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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사에서 '문사형(일사형) 인물'이란 유형이 등장한다. 천재형의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집안이 몰락하거나 당대 권력에 맞서 거처도 없이 주유천하 떠돌아다니면서 방랑한 인물을 말한다. 매월당 김시습, 손곡 이달, 난고 김삿갓, 연암 박지원 등이 그러한 삶을 살다 간 인물들이고, 그들이 지은 작품 또한 '문사형 소설'이 많다. 그들 삶을 추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김삿갓 조형물 - 영월의 김삿갓 문학관과 묘소 사이에는 천재시인 김립을 추모하는 수많은 조형물들이 관광객들을 환하게 맞아준다.
김삿갓 조형물- 영월의 김삿갓 문학관과 묘소 사이에는 천재시인 김립을 추모하는 수많은 조형물들이 관광객들을 환하게 맞아준다. ⓒ 박태상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스무나믄 살 아래인 서러운 나그네가
  마흔 놈 집에서 쉰밥을 얻어먹으니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러한 일)이 또 있으리오.
  집에 돌아가서 선밥(설 익은 밥) 먹는 것만 못하네

                  -김삿갓, <二十樹下> 전문

지난 토요일(10월 9일)은 아침부터 부산했다. 새벽에 창문을 여니 까치소리가 요란했다. 까치는 길조라고 했던가? 평소 밤새 글을 집필하는 야행성이 있어서 새벽 5~6시에 기상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예외였다. 강원도 영월에 가기 위해 아침 8시에 동대문 국립의료원 앞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날씨는 쾌청해서 김삿갓을 만나는 데 무리가 없을 듯보였다. 운에 좋게도 올해만 꼽아도 영월과 정선여행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처음은 지난 2월 중순 정선 하이원 호텔에서 있었던 교수연수회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목적을 마치고 주변을 여행하기 위해 자가용을 가져갔는데, 마침 폭설이 내려서 운전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했다. 사실 목숨을 걸고 운전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하기야 목숨을 건 여행이 이번뿐이었겠는가? 

두 번째는 영월과 정선 지방을 훑으면서 지난 1학기 말 TV강의를 하려고 갔다. 그때도 마침 폭우가 쏟아져서 하루를 더 묵으면서 겨우 촬영을 마쳤다. 이번 여행은 김삿갓 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니 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홀가분했다. 그런데 문학예술인 40여 명과 동행한 버스 안에서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와 주변 지형지물에 대해 설명을 약간 했더니, 모임을 주최한 문학잡지사의 발행인께서 김삿갓 문학관에 도착하면 해설을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결국 사서 일을 만들게 되어 홀가분한 마음이 사라졌다.

덕평 자연휴게소 -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휴게소가 도심을 벗어나서 자연을 즐기려고 욕망하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쉼터역할을 동시에 하는 꽃길과 자연휴양림을 조성해놓아서 인상 깊었다.
덕평 자연휴게소-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휴게소가 도심을 벗어나서 자연을 즐기려고 욕망하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쉼터역할을 동시에 하는 꽃길과 자연휴양림을 조성해놓아서 인상 깊었다. ⓒ 박태상

일 년 사이에 세 차례나 김삿갓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전생에서 김삿갓을 만났던 것이 아닌가 판단되었다. 따라서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서 숨이 가빠 오를 정도로 흥분되었다.

하지만 전날 밤 밀린 논문원고를 집필하느라 잠을 거의 못자서 컨디션은 별로 안 좋았다. 여행 일정은 국립의료원 앞 출발 ->덕평 자연휴게소 방문, 코스모스 길 탐방 ->영월 김삿갓 문화제(2010. 10. 8 ~ 9) 참관 및 주거지와 무덤 방문 ->남양주 다산 정약용 유적지 탐방 ->남양주 미현 갤러리에서 예술공연 관람 및 바비큐 파티 등으로 구성된 빡빡한 일정이었다.

버스가 출발한 지 2시간쯤 지나서 덕평 자연휴게소에 도착했다. 동행한 시인의 후배가 그곳에서 서예글씨를 방문객들에게 써준다고 해서 기대감이 있었다. 또 마침 한글날이라 덕평휴게소와 사전 조율을 해서 한글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맙게도 휴게소 측에서 책임자가 나와서 커피 캔을 선물로 주며 행사를 도와줬다고 고마움을 표하면서 자연학습장인 코스모스 산책로를 안내해 주었다.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휴게소가 이렇게 여행객들을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고객들이 쉴 수 있도록 산책로와 계곡 그리고 다리를 만들어 놓는 경우는 드물다. 덕분에 모처럼 도시를 떠나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한글날 기념으로 박용호 시인이 자작시 <당신이 시인이 되려거든>을  마이크를 잡고 많은 일반 여행객들 앞에서 암송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울고 넘는 박달재에서 먹는 도시락 점심 - 여성시인들이 집에서 준비해온 밥과 얼간이김치 그리고 된장국을 먹는 맛도 여행의 한 기쁨이자 일정이었다.
울고 넘는 박달재에서 먹는 도시락 점심- 여성시인들이 집에서 준비해온 밥과 얼간이김치 그리고 된장국을 먹는 맛도 여행의 한 기쁨이자 일정이었다. ⓒ 박태상

