얻은 게 뭔가. 북한과 중국 관계를 더 결속시켰고, 미중관계, 한중관계 다 나빠졌다. 북한과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더라도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관계를 강화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한국 외교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이득보다 손실이 훨씬 더 크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도 지금쯤은 남북관계에 획기적 전환이 이뤄져야 대북정책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다. 최소 퇴임 2년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했어야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늦게 했다. 주변 환경도 변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미국도 6자회담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잘못하다가는 한국만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는 조급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금의 변화가 나온 것이라고 본다."

- 정부가 G-20을 앞두고 북한을 관리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G-20을 앞두고 한반도 안보 환경을 악화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회담 전까지 적극적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주된 이유라 보진 않는다. G-20 변수 때문에 대북 정책을 바꾼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아무튼 그런 전술적 행보가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전략 구도에도 영향을 주리라 믿는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불과 3개월 만에 중국을 재방문하고, 44년 만의 당대표자회를 연다고 발표해놓고 아무런 말도 없이 연기했다. 뭔가 상황이 생긴 것 아니겠나.
"어떤 상황? 우리가 이상하게 보니까 그런 것이다. 동요의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과 미국 정상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날 때도 있다. 북중 정상이 자주 만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그리고 김정일이 중국으로부터 후계자 인정을 받으러 갔다고 하는데, 중국은 주변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 중의 원칙이다. 만약 김정은이 후계자로 따라갔다면 헤드테이블에 앉혀서 오히려 부각시키지 않았겠나. 그랬다면 그게 당연히 밖으로 샜을 것이다. 당대표자회도 우리 언론이 너무 과잉 반응을 한다. 때가 되면 열릴 것 아닌가. 지금 북한에 대한 접근이 너무 지나치게 과거 크렘린을 연구하던 크레믈리놀로지(kremlinologyㆍ크렘린학)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천안함 때문에 모든 현안을 인질로 잡을 수는 없어"

- 남북정상회담까지 가려면 결국 천안함 문제가 관건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힘든 문제다. 남북 군사 실무회의가 열릴 것 같은데 일단 여기서 어떤 논의가 될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북한을 만날 때마다 천안함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사과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천안함 문제는 계속 제기하되 다른 문제는 또 그대로 병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가는 것이다. 5.24 조치 때는 민간인 접촉도 못하게 했는데 지금은 풀어주고 있다. 옳은 선택이다. 천안함 때문에 모든 현안을 인질로 잡을 수는 없다. 일본이 '일본인 납치 사건'을 빌미로 6자회담을 인질로 삼으면서 얼마나 많은 비판을 받았나.

그런데 이번 실무회의에서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공동 조사하자고 제안할 경우,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 지난 3일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의장 이상우)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방선진화방안을 보고하면서 북한의 도발의지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능동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이게 명문화될 것 같은데, 어떻게 봐야 하나.
"안보점검총괄회의에서 제안을 한 상태인데, 수용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만약 군의 전반적 교리로 채택된다면 전쟁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능동적 억제'는 상대방이 공격의도만 보여도 먼저 공격하겠다는 사실상의 선제타격론(pre-emption doctrine) 아닌가. 이는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사회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선제타격론을 고집하는 나라는 현재까지 이스라엘밖에 없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해온 민군합동조사단이 5월 20일 오전 10시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는 가운데 과학수사 분과장인 윤종성 준장이 어뢰 추진체 실물을 설명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해온 민군합동조사단이 5월 20일 오전 10시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는 가운데 과학수사 분과장인 윤종성 준장이 어뢰 추진체 실물을 설명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미국이 이라크에 24만 투입하고도 실패했는데, 북한에 무슨 안정화?"

- 샤프 주한 미군 사령관이 "지난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때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북한 안정화 연습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한미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 작성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변경한 것으로 봐도 되는 것 아닌가.
"개념계획 5029를 작계로 전환하려면 정치적 판단과 결정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에서 승인을 해 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정화를 위한 북한 개입이란 것만큼 비현실적인 게 없다고 본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부터 안정화라는 게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미국은 아프간에서도 이걸 내세웠다. 이는 북한의 우발사태 발생 시 군사 개입해 북한을 안정화하겠다는 것 아닌가. 미국이 이라크에 24만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해서도 안정화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발상이 나오는지 의문스럽다.

