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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콜록~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가 돌아오자 어김없이 독감이 고개를 내밀고 나를 찾아왔다. 병원에 찾아가자 많은 사람들로 이미 북새통이다. 혼잡한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은 후 흔한 계절감기라는 진단을 받고 처방전을 받아 병원에서 불러주는 대로 돈을 지불한 후 병원을 나왔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진료비 내역서를 꼼꼼히 살펴본다 해도(개인병원은 요청하기 전에는 주지도 않겠지만) 알지 못할 여러 가지 복잡한 의료용어들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연유로 이 정도 금액이 청구됐는지도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계절감기가 몇 푼이나 된다고, 그러려니 하는 심정으로 병원을 나섰다. 하지만, 그깟 감기가 아니라 큰 병에 걸렸거나 중한 사고를 당했을 경우 받는 진료비 내역서에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병원에 돈 낼 때마다 찝찝하지 않으셨나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매년 요양기관(병원)의 큰 문제로 지적되는 '진료비 과다징수' 문제 말이다. 지난해만 해도 과다 징수된 진료비 72억 원이 환불됐다. 하지만 과다진료비 심사는 의무제가 아닌 환자가 직접 신고해야 하는 신고제다. 때문에 실질적인 부당 청구금액은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진료비 부당청구는 오래된 문제다. 2010년에 발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아래 심평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년도 대비 민원접수 건수는 117% 증가했고 환불금액은 19% 감소, 민원제기금액은 5.7% 감소했다.

   
부당청구진료비 내역 2003년부터 2009년까지의 자료(천원 단위)
부당청구진료비 내역2003년부터 2009년까지의 자료(천원 단위) ⓒ 진료심사평가원

위의 자료를 살펴보자. 2008년에 비해 2009년에는 부당청구환불금이 10억여 원 감소했다. 하지만 환불 처리는 2008년 1만2654건인데 비해 2009년에는 1만8629건으로 5975건이나 증가했다. 환불사유는 '급여대상' 진료비를 임의로 '비급여' 처리한 것이 46.2%로 가장 많았다. 이처럼 진료비 과다청구는 해마다 문제시되어 왔고 그 환불 건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부당금액을 환불받느냐가 아니다. 지금은 마땅히 돌려받아야 할 돈을 본인이 직접 2차적으로 신고를 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 수고로이 되돌려받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요양기관의 부당 진료비 청구 행태가 여전한 것은 왜일까? 물론 요양기관의 도덕적 결함이 1차적이다. 하지만 이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제도적 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거짓청구 요양기관 명단은 찾을 수 없었다.
거짓청구 요양기관 명단은 찾을 수 없었다. ⓒ 심평원

우선 내가 살고 있는 충북 청주에서 진료비를 과다하게 청구한 요양기관을 알아보고자 했다. 심평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우리 지역 요양기관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지역 내 병원, 약국의 수술, 처치, 약제와 관련된 병원평가 정보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과다진료비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혹시 지역 내 과다진료비 징수 요양기관 명단을 볼 수 있는지 심평원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지만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진료비를 부당청구하는 요양기관을 밝히는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심평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공하는 일회성 보도자료에서 부당청구 병원들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진료비 거짓청구해도 사회봉사 많이했으면 감안?

심평원이 정해놓은 거짓청구요양기관 명단 공표 기준을 살펴보자.

거짓청구요양기관 명단공표 대상

* 요양기관 업무정지 또는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은 요양기관 중 관련서류를 위조 변조하여 요양급여비용을 거짓으로 청구한 요양기관으로서 아래에 해당하는 기관

- 거짓으로 청구한 금액이 1500만원 이상인 경우
- 요양급여비용총액 중 거짓으로 청구한 금액의 비율이 100분의 20이상인 경우

- 공표여부 등 심의; 건강보험공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표대상기관 선정

(출처:건강보험심사평가원, http://www.hira.or.kr)

이에 따르면 거짓청구 요양기관이라고 해도 건강보험공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부당진료비 청구를 한 사실이 명백한데도 왜 별도를 심의를 거쳐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실질적으로 명단이 공표된 요양기관은 매우드물다.

이러한 수동적인 정보제공에서 벗어나 심평원은 시민 모두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진료비 부당 청구에 대한 내용을 지역 시민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심평원의 홈페이지 등에 해마다 상세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요양기관의 범법행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도 거짓청구요양기관 명단을 공표하는 게 최선이라고 느꼈는지 14곳 요양기관에 대한 심의를 진행해 10월 안에 처음으로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정기간 3회 이상 거짓청구하거나 평가점수가 최악인, 죄질이 나쁜 거짓청구 요양기관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언론에 명단을 다시 공개하는 등 죄질에 따라 공개 정도도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대상 기관을 평가하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표심의위원회(아래 심의위)가 세부 심사기준을 마련했단다. 그에 따르면 대상 요양기관에 대해 '허위청구의 1.동기 2.정도 3.횟수 4.결과' 등 4부분에 대해 각각 25점씩 부여, 100점 만점으로 채점하고 최종 60점 이상인 요양기관은 그 명단을 공개한다. 

문제는 각 항목마다 감경사유를 두었다는 것이다. '동기' 항목에서는 진료봉사 등의 활동내역이 있을 경우에는 그를 고려해 그 점수를 감안한다. '정도' 항목에서는 거짓청구 금액이 1500만 원 미만이면서 허위청구 비율이 20% 이상일 경우에는 감경 받는다. '횟수' 항목에서는 거짓청구 기간이 6개월 이하인 요양기관은 그 점수를 감경 받게 되며, 거짓청구 금액이 750만 원 미만이거나 그 기간이 2개월 이하인 경우에도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감경사유항목은 요양기관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제도적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거짓청구를 한 요양기관 명단을 단순하게 공개하면 될 텐데 다양한 감경사유를 정해 놓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번 복지부의 거짓청구 요양기관 공개도 이미 일회성 보도자료로 공개되고 있는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또 심의위가 정한 1500만 원 이하로 허위청구한 요양기관의 명단은 아예 알 수 없다. 진료비가 공정성을 얻으려면, 요양기관들이 시민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기본적인 도덕성을 지켜야 한다. 적은 금액이라고 해도 엄연한 범법행위임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

진료비 과다청구는 엄연한 범법 행위

 항생제- 주사제 처방률도 알 수 있는데 왜 진료비 거짓청구한 요양기관 명단은 공개 안하나요?
항생제- 주사제 처방률도 알 수 있는데 왜 진료비 거짓청구한 요양기관 명단은 공개 안하나요? ⓒ 심평원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진료비를 허위청구할 경우, 1년의 범위 안에서 업무를 정지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부담하게 한 금액의 5배 이하의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징수하고 있다. 최근에는 진료비 부당청구를 하고 현지조사가 나오기 전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자진폐업했다가 다른 곳에 개업하는 요양기관도 있다고 한다. 거짓청구 요양기관에 대한 좀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 이유다.

과다진료비를 신고하는 절차를 편리하게 사람들에게 이런 제도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지금 제도는 환자가 이중으로 수고하는 번거로움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요양기관 과다징수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지금 이뤄지고 있는 홍보활동이나 신고포상금 제공보다는 요양기관을 바로잡는 것이 먼저다.

진료비를 과다 청구하는 것 자체가 명백한 범법 행위다. 이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더 강화하지 않는다면,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은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있어서도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진료비 확인 요청은 다음 사이트를 참고하기 바란다.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http://www.hira.or.kr



#진료비과다징수#심평원#요양기관#환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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