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속에 작은 불빛 네 개. 과연 무슨 불빛일까요? 화면을 급하게 내린다면 무슨 불빛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밤에 낚시할 때 찌 끝에 꽂아 쓰는 '케미'라고 하는 불빛입니다. 붕어가 입질을 할 때면 공중 부양하듯 솟구쳐 올라 강태공의 심금을 울리지요.
충남 논산에 있는 탑정 저수지입니다. 장마철 밤에 카메라를 들었던 이유는 멀리서 번개가 하도 많이 쳐서 번개 사진을 좀 찍어볼 요량이었습니다. 번개가 칠 때마다 연속 셔터를 눌러대며 한 장이라도 건져볼까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러나 번개는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밝은 하늘만 찍혔습니다. 번개는 하늘이 쩍쩍 갈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채 사라졌습니다.
번개 잡이에 실패했습니다. 텅 빈 카메라에 공허한 마음이 겹쳤습니다. 긴 시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나홀로 무슨 짓을 했는지 억울했습니다. 삼각대를 접고 돌아서려는데 수면 위에 작은 불빛들이 유혹합니다.
다시 삼각대를 폈습니다. 밤에 강태공이 홀로 낚시하는 모습을 담기로 했습니다. 마치 무슨 별자리처럼 작은 불빛 네 개가 수면 위에서 빛을 발합니다. 붕어가 근처를 서성댔다가는 여지없이 입질을 할 것만 같습니다. 당장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찌가 솟아오르는 장면을 먼저 보고 싶었습니다. 큰 돌멩이에 엉덩이를 맡기고 지켜보았습니다.
강태공은 몇 차례 낚싯대를 들고 미끼를 손봤습니다. 네 개 불빛은 각자 그 자리에서 변함없습니다. 찌를 응시하는 강태공의 자세도 변함없습니다. 찌가 솟아야만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챔질을 하겠지요. 입질과 챔질이 절묘하게 조화된 뒤 짜릿한 손맛에 감전될 것입니다. 그리고 놓아주는 미덕이 이어지면 낚시의 참맛은 절정에 달하겠지요.
긴 시간 동안 찌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강태공의 기다림도 계속됐습니다. 산다는 일이 온통 기다림이므로 덩달아 기다립니다. 도둑 고양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경계합니다. 빵조각을 던져보지만 줄행랑을 칩니다. 놀란 눈을 보니 괜스레 미안합니다.
어설픈 사진 기술로 번개 잡이엔 실패했지만 낚시하며 기다리는 강태공 덕분에 기다림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다림은 그리움을 수반합니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없다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살아가나요?
어릴 적 소꿉친구가 부농이 됐습니다. 10여 년 전에 외제 승용차를 타고 와서 어깨에 힘을 주고 가더니 소식이 없습니다. 미국인과 결혼한 누나 따라 미국에 간 소꿉친구가 미국인이 됐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더 이상 연락이 안 됩니다. 기자 생활 마치고 광고회사 차려서 큰돈을 번 후배는 캐나다로 투자 이민 가더니 타인이 됐습니다.
고교시절 평생 존경하겠다던 제자 녀석이 졸업 후에 큰 잘못을 저지르고 3백만 원만 빌려달라기에, 형편이 안 좋아 거절했더니 연락 두절입니다. 이름이 비슷해 형제처럼 지낸 노총각 후배는 여자 무당에게 정신이 팔려 산으로 가더니 영영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기다림의 대상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과 사람, 그 관계망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을 나누고 올곧게 소통하던 사람들이 돈에게 갇혀 버리거나 산다는 일에 저당 잡힌 채 등을 돌렸습니다. 기다림에 젖어 사는 사람에게 일말의 끈이라도 전해 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런 믿음으로 기다리고 그리워하다 보면 만날 날 있겠지요.
카메라를 들고 번개를 낚으러 갔다가 번개는 못 낚고 고기를 낚으려는 낚시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긴 시간 빈 어망이었지만 저는 그의 낚시질을 바라보며 기다림과 그리움을 가슴 속에 가득 채웠습니다. 번개 낚으려다 그리움과 기다림만 가득 낚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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