현 정부에서도 준비는 하는데 아직은 작전계획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때 안정화 관련 부분적 연습은 했을 수 있지만 작전계획 5029에 따른 본격적인 훈련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럴 경우 별도의 예산, 인원 등이 동원되어야 할 터인데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 개입할 근거 자체가 없는 것 아닌가.
"국제법적으로 근거도 없고,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대규모 살상이나 기근이 생길 경우 '인류의 이름'으로 개입할 수 있다. 르완다, 다르푸르 등에 대한 유엔의 개입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은 '안정화'가 아니라 '인도주의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이다. 샤프 사령관이나 한국 정부가 말하는 안정화는 북한의 급변 사태와 대규모 동요 발생 시 군사 개입을 통해 이를 안정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결국 이것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여 안정화하겠다는 것인데 제국주의적 발상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다분히 현실과 동떨어진 오만한 발상이다."

- 정부에서는 "북한의 비축 군량미가 100만톤 이상"이라고 확인하고 있다. 이게 확인될 수 있는 사안인가.
"북한 정보 수집에 구조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다. 탈북자네트워크를 통해 북한 첩보가 들어오면 국내 언론이 인용하면서 팩트가 된다. 당국자들도 이에 의존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맞는 것을 별로 못 봤다. 화폐개혁 문제 맞혔다고 하는데 단둥 쪽에선 이미 나왔던 이야기로 안다. 

군량미 100만톤도 그런 점에서 회의적이다. 구체적인 자료를 내줘야 할 문제다. 그리고 북한이 군량미 100만톤 이상을 어떻게 보관할까. 보관을 위한 비용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더구나 도정한 쌀은 오래 보관할 수도 없다.

동독 출신이고 북한에서 산 경험도 있는 루디거 프랭크라는 비엔나대학 교수는, 쌀은 저장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남한에서 주는 쌀을 군이 먹게 되면 군이 비축했던 군량미가 민간인에게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남한 쌀을 군용으로 비축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한다.

정말로 북한이 군량미를 100만톤 이상 비축하고 있는 게 맞다면, 오히려 대북 쌀 지원을 활성화해야 한다. 100만톤 이상을 어떻게 보관하겠나. 보관비용도 많이 들고 도정한 쌀은 1년 이상 저장하기도 힘들다. 결국 군으로 전용될 부담이 없는 것이니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쌀 지원을 해도 된다는 의미 아닌가."

- 추석 이후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에 대해 전망한다면.
"우리 정부가 천안함 문제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의 조기 재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이런 반전의 대세를 잘 활용하여 남북 관계를 잘 관리해 나간다면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2년 9월 당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납치 일본인 문제와 관련하여 북측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개최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본 동북아 정세는 어떤가.
"나는 두 세션에 참석했다. 첫 세션은 '북한의 승계위기'에 대한 것이었다. 중국국제문제연구소의 북한 문제 전문가인 양시위 선임연구원, 옌쉐통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 일본의 시게무라 토시미츠 와세다대 교수,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등이 토론을 전개했는데, 전반적으로 북한에 승계위기가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지금 단계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3남 김정은에게 권력을 승계한다는 것은 북한의 정치 로직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보다 더 유교적인 사회가 북한이다. 지금 당장 아무런 업적도 없고 인민에게 봉사한 기록도 없는 김정은을 후계로 임명할 만큼 김정일 위원장이 비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정통성 없는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나와 중국 인사들의 대체적 의견이었다.

