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루미 아빠 (상·하) (츠치다 세이키 글·그림,김현정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3/3800원씩)만화를 그리면서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바탕 그림이 잘 안 된' 작품을 보자면 슬픕니다. 그러나 그림이 잘 안 되었어도 줄거리가 좋거나 작품을 통으로 살필 때에 아름다우면 '그림이 엉성궂어도 기쁘게' 읽습니다. 이를테면 사진찍기를 할 때에 초점이 살짝 안 맞는다든지 흔들린다든지 빛이 어긋났다든지 하여도 가슴을 뛰도록 하거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는 작품이 있어요. 글에서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렸어도 아름다운 작품이 있습니다. 글쓰기를 하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맞출 줄 알아야 하지만, 이보다는 글 한 줄에 내 사랑과 믿음을 얼마나 제대로 참다이 알뜰살뜰 담을 수 있느냐가 훨씬 큽니다. 이리하여 만화책을 들여다보며 바탕 그림이 좀 어설프더라도 그리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바탕 그림까지 빈틈이 없다면 매우 훌륭할 테지요. 매우 훌륭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어딘가 좀 어수룩하면 어수룩한 대로 반갑고, 어딘가 살짝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기쁩니다. 그림 하나하나를 찬찬히 읽고, 말마디 하나하나를 곰곰이 되씹을 수 있으면 나한테는 더없이 좋은 만화책입니다.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짤막하게 나온 <두루미 아빠>를 보았습니다. 새책으로 나왔을 때에는 알아보지 못했고, 판이 끊기고 나서 예닐곱 해가 지난 뒤에야 헌책방에서 겨우 알아보았습니다. 흔히 알 만한 이야기감을 다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고, 그림결 또한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벌써 봤어. 이 세상이 얼마나 눈부신지. 누구보다도 많이(상권 152∼153쪽)." 같은 말마디 하나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합니다. 어쩌면 이런 말마디 하나를 읽고자 만화책을 뒤지고 사진책을 넘기며 글책을 훑는달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꾸리는 여느 삶을 더 사랑하고 싶어 이와 같은 말마디를 찾는달 수 있어요. 하루하루 참 고달프고 벅차며 힘들구나 하고 느끼니, 이 고달픔을 씻고 이 벅참을 털며 이 힘듦을 덜고자 내 마음을 건드리며 달래는 만화책 하나 좋은 사랑으로 껴안는달 수 있습니다.
"너희들! 요코를 괴롭히면 알지? 아줌마가 너희 엄마를 때려 줄 거야(하권 44쪽)!" 같은 말마디를 읽으며 새삼스레 기운을 얻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라서 다른 아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를 감싸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저희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 삶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아름다움을 사랑하면서 따스하고 넉넉히 살아가면 아이들로서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가운데 따스함과 넉넉함을 나눌밖에 없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돈벌레이거나 당신 쇠밥그릇에 매여 있으면 아이들 또한 돈바라기에다가 저희 밥그릇 챙기기에만 푹 빠집니다. 따돌림이든 돌림뱅이이든 왕따이든 어른이 만들어 아이들한테 물려주지 아이들 스스로 만들지 않아요. 흔히 청소년범죄라 합니다만, 청소년범죄가 일어난다면 청소년을 소년원에 보낼 일이 아니라, 이 청소년을 낳아 기른 어버이와 이웃 어른과 학교 교사를 감옥에 처넣어야 합니다.
"나 말야, 열심히 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진짜 열심히 하면 언젠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아무리 열심해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을 줄 몰랐어(하권 126∼127쪽)." 같은 말마디를 읽으며 곰곰이 되씹습니다. 즐거움(행복)이란 열매만이 아니며 열매가 즐거움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즐거움이란 내가 흘리는 땀방울입니다. 하루하루 흘린 땀이 즐거움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려내고 말아야 즐거움이 아닙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달렸든 상주까지만 갔든 문경새재를 못 넘든 괴산 즈음에서 멈추었든 즐거움입니다. 한 번 두 번 백 번 천 번 만 번 페달을 밟으며 달린 길이 모조리 즐거움이에요. 아무리 땀을 흘려도 이루지 못하는 일이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이루지 못해서 슬픈 일이란 없습니다. 외려 이루지 못하면서 기쁘며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꼭 이루어야만 내 꿈이 빛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꿈은 내 삶이요, 내 삶이란 내 땀이며, 내 땀이란 내 빛입니다.
만화책 <두루미 아빠> 첫머리(상권 9쪽)를 보면 주인공 남녀가 혼인을 하겠다며 여자 쪽 어버이를 찾아온 이야기가 나옵니다(남자 쪽한테는 어버이가 없습니다). 여자 쪽 어버이 두 분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중에 나누는 얘기가, "이즈미 걘, 무슨 생각이야? 내가 가지고 온 혼담은 줄줄이 깨 버리더니 저런 녀석을. 순전히 건달이잖아! 일류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어떻게 저런 거하고 알게 된 거야?" "그 회사 청소원이래요."입니다. 주인공 여자 쪽 아버지는 당신 딸하고 거의 말을 섞지 않았음을 한 마디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주인공 여자 쪽 어머니는 당신 딸하고 드문드문 말을 섞었음을 살짝 엿봅니다. 그러나 주인공 여자 쪽 어버이 두 분 모두 당신 딸하고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를 해 보지 못했음을 느낍니다. 꼭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으레 일어나는 이야기이며, 일본뿐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자주 있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래요. 이 글을 쓰는 저랑 함께 살아 주는 한 사람을 낳아 기른 어버이는 저 같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며 맞아들였을까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최종규라고 하는 사람은 '다달이 넉넉히 돈이 들어오는' 일자리가 마땅히 없으면서 책만 잔뜩 사들일 뿐 아니라, 글쓰기와 사진찍기에 파묻힌 사람이니까요. 갖춰 입는 옷이란 언제나 변변하지 않을 뿐더러,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지 않으며 거울조차 안 보며 살아가니까요.
저는 저하고 함께 살아 주는 사람이 참 고마우며 놀랍고 대단하며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매가 고마우며 곱고, 사람을 맞아들이는 마음그릇이 놀라우며 따스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몸짓이 대단하며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틀림없이 내 마음은 이와 같이 느낍니다. 다만, 몸이 벅차고 힘들어 노상 갤갤거립니다. 엊저녁에도 몸이 하도 고단해 아이한테 윽박지르기나 하고 한결 따스하며 넉넉한 아버지 품이 못 되었습니다. 아버지로서 아버지다운 삶을 제대로 꾸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 집식구가 만화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처럼 "주이치 있잖아, 몸이 왠지 가벼워. 볼래? 자! 날개가 생긴 것 같아. 나, 날고 있어. 주이치 즐거워. 이렇게 즐거워(하권 160∼161쪽)." 하고 말하며 몸에 깃든 생채기 때문에 숨을 거둘 무렵에야 바야흐로 아버지로서 아버지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을는지 모릅니다.
새벽녘 희뿌윰히 밝아 오는 새날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옆방에서 아이가 잠꼬대로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문득 엊저녁에 쌀을 씻어 불렸던가 하고 생각하다가, 엊저녁에 밥을 새로 해서 아침까지 먹을 수 있다고 떠올립니다. 아침에 밥을 먹기 앞서 콩부터 씻어 불려야겠고, 아침에는 어제 먹고 남은 새우국에 국수와 미역을 넣어 끓이면 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