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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초대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빗속에서 초대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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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인 나에게 올 추석은 특별하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별나다고 할지 몰라도 난 왠지 모르게 중3의 마지막 추석이라는 말이 아쉬웠다. 아마도 내년부터는 바빠질 것 같기도 해서 그런 맘이 든 것 같다.

추석을 앞두고 할머니 댁이 있는 마을에서 노래자랑을 한다고 했다. 할머니 댁은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에 있다. 그래서 중3의 추석을 기념하기 위해 노래자랑에 나가기로 했다. 혼자서 나가는 것도 좋지만 동갑인 사촌 혜미와 같이 나가기로 했다.

추석날 노래자랑에 나가려고 하니 마음이 들떴다. 며칠 전부터 혜미와 만나서 무슨 노래를 할 것인지 정하고, 안무도 짜고 추임새도 넣어가며 준비를 했다. 우리 10대가 즐기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장소가 시골이라는 점을 감안해 트로트를 부르기로 했다. 우리가 고심 끝에 부르기로 한 노래는 박주희의 '자기야'였다.

추석 전날(21일)이 됐다. 노래자랑은 오후 7시쯤 하는데, 우리는 점심을 먹고 만나서 준비를 했다. 며칠 전부터 목감기에 걸려서 목소리가 걸걸하게 나왔지만, 목소리를 최대한 트로트화해서 열심히 연습을 했다.

무대 앞 관객(주민)들이에요!
 무대 앞 관객(주민)들이에요!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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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자랑 참가 대기 중, 추억의 물건을 보고 반가워서 하나 사달라고 조르고 있어요^^.
 노래자랑 참가 대기 중, 추억의 물건을 보고 반가워서 하나 사달라고 조르고 있어요^^.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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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에 가서도 틈나는 대로 혜미와 노래를 맞춰 보고 연습을 했다. 두근두근!!!!! 드디어 기다리던 노래자랑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를 하고 노래자랑이 열리는 마을회관 앞으로 나갔다. 중부지방에선 비가 많이 내린다는데, 다행히 보름달이 보여 안심이 됐다.

마을회관 특설무대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노래자랑이 시작됐고, 우리는 출연 신청을 했다. 아홉 번째 순번을 받았다. 앞선 출연자들은 '자옥아'를 부르기도 했고, 나이 지긋하신 출연자는 분위기 잡고 트로트를 열창하기도 했다.

경험 삼아 오른 무대,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상품 욕심이

곧 우리 차례가 됐다. 아∼ 긴장이 됐다. 욕심도 생겼다. 처음에는 경험 삼아 재미로 참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시간이 다가올수록 상품에 욕심이 조금씩 생겼다. 상품은 대형 냉장고와 세탁기부터 자전거와 친환경쌀까지 푸짐하게 나와 있었다.

무대는 조금 허접스러웠다. 나와 혜미가 너무 기대를 한 탓일까? 우리는 가수들이 공연하는 그런 대규모의 무대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뭐 어때? 이런 작은 무대에서 훌륭한 솜씨를 뽐내고 끼를 보여주면 되지. 최대한 열심히 해서 내 끼를 발산해야지∼!!!!'

'그대가 좋아~' 소절을 부르고 있어요... 표정이 뭔가 이상한데^^.
 '그대가 좋아~' 소절을 부르고 있어요... 표정이 뭔가 이상한데^^.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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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차례가 되었다. 사회자가 "이혜미·이슬비씨"를 불렀다. 우리는 무대에 올라 듀엣으로 노래를 했다. 무대 위에 서니 조명 때문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막상 무대 위에 올라가니 떨리기도 했지만 자신감도 생겼다. 우리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자기야∼하! / 자기야 사랑인 걸 정말 몰랐니 / 자기야 행복인 걸 이제 알겠니 / 자기를 만나서 사랑을 알았고 / 사랑을 하면서 철이 들었죠 / 나만의 사랑을 / 나만의 행복을 /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잖아요 / 어쩜 좋아(어쩜 좋아) / 자기가 좋아 / 멋진 그대(멋진 그대) / 자기가 좋아..."

노래를 부르면서 '여기서 내 모든 끼를 발산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나름대로 열심히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가려는데, 사회자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그러고선 어디에서 온 학생인지 물었다. 우리는 중3이고, 둘이 사촌 사이라고 밝혔다.

사회자는 "이대로 내려가긴 아쉽지 않냐"면서 장기를 하나 보여 달라고 했다. 혜미는 조금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춤에 자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혼자라도 춤을 출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사회자의 신호에 맞춰 갑자기 디스코풍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회자께서 저에게 자신있는 장기 하나 해보라고 말하고 있어요!
 사회자께서 저에게 자신있는 장기 하나 해보라고 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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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디스코풍의 노래가 나오기에 찌르기춤을 추고 있어요!
 갑자기 디스코풍의 노래가 나오기에 찌르기춤을 추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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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날부터 춤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최신 춤은 물론이고 70·80도 상관없이 유행한 춤은 꽤나 꿰뚫고 있었다. 흘러나온 디스코풍 음악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음악이 무슨 상관이야? 그냥 본능대로 음악에 몸을 맡기지!'라는 생각과 함께 음악에 몸을 맡겨 버렸다.

평소 모습 그대로 흔들어 버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춤을 추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는 조금 민망했다. 그런데 내가 지나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야! 저애 춤춘 애다!", "저 애는 최소한 인기상은 따놨다!" 등등. 민망한 것도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부모님께서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셨다. 그러면서 "잘했다", "대견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도 모르게 턱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께서는 "그냥 몸만 조금 흔들 줄 알았다"고 하셨다.

비가 내려서 우산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
 비가 내려서 우산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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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상은 떼어놓은 당상"이라고 했는데... 속절없이 쏟아지는 비

그때까지는 날씨가 좋았다. 하지만 우리가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우리의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우리 다음 순서의 참가자들은 비를 맞고 노래를 불렀다. 우산을 쓰고 노래를 하는 출연자도 있었다. 이따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초대가수의 노래도 이어졌다.

초대가수의 노래가 끝날 무렵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모두들 비를 피하느라 특설무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대 조명이 꺼지기도 했다. 주최측에서는 비가 멈추는 대로 다시 노래자랑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사람들도 잠시 비를 피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비는 계속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 노래자랑을 취소한다고 했다. 다음 날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밴드와 조명 팀도 다른 일정이 있다고 했다.

그럼 상품은... 내년 추석 때 노래자랑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절망했다. 심사위원들도 "네가 춤을 잘 춰서, 적어도 인기상은 떼어놓은 당상이었다"고 했는데... 아쉬웠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재밌는 하루였다. 아쉽기는 했지만 정말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내년 추석 때도 노래자랑에 다시 참가해야겠다. 기회가 되면 전국노래자랑에도 한번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경험은 좋은 선생님이야!!!

관객석에서 보이는 무대모습입니다~!
 관객석에서 보이는 무대모습입니다~!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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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슬비 기자는 광주동신여중 3학년 학생입니다.



태그:#노래자랑, #대치리, #대전면민 노래자랑,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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