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 지난 2008년 600년이란 긴 세월동안 우리의 역사를 간직한 국보 1호 숭례문의 화재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온 국민에게 깨닫게 했다. 이러한 계기로 다시 한번 지역의 역사문화를 되새기고 선인들의 지역문화를 되돌아보는 생각으로 울산지역의 근대역사의 상징인 등록문화재 제103호로 예스런 분위기는 도시 사람들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언양 성당을 찾았다.
언양읍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있는 언양 성당, 그곳에서는 오래된 고딕 건축양식의 건물이 그곳을 찾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산 아래 그 멋스러움이 너무나 고풍스러워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성당 입구를 지나 약 800m를 걸어 올라가면 성모동굴로 향한다. 성모동굴로 향하기 위해 올라야 하는 작은 길, 숲길이 나오고 길 따라 올라가는 내내 마음은 어느새 묵상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언양성당은 1936년 울산지역에 최초로 건립된 맞배지붕의 고딕풍 석조 2층 건물로 일제 강점기에 서구에서 유입된 종교 건축의 수용 및 정착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립한지 벌써 80년 된 언양성당은 부산교구의 유일한 고딕식 석조(石造)성당으로 파리외방전교회에서 부임한 초대신부인 에밀 보드뱅(Emile Beaudvin) 신부가 명동성당을 건축한 중국 기술자들을 데려다와 성당주변의 화강암을 재취하여 성당을 완공하자, 울산 주민들이 도시락을 싸갖고 걸어와 '뾰족탑 솟은 돌집'을 구경하는 관광 코스이기도 했다 한다.
성당 건물 내외부가 건립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종교적․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기도하다. 성당의 평면은 미완성된 구조라고 하는데 정면과 측면은 석재로 마감되어 있으나 뒷벽은 벽도로 처리 되어 미래에 신자수가 증가할 것을 예상하여 증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특히 언양성당은 박해를 겪다 불수호조약(1886년)으로 선교권을 얻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마을 중심, 높은 곳, 역사적 장소에 천주교 이미지를 가장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고딕양식으로 성당을 지었다는데 바로 그 모델이라는 종교역사가들의 해석이다. 또한 언양지역은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 직후 그 선조들로부터 신앙의 씨를 이어 받아 첫 신자인 김교희, 오한우로부터 200년의 선교역사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품고 있는 곳이다. 숱한 박해의 역경을 딛고 면면히 이어 내려온 신앙의 유산들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잊혀지고, 과거 속으로 묻혀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음에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단순히 기록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과거의 사건을 현재와 연관 지어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즉, 지나온 발자취를 안다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정할 수 있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울산에 살면서 매번 지나쳐만 다녔던 언양성당의 본 모습 뒤에 감춰진 묵언의 자세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한참 길을 따라 오르면 순교자 오상선의 묘가 나오고 또 십자처 올라가는 길이 자연스레 나타난다. 자연 그대로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십자처의 모습을 보는 순간 또 다른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렇게 길 따라 언양성당을 잠시 뒤로 하고 숲길을 올라가면 자연 동굴 속 자비의 성모상이 말없이 반겨준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냥 아무런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순수함, 그것이 언양성당 성모상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한다. 오랜 역사의 깊이와 감탄이 절로 나는 고딕의 건축, 모진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그 자태를 그 정신을 이어온 성모상의 자비로움이 세상의 온갖 어지러움을 잠시 잊게 해준다, 오랫동안 잊혀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우리의 숭고한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아무런 손색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훈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