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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신문>에서 마주 보이는 마이산. 가을 전령사인 고추잠자리가 여론의 균형추 역할이라도 하려는 듯, 마이산 두 봉우리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
 <진안신문>에서 마주 보이는 마이산. 가을 전령사인 고추잠자리가 여론의 균형추 역할이라도 하려는 듯, 마이산 두 봉우리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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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 우리 지역에 제대로 된 언론 하나 있다면 얼마나 큰 행복일까?'
'우리 마을에, 우리 지역에 올곧은 기자 몇몇이 있다면 얼마나 큰 자산일까?'

명절 귀향길 또는 귀성길에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음직한 명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정기간행물 등록현황에 따르면 2008년 4월 현재 전국 일간신문은 222개, 주간신문은 2896개사에 달한다. 10년 전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서울에 있는 일간지는 110개, 주간지는 1544개로 거의 절반씩 차지한다.
 
그나마 풀뿌리 지역주간신문들은 일간신문들과 달리 부침이 매우 심하고 경영사정이 열악해 휴·폐간 신문을 제외하면 정상적으로 발행되는 신문이 약 360여 개 정도로 추정된다. 게다가 많은 지역신문들이 차지하고 있는 신문시장의 점유율도 형편없다.

소통의 쏠림과 집중, '미디어 1극'·'초강력 중앙집권주의' 심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지발위)가 2006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신문의 구독 신문시장 점유율은 일간신문 10.2%, 주간신문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머지 80% 이상은 전국지들이 점하고 있다. 또한 한국언론재단 조사에 따르면 1996년 69.3%에 이르던 신문구독률은 2000년 59.8%로 떨어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10명 가운데 7명이 신문을 봤지만 2000년에는 6명으로 줄었다는 얘기다.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소통담론은 홍수 사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철철 흘러넘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처럼 한 대도시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미디어의 서울 집중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더 심하다. 이 같은 소통의 쏠림과 집중은 미디어 1극 구조와 더불어 초강력 중앙집권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는 요인으로 꼽힐 만하다.

이러한 소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론의 균형추를 찾기란 더욱 힘들다. 그러는 사이에 전국 일간 신문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거대 중앙 일간지들에 의한 정보와 여론의 독과점적 지배 체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어려운줄 뻔히 알지만 풀뿌리 지역언론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지역의제를 충실히 좇아 여론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풀뿌리 지역언론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인터넷-소셜 미디어의 빠른 진화와 뉴스 수용자의 정보이용 패턴의 변화에 '신문 종말론'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위기감이 날로 더해가고 있는 마당이다. 그런데 여전히 희망을 노래하는 지역신문들이 더러 있다. 이들은 지역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시대에 둔감한 것일까, 미련한 것일까?   

분명, 열악한 환경에서도 '지역이 소통의 중심이 돼야 한다'며 지역의제만을 고집하는 지역신문들이 있다. 개념조차 모호했던 편집 자율권이라든가 언론 윤리, 지역사회 독자와 관계 정립 등이 지발위를 통한 지역신문지원제도 이후 제도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점도 풀뿌리 언론에 기대를 건 사람들에겐 희망이다.

"벌이 다 죽었어요, '부애'가 나요" 할머니 기자들의 현장감 넘치는 기사들

진안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직접 쓴 기사를 진안신문사로 매일 가져온다.
 진안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직접 쓴 기사를 진안신문사로 매일 가져온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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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들에겐 그런 지역신문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자산인지 모른다. 5년 연속 지발위의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대상사로 선정된 전북 진안군 진안읍에 위치한 <진안신문>은 지면을 주민들에게 기꺼이 내주고 있다.

매년 이농인구가 늘어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지만 마을 주민 누구나 기자로 참여하고 있다. 초중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어린이기자단,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참여하는 노인기자단, 다문화이주여성기자단 등 다양한 유형의 기자단을 운영하고 있어 이젠 마을의 귀중한 자산이 됐다.     

