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딸들아, 이 다음에 애비가 죽으면 지금 이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사용하여라. 이 사진은 아비가 인생의 정점이라 느꼈을 적에 찍어놓은 사진인지라 왠지 정이 가는구나. 그리고 애비가 숨(息)을 놓았을 적에 너희들의 슬픔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애가 끓도록 울고불고 할 것도 없느니, 놀랄 것도 애통해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 세상에 나온 그 어떤 만물치고 죽지 않는 것 있다더냐? 그저 이승의 소풍 끝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겠지 하면 그리 서러워할 것만도 아닐 터이다.
그리고 손님들 맞는 술상에는 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던 돼지고기볶음이나 동태찌개 뭐 그런 것 올려놓으면 다들 좋아할 터이다. 술은 소주면 되고 맥주 없다고 발광 떠는 것들은 그냥 쫓아내도 무방하다. 단 한 사람, 아버지의 배다른 누이라고 엉덩이 실룩거리며 찾아오면 그 누이에게는 맥주를 내주거라. 카~ 뭐라는 맥주를 내주면 좋아할 터이다.
그리고 손님들방에 노래방 기계를 가져다 놓기 어려우면 사진관에 있던 기타라도 가져다 놓아라. 그러면 지들끼리 술 취해 흥이 오르면 기타치고 발광을 떨면서 놀 테지 싶다. 성당에서 혹시나 떼를 지어 와가지고 연도를 합네, 기도를 합네 하면서 무논에 개구리 우는 소리마냥 와글와글 하거들랑 가만 두어라. 아버지의 영혼이 그들의 기도로 무간지옥을 비켜
갈지 모르는 일일 터이다.
또한 술 마시고 벗이 갔느니 어쨌느니 눈물을 찍어내며 "아! 임은 갔습니다. 구시렁 구시렁~~~" 주접을 떠는 인간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시인님 오셨냐며 배꼽손 하고 인사하면 시인이라는 소리에 흐뭇해하지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두 딸아! 잘 살아야 된다. 너무 악착같이 살지 말고 덤벙덤벙 그렇게 살면 되지 싶구나. 너희들 때문에 이 아버지 이승의 소풍 길이 참으로 즐거웠단다. 그저 너와 나, 네 것 내 것 따지지 말고 덤벙덤벙 그렇게 살다가 오너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허허!
"재차 말하지만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꼭 위의 사진을 사용토록 해라!" 덧붙이는 글 | 엊그저께 동무 하나를 멀리 보내고 왔지요. 해서 두 딸에게 유서를 미리 써보았습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 텐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서로가 못 잡아먹어 아옹다옹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