그리고 북한이 지금 급변사태가 날 정도로 불안한 상태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작년 4월 개편 이후 국방위원회는 군과 당, 그리고 국가보위와 치안을 담당하는 주요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국방위원회가 북한의 일상적 국정 운영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급변사태는 예상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따라서 북한을 하나의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
문정인 연세대 교수. ⓒ 권우성
- 두 번째 세션은 어떤 것이었나.
"'아시아 세기에서 미국'(America in the Asian century)이라는 주제였다. 고노 타로 일본 자민당 간사장 대행, 추이 리루 중국 국제관계연구중심소장, 찰스 모리슨 미국 동서문제연구소장,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 그리고 내가 발제했다. 나는 '미국의 세기'와 '아시아의 세기'를 대척점에 두고 이분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아시아의 일원이기 때문에 이런 접근은 옳지 않다. 애써 말한다면 현재는 미국의 세기와 아시아의 세기가 중층적으로 존재하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문제점은 군사력은 세계 최강인 반면 경제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군사적 패권력과 경제력 사이에 괴리현상이 생기면서 아시아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매우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7000억불에 가까운 국방 예산이 앞으로 4~5년 후에 4000억불 수준으로 감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태평양 주둔 미군의 감축 및 철수가 기정사실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이 지역에 대한 안보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힘의 진공상태가 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 든다면 동북아의 전략적 불안정은 고조되기 쉽다. 미국은 국력 쇠퇴에 따른 새로운 외교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중심의 양자 동맹을 떠나 역내 다자안보협력 구상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토마스 프리드만은 이 세션에서 매우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세상에는 상상력이 높은 사회와 낮은 사회가 있는데, 미국은 전자이고 중국은 후자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경제적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문제는 워싱턴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brain dead Washington(두뇌가 멈춘 워싱턴)'이라는 표현을 했다. 현재와 같이 마비된 워싱턴 정치로는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프리드만은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선거구 게리맨더링으로 재선율이 86%에 달해 워싱턴은 정치적 무풍지대가 되고 있으며, ▲각종 여론조사와 폭스TV 같은 케이블 매체의 등장이 워싱턴 정치인들로 하여금 장기적이고도 큰 미래를 보지 못하도록 하고 근시안적 시각만 갖게 만들고 있으며, ▲워싱턴 로비정치와 금권정치가 변한 게 없다는 것, 즉 워싱턴이 로비스트의 포로가 돼 있다는 것이고 ▲인터넷 등을 통한 사이버 린치(lynch)의 확산이 건전한 비판 기능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4년 주기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이 상시화되면서 대통령의 초당적 정책 개발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간분야는 미국이 리드하겠지만 정치력, 외교력에서 미국의 지도력은 한계가 있다고 했다."

- 오랫동안 외교부를 봐왔는데, 유명환 장관 딸 특혜 채용 파문은 어떻게 판단하나.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고시나 특별채용 제도는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투명성이 있다고 본다. 유 장관 딸의 경우도 2006년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외교부에 계약직으로 들어간 것으로 안다. 결혼으로 사직했다가 그 자리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편법을 쓴 것 같다.

이 문제로 외교부가 과도하게 비판받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일본, 영국 같은 나라는 외교부 자녀들이 외교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군인 집안에서 군인이 배출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어능통자 전형으로 2004년에 없어진) 2부시험도 문제점은 있었지만 제도 자체는 옳다고 본다. 국내에서만 있었던 사람들에 비해 상사원 자녀, 해외공관에 나가 있는 주재관 자녀들은 외국어 능력이나 국제관례 등에 익숙해 바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하지만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것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는 3대가 사관학교 출신이고 경찰 출신이라고 하면 미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나. 외교관 자녀들이 현지감각이나 어학이 우수한데 오히려 제한을 받는 것은 역차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외교관 자녀들끼리도 경쟁한다. 구조적인 특혜문화가 작동하고 있다면 장차관, 실·국장급 자녀들만 외교부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지 않은가. 또 사회 구조적으로 유불리가 없는 영역이 어디 있나. 부익부 빈익빈이 대표적인 것 아닌가.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도 얼마나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런 점도 있다. 외교관 자녀들 중에서 대다수는 MBA나 로스쿨로 간다. 집안이 부유한 것도 아니고 3~4년마다 이 나라 저 나라로 이사를 다니면서 고생하는 부모들을 보니까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외교관 자녀들의 80~90% 이상이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안다. 외교부를 희망하는 자제들은 그리 많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명박#김정일#대북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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