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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기행 다섯째 날(8월16일)은 매일 새벽에 열린다는 연길(옌지) 수상시장에 다녀오는 것으로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가니까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아이들도 여럿 되었는데 얘기를 주고받으며 소풍 가는 학생들처럼 즐거워했다. 

시장은 숙소에서 가까웠다. 거북이걸음으로 왕복 30분 거리. 아이들과 함께 걸으니까, 소풍을 가면서 급우들과 웃고 떠들던 학창시절이 떠오르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편, 연길에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까 서운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용정시 어느 식당 앞에서 자전거를 개량한 인력거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심지만 다녀서 그런지 연길에는 없었습니다.
 용정시 어느 식당 앞에서 자전거를 개량한 인력거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심지만 다녀서 그런지 연길에는 없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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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 자치주는 여섯 개(연길·도문·돈화·화룡·용정·훈춘) 시와 두 곳(왕청·안도) 현을 담당한다. 인구는 자치주 소재지 연길시가 약 40만, 용정시 25만, 화룡시 15만 명. 그래서인지 다른 도시의 거리에서 봤던 자전거를 개량한 인력거는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여행을 가면 시간을 내서라도 지역 재래시장을 들르는 버릇이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고, 그 지방의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길에는 동시장, 북시장, 중고시장, 새벽 수상시장 등이 있고, 고층빌딩에 자리한 백화점도 몇 개 있지만, 시민 대부분이 재래시장을 선호한다고 했다. 물건이 다양해서 구경거리도 많고 값도 저렴하기 때문이란다.

고향의 '도깨비시장'과 비슷해

연길 수상시장은 옆으로 흐르는 개천을 따라 길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상시장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인조 등나무와 강가 버드나무 그늘에는 사람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연길 수상시장 입구. 상인은 물론, 시장을 이용하는 손님의 80% 정도는 조선족 같았습니다.
 연길 수상시장 입구. 상인은 물론, 시장을 이용하는 손님의 80% 정도는 조선족 같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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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들어서니까 아침 일찍부터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많았다. 일주일 먹을 양을 사다가 냉동실과 냉장고에 보관해두는 우리와 달리 그날그날 장을 봐다가 음식을 해먹기 때문에 시장이 항상 붐빈다고 했다.

행상들은 장 바닥에 온갖 물건을 늘어놓고 사람들을 유혹했다. 어쩌다 처음 보는 과일이 눈에 띄긴 했지만, 낯설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오거나 혼자서 장을 보러온 중국 남자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진짜 산삼이라며 여기저기에 내놓고 파는 상인이 많았다. 그들은 백두산에서 가져온 장뇌삼이라며 손님을 불러 모았다. 한 뿌리에 20원이라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하면서도 필자는 자린고비처럼 보였는지 붙잡지 않았다.

제철을 만나 인기가 좋은 수박들. 수박을 반으로 잘라 비닐을 씌워놨는데요. 잠깐 보았지만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제철을 만나 인기가 좋은 수박들. 수박을 반으로 잘라 비닐을 씌워놨는데요. 잠깐 보았지만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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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모르는 수십 종류의 과일을 펼쳐놓고 상인과 손님이 밀고 당기며 흥정하는 모습은 어렸을 때 고향에서 많이 보던 광경이었다. 절반으로 잘라 진열해놓은 빨갛게 익은 수박들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시장 분위기는 한국이나 다를 게 없었다.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고함에, 흥정하는 소리가 합해져 무척 소란스러웠다. 손님들 발걸음에도 활기가 넘쳤다. 시장 규모도 크고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열린다니, 고향의 '도깨비 시장'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개량종 대왕참외. 생각보다 싱싱했는데요. 참외 냄새가 짙게 풍겼고, 맛도 좋았습니다.
 개량종 대왕참외. 생각보다 싱싱했는데요. 참외 냄새가 짙게 풍겼고, 맛도 좋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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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야간열차를 타고 가면서 먹을 간식거리로 해바라기 씨와 인절미, 복숭아 등을 조금 샀는데 맛이나 보라며 상인이 조금 떼어준 어른 팔뚝보다 굵은 노란 대왕참외는 보기보다 달고 시원했다. 땅이 넓은 나라여서 그런지 과일 종류도 한국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각종 보신제와 곡주(穀酒), 다양한 모형의 그릇과 화분, 색색의 화초들을 팔기도 했는데, 중국말을 못해도 물건을 사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야채, 과일, 생선 등 모든 상품을 저울에 달아서 팔았다. (한 근에 500g)

요즘 한국에서는 1백 원짜리 동전도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다. 1백 원짜리 동전 한두 개로는 아무 것도 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연길은 달랐다. 필자 머리보다 큰 수박 한 통에 우리 돈으로 4천 원, 복숭아 한 개 200원, 배추는 한 포기에 200-300원씩 팔았다.