벌이 다 죽었어요. '부애'(부아)가 나요. 양벌이 와서 병을 옮겨써요. 그래서 벌이 꿀을 다 먹었어요. 벌이 아파서 나으려고 꿀을 다 먹었어요. 벌꿀을 팔아서 용돈을 잘 해서 썼는데, 큰일 났네요. 고추도 탄저병이 와서 못 땄어요. 그러니 멀 먹고 살아요. 허리가 아프고,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데 멀 먹고 살아요.

이 마을에 사는 정문순(69) 할머니가 서툰 글씨지만 직접 써서 올린 글이다.


벌을 키우는데 올해는 벌이 병이 나서 벌 셋끼가 다 빠져 버리면서 시나버로 다 없서지고, 씨까지 없서져 걱정됌니다. 왜 그런지 벌이 셋끼가 빠지면서 벌이 다 없서저요. 으쩌면 조월찌 답답합니다.
믿십년을 *에주정니하게 미기는데 왜 그런지 벌이 다 없서저서 애간장이 탔습니다. 약도 없고, 무어설 해야 할 지 답비 없섬니다. 이데로 가면 종자도 없시 다 없서지게 생깄습니다.

역시 같은 마을 권정이(68) 할머니가 사진과 함께 직접 써온 기사 내용이다.

마을에 꿀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데 대한 시골 할머니들의 현장감 넘치는 기사들이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 있는 주간신문사가 5년 연속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대상사에 선정돼 같은 지역(전북권) 내에 난립한 12개 지역 일간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진안신문> 노인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정이(68) 할머니가 사진과 함께 직접 써온 기사가 정식 기사로 채택됐다.
 <진안신문> 노인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정이(68) 할머니가 사진과 함께 직접 써온 기사가 정식 기사로 채택됐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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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형상을 따라 물을 휘감은 용담댐,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하고 기이한 풍경을 안겨주는 마이산의 거센 기와 풍경을 마주한 때문인지 진안읍 입구에 위치한 <진안신문>은 '진안군민과 함께하는 신문'이라는 푯말 문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쌀값 안정 대책 수립하라!'
'차례용품, 재래시장에서 구입해요'

<진안신문> 1면 제목들이 신선하다. 다른 일간지들과는 다르다. 지면을 넘기기다보면 귀농인, 다문화 여성의 삶. 사람 사는 이야기, 어울림, 어린이 마당이 쏙쏙 눈에 들어온다. 12면이지만 많은 지면을 아낌없이 지역과 주민들에게 내주고 있었다. 추석 연휴에도 취재와 편집, 데스크까지 맡고 있는 박종일(35) 편집국장을 만나 그동안 애환과 생존전략 등을 들어 보았다.

"사람 귀한 지역, 그래도 사람이 희망... 인턴기자 지원제도 없어져 아쉬워"

<진안신문> 박종일 편집국장.
 <진안신문> 박종일 편집국장.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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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사를 창간한 지는 얼마나 됐나? 또 언제부터 신문사에서 일했는지 궁금하다.
"2004년 우석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아내의 고향인 이곳 신문사 취재기자로 첫발을 디뎠다. 신문사는 장모님(김순옥, 57)이 1999년 10월 1일 창간했으니까 올 10월 1일이면 창간 11주년이 된다."

- 많은 주간신문사들 중 지발위 지원대상사로 5년 연속 선정된 곳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을 지원받고 있으며 지원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주로 편집장비와 인터넷 서버, 카메라 등 장비 지원을 받고 있다. 사람이 궁한 농촌마을에서 초기 인턴기자 지원은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면서 인턴기자 지원제도가 중단돼 아쉬움이 크다. 편집권 독립과 언론 윤리의식 등이 많이 고취된 것도 지원효과로 볼 수 있다. 12개 지역 일간지 종사자들과 관공서 직원들이 주간신문이라고 깔보며 따돌리는 형태도 많이 사라졌다."  

