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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널, 다매체화와 뉴미디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실제 사건보다  미디어에 보도되는 사건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미국의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은 이것을 가리켜 의사 사건(pseudo-event)이라고 말했다.

 

1962년 그가 출간한 <이미지: 미국 의사사건에 대한 안내>(The Image:A Guide to Pseudo-events in America)에서 "TV, 영화, 사진 등 영상시대의 개막은 미국인들을 사물의 본질이 아닌 사물의 허상, 즉 이미지와 환상을 좇게 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자연발생적인 뉴스보다 정치인들이 언론플레이를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의사 사건을 더 좋아한다"고 꼬집었다. 이미지는 '우리를 둘러싼 감옥'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의사사건은 진짜사건보다 더 잘 정리돼 있고 진짜사건보다 더 잘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사사건은 진짜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이고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앞세운 의사사건이 권력과 결합하게 될 때 위력은 더 커진다. 오늘날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이미지와 정치가 결합한 감동적인 드라마가 언론에 자주 눈에 띈다.    

 

[#장면 하나] 눈물 자주 흘리는 MB...청와대·언론 합작 '감동 드라마'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추석을 하루 앞둔 20일 오전 KBS 1TV '아침마당 - 대통령 부부의 사람 사는 이야기' 출연해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추석을 하루 앞둔 20일 오전 KBS 1TV '아침마당 - 대통령 부부의 사람 사는 이야기' 출연해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KBS1TV 생방송 토크쇼 '아침마당'에 출연한 것은 추석 연휴 첫날인 21일. 추석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TV앞에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눌 때라는 점을 잘 파악한 듯하다.

 

대통령 내외는 '대통령 부부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주제로 1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토크쇼에서 많은 얘기를 했다. 그런 도중에 눈시울을 붉혔다. 작고한 모친의 얘기를 하면서 한참 동안 눈물 흘리는 모습을 여과 없이 TV는 내보냈다. 진행자로부터 "성공하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안타깝겠다"는 취지의 질문을 받자마자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대통령은 이어 "내가 약속을 했다. (성공하면) 새 옷을 사준다고 약속을 했는데 지킬 기회가 없었다. 늘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면서 계속 눈물을 흘리며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 어머니 얘기만 하면 이렇게 된다"고 했다. 그러더니 "내가 전 재산을 내놓은 것도 우리 어머님한테 배운 것"이라며 "내가 돈 벌면 다 내놓겠다고 한 것은 어머니의 약속이니까 지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날 방영된 KBS 아침마당 시청자의견 게시판에는 온갖 비난의 댓글들이 쇄도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에 이어 불거진 8․8개각에서 보여준 '돌려막기 식 인사'와 '줄줄이 낙마'로 인해 가뜩이나 민심이 사납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댓글들에선 '한심하다'는 반응이 묻어났다.

 

눈물이 많은 대통령을 뽑은 것일까, 대통령이 된 이후 눈물이 많아진 것일까. 이 대통령은 5개월 전인 지난 4월 19일에도 눈물을 보였다. 이날 아침 라디오연설에서 천안함 장병 46명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슬픔에 젖었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이 대통령 뒤에는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글귀가 배경으로 준비됐다.

 

이날 연설은 이례적으로 KBS, MBC, SBS 등 주요 방송사가 TV로 생중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날 대통령의 눈물은 KBS, MBC, SBS 저녁 메인 뉴스를 장식했다. 신문들도 다음날 아침 대서특필했다. 20일자 1면에 눈시울을 붉히는 대통령 사진이 큼지막하게 지면을 장식했다.

 

청와대와 언론이 합작한 '감동 드라마'라는 따가운 지적은 1년 전에도 쏟아졌다. 지난해 4월 19일, 이 대통령과 부인 김 여사는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이 언론에 크게 부각됐다.

 

특히 방송3사는 이날도 이 대통령의 눈물을 4∼8초간 담아 내보냈다. 하지만 장애인 정책을 진단하거나 실태를 점검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을 통해 "대통령의 '눈물'에 정작 장애인단체들은 냉소를 보내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 장애인 관련 정책들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장면 둘] "'MB에겐 '3년차 징크스' 없다?" vs. "믿을 수 없다"

 

27일 오후. 추석연휴가 끝난 직후다. 청와대 김희정 대변인의 이례적인 브리핑에 스포트라이트가 가해졌다. 전날 실시한 추석민심 여론조사 결과,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50.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보느냐, 못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긍정 평가가 50.9%, 부정 평가가 43.1%로 나왔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지지도를 공개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날 대변인은 "주요한 시기 때마다 하는 다른 국정평가보다 긍정평가가 높게 나왔다"며 "그동안 긍정 평가가 40%대였는데 50%가 넘었다는 게 중요한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보수언론들은 "'공정한 사회'와 '대·중소기업 상생'에 대한 지지에 힘입어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50%를 돌파한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국민 앞에서 희색을 보이는 양태가 우스꽝스럽다. 게다가 일부 언론들은 "여론조사는 청와대가 한국리서치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한 것"이라며 애써 신뢰성에 무게를 실어줌으로써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특히 <동아일보>는 28일 8면 'MB에겐 '3년차 징크스' 없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과 다른 지지율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한 뒤 "친서민 중도실용과 공정한 사회라는 국정 기조로 중간층을 공략함으로써 대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유동층의 이탈을 막고 있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그런데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누리꾼들의 반응에서 읽힌다. "믿을 수 없다"는 댓글이 포털 사이트에 줄을 이었다. 오히려 4대강 강행을 비롯한 '묻지 마 성장주의', '돌려막기 식 인사정책' 등으로 반감이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장면 셋] "MB 등장 이후, 박정희 향수 흐릿?"