포대에 담아놓은 잡곡들. 중국 국토는 남한의 100배에 가깝습니다. 땅이 넓어서일까요. 잡곡 종류도 한국보다 다양했습니다.
 포대에 담아놓은 잡곡들. 중국 국토는 남한의 100배에 가깝습니다. 땅이 넓어서일까요. 잡곡 종류도 한국보다 다양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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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잡곡 외에도 각종 채소와 산나물, 다양한 반찬을 만들어 파는 것은 고향의 재래시장과 다를 게 없었다.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다는 표시로도 보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비집고 들어가니까 북한산 미역을 팔았는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생미역을 뜯어 먹는 사람도 있었다.

듣던 대로 개고기 파는 가게도 많았다. 연길은 개 탕(보신탕)이 대단히 맛있으니까 많이 드시라던 기차에서 만난 조선족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그래도 좀 더 위생적으로 조심해서 취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파는 아저씨는 그날 잡아 가져온 고기는 거의 팔고 간다고 했다. 생선전에 나온 갈치와 명태, 고등어, 꽁치 등은 냉동된 것이었다. 고향에서는 생물을 사 먹었는데 연길은 서해바다와 멀어서인지 조기, 우럭, 병치 등이 보이지 않았다.

떡장수 아주머니. 인절미를 팥고물과 콩고물에 버무리는 손이 얼마나 빠른지 예술이었습니다.
 떡장수 아주머니. 인절미를 팥고물과 콩고물에 버무리는 손이 얼마나 빠른지 예술이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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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장수 아주머니 남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떡판 위의 떡을 치려고 떡메를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떡장수 아주머니 남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떡판 위의 떡을 치려고 떡메를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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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인절미를 파는 아주머니 손놀림은 무척 빨랐다. 남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떡메로 쳐서 내온 인절미를 아주머니가 콩고물과 팥고물을 범벅해서 비닐봉지에 담아주는데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간식으로 먹으려고 10위엔어치를 샀더니 콩고물과 팥고물을 뿌린 인절미를 두 무더기나 싸주었다. 비닐봉지에 김이 하얗게 서리기에 하나 집어먹었더니 생각대로 고소하고 차졌다. 뜨끈뜨끈해서 맛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옆에서 일손을 도와주던 남편은 좌판에 떡이 떨어지겠다 싶으니까 얼른 뒤로 가더니 금방 쪄낸 떡밥을 통나무로 만든 떡판에 올려놓고 떡메로 철썩철썩 내려쳤다. 맛깔스러운 현장을 촬영하려니까 웃더니 잘 나오게 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가요 CD 파는 아주머니. 보기 좋아서 바라봤는데, 아주머니는 뻘쭘해하면서 고개를 돌리더군요.
 가요 CD 파는 아주머니. 보기 좋아서 바라봤는데, 아주머니는 뻘쭘해하면서 고개를 돌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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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 나훈아, 김용임, 주현미 등 국내 인기가수들 노래와 추억의 노래, 중국 가수와 북한 가수들의 노래가 담긴 CD를 팔기도 했다. 외국에서 국내 가수들 사진과 이름을 보니까 반가웠다. 특히 남북한 가요가 함께 팔리고 있어 새롭게 다가왔다.   

좌판을 벌여놓은 아주머니는 아침부터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발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했지 사라고 권하지 않았다. 돈 벌려고 나온 게 아니라 강변에서 음악 감상하러 나온 사람 같았다.

복잡한 시장을 비집고 들어오는 삼륜차. 말없이 길을 비켜주는 사람들의 여유에서 우리의 저급한 교통문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복잡한 시장을 비집고 들어오는 삼륜차. 말없이 길을 비켜주는 사람들의 여유에서 우리의 저급한 교통문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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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시장으로 갑자기 삼륜차 한 대가 들어왔다. 물건을 사던 사람도, 지나가던 사람도,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던 사람까지도 불평 한마디 없이 길을 터주었다. 어렸을 때 동네 재래시장에서 짐꾼이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싣고는 "짐이요, 짐!"하고 소리치며 개선장군처럼 지나가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한국어 교육과정이 담긴 학습지와 동의보감 등 다양한 책자를 파는 행상도 있었다. 조선족이 펴낸 서적과 스크랩한 북한 돈, 우표도 보였다. 한국관광객과 국제결혼 알선업체 안내문, 보험 고객을 모집하는 광고판도 눈에 띄었다.

조선족 생활상 피부로 느껴

'만물시장'(萬物市場)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연길 수상시장. 야릇한 냄새가 코를 자극해서 인상이 찡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값이 저렴하고 먹을거리가 풍부해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장바닥 의자에 앉아 음식을 사 먹는 사람들 모습은 정겹게 다가왔다.

중국은 북한처럼 합동농장으로 운영하다 70년대부터 '호도거리'제를 시작했단다. 땅을 똑같이 떼어주고, 농사를 지어 가을에 수확하면 세금을 낸 나머지는 자기 차지가 되는 제도인데 그 후로 농민들이 농사를 더욱 열심히 짓는다고 한다. 시장에서 다양한 농산물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들러본 새벽시장에서 연길의 서민문화와 조선족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둘러보며 말이 통하지 않아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연길 수상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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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연길, #수상시장, #도깨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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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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