- 지발위 발전기금을 연속해서 지원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철저한 지역중심 의제설정 원칙과 편집권 독립,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높게 평가된 것 같다. 귀농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도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귀농가족과 다문화여성, 농촌의 희망 찾기 등을 주제로 한 기획기사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주민들이 지역신문에 관심을 갖고 취재에 쉽게 응해주고 신문도 많이 구독해 주고 있다."

"비판기사 쓰면 일간지와 관공서에서 압력... 그래도 주민 기자들 있어 든든"


- 이곳 신문시장 규모는 어떤가? 전북지역에만 12개의 일간지가 난립해 있고, 중앙지와 방송사, 인터넷신문들도 많아 틈새시장이 좁을 텐데, 구독가구는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한때 15만여 명에 달하던 군민이 용담댐 수몰 이후 4만여 명으로 줄더니 지금은 2만7천 여 명에 불과하다. 계속 이농인구가 늘지만 다행히 최근에는 귀농하는 인구도 상대적으로 점점 늘고 있다. 다문화 이주여성이 200여 명에 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신문은 일주일에 12면씩 2800부의 유가지만 제작해 유료로 공급하고 있다. 지방 일간지들보다 많은 유가부수를 이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힘들었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결과가 아니다. 11년 동안 쌓아온 노력의 결과다."

- 조·중·동을 비롯한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의 이 지역 판매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다른 지역보다는 덜한 셈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모두 합쳐 약 100부 정도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만큼 주민들이 지역신문을 많이 사랑하며 구독하고 있다는 증거다."

- 취재과정에서 어려움은 없는가?
"전주나 다른 지역에 소재한 일간지 기자들이 관공서 기자실을 장악하고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기자실 출입제한이라든지 비판기사를 쓰면 그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여러 인맥을 동원한 압박이 뒤따르곤 한다. 심지어 광고주들도 일간지들 편이어서 주간지는 광고를 잘 주지 않는다. 설사 어쩌다 광고를 준다 해도 관공서 또는 회사명을 알리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당당하게 취재하고 기사의 질로 승부할 것을 늘 스스로 다짐하고 후배 기자들에게도 주문하고 있어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 인력은 부족하지 않나?
"현재 3명의 취재와 편집인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두 멀티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진, 편집, 취재, 인터넷 활용능력을 다 갖추어 손발이 잘 맞는다. 문제는 간혹 경력이 쌓인 기자들이 다른 지역 일간지나 방송사로 옮기는 경우가 있어 공백을 채우느라 힘든 때가 있다."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 지역신문이 해야"

농사일을 하면서 <진안신문>을 11년 전 창간한 김순옥씨와 박 국장의 관계는 '장모와 사위'. 누군가는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 늘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한다.
 농사일을 하면서 <진안신문>을 11년 전 창간한 김순옥씨와 박 국장의 관계는 '장모와 사위'. 누군가는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 늘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한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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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주민 기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주로 누가 참여하고 있으며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있는가?
"매우 반응이 좋다. <진안신문>의 가장 큰 장점이자 희망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신문제작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기자와 노인기자 그리고 다문화여성기자들이 거의 매일 쉬지 않고 기사를 직접 작성해 신문사로 가져오거나 인터넷으로 올린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글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비록 제대로 된 맞춤법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가족과 마을, 지역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서 직접 신문사로 가져오고 있다. 그분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그래서 지면을 가급적 더 많이 할애하려고 한다."

- '신문이 위기'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역신문의 생존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그리고 지역신문을 계속하기가 두렵지 않은가?
"지역과 사람이 있는 한 전혀 두려울 게 없다. 귀농인구가 늘고 있어 오히려 희망이 보인다. 간혹 신문들이 주민들에게 외면당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일부 종사자들의 일탈 행위로부터 비롯된 이미지 실추와 관공서 위주의 폐쇄된 취재관행 때문이다. 이런 점을 타파하고 지역밀착과 더불어 콘텐츠의 질적 개선, 부정적 이미지 개선은 지역신문 제자리 찾기의 양대 축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와 음성적 유착 관계에서 벗어나 보완적 협조관계로 전환돼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누군가는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신문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태그:#신문위기, #마을신문, #진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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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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