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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 한글날은 참 어색하다. 열 없기도 하다. 그 의미를 기리는 정도가 이렇게 조정된 것인가? 그러고 보니 한글날이란 표지조차 내 책상달력엔 없다. 별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러나 한글날이 다가오면 뭔가 우리 말글에 관해 생각해 보고 싶어진다.

 

이견도 없지는 않겠지만, 한국방송공사(KBS)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방송사 중의 하나다. 다른 사안은 몰라도 KBS의 아나운서나 기자가 방송에서 들려주는 언어는 대한민국의 표준적인 언어일 것이다. 특히 밤 9시의 'KBS뉴스9'는 이 방송사 뉴스의 간판이다.

 

이 뉴스의 진행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이들의 발음은 우리 생활언어의 표준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아마 방송사 측에서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인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뉴스의 남자 진행자와 여자 진행자의 발음이 다른 경우가 잦다.

 

10월5일 남자는 [배추]라고 짧게 말했다. 바로 다음 여자는 [배:추]라고 '배'를 길게 발음했다. 글로 쓰면 안 보이지만 들을 때의 차이는 또렷하다. 얼마 전 남자는 [사대강]이라고 사대강(四大江)을 읽었고, 여자는 [사:대강]이라고 읽었다. 두 경우 다 여자가 옳다.

 

음의 길고 짧음 즉 발음의 장단은 말 배우는 초기단계부터의 바른 습득이 열쇠다. 굳어진 다음에는 고치고자 해도 쉽지 않다. 또 같은 글자인데도 다른 뜻을 가리키는 단어가 여럿인 경우, 그 차이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발음의 장단은 중요하다.

 

몇 초, 몇 분 전후로 들리는 이 진행자(아나운서) 두 사람의 발음이 다르면 시청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위의 두 가지 경우만이 아니다. 우선은 발음을 정확하게 배운 사람의 말을 따라하도록 방송사는 급히 조치해야 할 줄 안다.

 

KBS는 프로그램으로도 우리말을 진흥한다고 '홍보'한다. 여러 프로그램이 효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안다. 또 한국어 시험도 개발해 일반인과 입사시험 따위를 준비하는 학생 등을 대상으로 그 성가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방송을 진행하는 인원들 중 일부는 우리말을 바르게 구사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방송국의 직원이 아닌, 연예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입을 열어 말하기도 싫을 정도로 한심하다. 그러나 기자 등 직원의 경우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9월 30일 배추 값 파동에 업체들이 중국서 배추를 '공수'한다는 뉴스가 자막과 함께 떴다. 공수(空輸)는 '항공수송'이란 말, IT제품 부속품처럼 비행기로 배추를 들여온다고? 이 기자도, 아나운서도 말뜻도 모르면서 '말'을 쓴다. '언어 사용 면허증'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9월 28일에는 기자가 부동산 사정을 보도하며 "전세 [물껀]도 조금밖에 안 된다"고 했다. '물껀'이란 말이 따로 있나 확인해 봤다. 물건(物件)을 그렇게 읽는 모양인데, 한 공인중개사에게 물으니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다 물껀이라고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소리다. 이 사람, 기자 맞아?

 

기자의 글(기사)은 간부나 선임자등 고참들이 꼼꼼히 톺아 사실관계 문법 어법 정서 등의 적절성을 검토한다. 외국어여서 멋쩍지만 이 일을 '데스크'라고 한다. KBS뉴스에는 이 과정이 없나 보다. 그래도 한글날에 '우리 말글 제대로 쓰자'는 뉴스는 내보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예지서원(www.yejiseo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대강#배추#KBS#한글날#조수빈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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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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