 

 <시사IN>이 창간 3주년을 맞아 실시한 전직 대통령 신뢰도 조사결과.
<시사IN>이 창간 3주년을 맞아 실시한 전직 대통령 신뢰도 조사결과. ⓒ 시사IN

이미지 정치는 일시적으로 정치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포장만 번지르르한 모습으로 인식되면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신뢰도 하락이라는 역풍을 불러 올 수 있다. 시사주간지 <시사IN>이 창간 3주년을 맞아 실시한 '대한민국 신뢰도' 조사결과가 암묵적으로 경고했다.

 

<시사IN>이 공개한 역대 대통령 신뢰도 조사결과가 단연 시선을 끈다. 1위를 차지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34.2%. 이는 <시사IN>이 2007년 조사했을 때의 52.7%, 2009년 조사 때의 41.8%와 비교하면 낙폭이 두드러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지난해 28.3%에 이어 올해는 25.3%로 소폭 하락했다.

 

반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3%에서 올해는 18.2%로 높아졌다. 현직인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5.4%에서 올해는 6.4%로 소폭 높아졌으나 여전히 밑바닥 수준으로 조사됐다. 이어 전두환(2.5%), 이승만(2.2%), 김영삼(1%), 최규하(0.9%), 노태우(0.5%), 윤보선(0.3%) 순으로 나타났다. <시사IN>이 이번 조사결과를 진단한 내용이 흥미를 끈다.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이 '박정희 향수'를 상당 부분 소진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리서치 하동균 수석연구원은 '이 대통령이 신뢰도 지분을 직접 가져간 것은 별로 없지만, 이 대통령의 집권 이후 박정희식 성장주의에 대한 향수가 흐려졌다. 진보층은 향수를 거둬들였고 보수층은 갈증을 풀었다'라고 분석했다. 보수 정권 탄생 이후 보수층의 결집력 또한 느슨해지는 데 반해, 진보·개혁 진영에서 김·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면서 '박정희 독주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의미다."

 

또 다른 조사결과가 주목을 끈다. MB 주요정책 신뢰도 조사다. 결과는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 4대강 사업, 친서민 정책, 대북 정책, 외교 정책, 인사 정책, 부동산 정책, 교육 정책 등 MB 정부의 7대 주요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물은 결과, 대부분의 정책이 '보통' 이하 낙제점을 얻었다. '전혀 신뢰하지 않으면 0점, 보통이면 5점, 매우 신뢰하면 10점'을 기준으로 해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그 결과, 외교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평균 5.22점으로 가장 높았으나, 교육 정책 4.30점, 대북 정책 4.14점, 4대강 사업 3.92점, 친서민 정책 3.90점, 부동산 정책 3.86점 순으로 나머지는 모두가 평균 이하였다. 특히 가장 신뢰도가 낮은 정책으로는 인사 정책(3.51점)으로  꼽혔다. 이에 대해 <시사IN>은 "MB 정권의 인사가 망사(亡事)라는 점이 지표로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장면 넷] "현재 우리 사회 공정하지 않은 편"

 

 대통령의 눈물 흘린 모습 방영후 KBS1TV ‘아침마당’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들.
대통령의 눈물 흘린 모습 방영후 KBS1TV ‘아침마당’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들. ⓒ KBS

이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한 사회'가 공직사회에 화두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 보면 공정성을 강조할만한 처지가 못 된다.

 

<미디어오늘>은 28일 '정부 공정성, 노무현>박정희>김대중>이명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고 있지만, 역대 정부 공정성 평가에서는 노무현 박정희 김대중 정부에 밀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KSOI에 따르면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공정한 때를 묻자 '노무현 정부'라는 응답이 30.3%로 가장 높았다"며 "다음으로 '박정희 정부' 21.0%, '김대중 정부' 16.6%, '이명박 정부' 10.9% 순이었고,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 정부(2.9%)'보다 낮은 1.5% 수준, '노태우 정부'는 1.3%, '이승만 정부'는 1.2%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 사회가 현재 '공정한 사회'인지에 대한 질문에 '공정하지 않은 편이다'는 응답이 73.6%로 매우 높게 나온 반면 '공정한 편이다'는 응답은 24.1%에 그쳤다"는 기사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9월 정기 여론조사(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5%, 응답률은 21.4%) 결과"라고 밝혔다.   

 

"MB정부 2년반, 과거 10년 비교해 더 나빠졌다" 

 

최근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케이스파트너스'와 '한백리서치'에 의뢰해 공동조사한 '국민의 생활현황 및 정치인식 조사'에서도 국민 대다수는 이명박 정부 2년반 동안의 국정수행 과제 전반에 대해 과거 정부 10년과 비교해 더 나빠졌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임기 반환점을 막 돌았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험난하고 지루했던 지나온 길 못지않게 남은 여정도 순탄치만은 않다.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던 많던 지지층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한다. 청와대가 아닌 다른 여론조사 결과에서 묻어난다.

 

여론조사를 통해 파악하는 여론은 불완전하며 가변적일 수 있다. 감성에 호소하는 이미지 정치와 가변적 요소가 다분한 여론정치가 만났을 때 단기간 효력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많은 동의를 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다니엘 부어스틴의 말대로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많은 국민이 갈망하고 있는 '도덕적 이미지 정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MB눈물#아침마당#의사사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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