 당신이 시인이 되고자 하거든
  고전시 5백편 이상을 찾아 10번 이상 읽고
  100편 이상을 외워라
  그 후에 당신의 시상과 근접한
  작법이나 작품의 유로 좁혀 보이거든
  당신은 그런 흐름의 글을 쓰기로 하라.

   당신이 시인이 되고자 하거든
   작시의 일점일획이라도
   수정됨을 거부하는 아집을 버리고
   기성문단의 원로를 통하여 평을 받아라
   혹평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나아 갈 바 길의 수업이요, 수양이라 여기라
    이때에 당신의 작품은 시가 아니고
    글자에 불과 했구나 여기고 받아들인다면
    먼 후일, 당신이 남의 글 평할 일이 있더라도
    사람을 보아 글을 평하는 우는 범치 않고
    글의 깊이를 통찰하여 평하는 자가 되리니

                     -박용호, <당신이 시인이 되려거든> 일부

박달재 조형물 - 이곳 성황당에는 박달재 아랫마을 금봉 처녀와 과거를 보러 가던 영남 박달 도령의 애달픈 사연이 전하는데, 그 유래로 인해 유행가요가 작곡된 것으로 생각된다.
박달재 조형물- 이곳 성황당에는 박달재 아랫마을 금봉 처녀와 과거를 보러 가던 영남 박달 도령의 애달픈 사연이 전하는데, 그 유래로 인해 유행가요가 작곡된 것으로 생각된다. ⓒ 박태상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여를 달려가니 영월로 접어드는 팻말이 보였다. 영월로 가는 길에 '울고 넘는 박달재' 유행가요로 유명한 박달재 고개를 넘었다. 점심도 박달재 휴게소에서 쉬면서 여성시인들 몇 명이 미리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과 된장국으로 먹었다.

천등산 박달재는 해발 453m, 길이 500m로 예로부터 제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관행길이 나 있으나, 첩첩산중으로 크고 작은 연봉이 4면을 에워싸고 있어 험준한 계곡을 이룬다. 이곳은 고려 고종 때인 1217년 7월 거란이 10만 대군으로 침공해 왔을 때 김취려 장군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전공을 세운 전승지로도 유명하다. 이곳 성황당에는 박달재 아랫마을 금봉 처녀와 과거를 보러 가던 영남 박달 도령의 애달픈 사연이 전하는데, 그 유래로 인해 유행가요가 작곡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행들 한 명씩 소개시간을 갖는 동안 김삿갓 문학관에 거의 도착했다. 기념관의 행정구역은 원래 영월군 하동면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개정하면서 가는 길 도처에 상점 등과 길 안내판에서 김삿갓 이름이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은 지방자치제가 확립되고부터 각 지자체들이 관광객유치에 열을 올리는 현상과 연관된다. 어느덧 김삿갓 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문학관 옆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마침 난고선생 작품세계 학술 심포지움이 끝나고 '우리 가락 좋을시고'가 진행 중이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 4명이 민요 창을 하다가 이어서 춤을 추고 있었다. 곧 이어 사물놀이 팀이 꽹가리를 치면서 흥을 돋우고 있었다. 공연 팀의 무대 바로 아래에서는 동시에 그동안 김삿갓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들이 공동 수상시집에 사인회를 하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었다. 시인의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제13회 김삿갓 문화제 -지난 주말인 10월 8일부터 9일 사이에 영월군 김삿갓면에서는 천재시인 난고 김삿갓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문화제가 열려 새로운 문화를 향수하려는 여행객들에게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제13회 김삿갓 문화제-지난 주말인 10월 8일부터 9일 사이에 영월군 김삿갓면에서는 천재시인 난고 김삿갓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문화제가 열려 새로운 문화를 향수하려는 여행객들에게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 박태상

팬들에게 시집에 사인을 해주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시인이 앞으로 나오면서 인사를 했다. 다름 아닌 학문적으로 친분이 많은 대구의 이동순 시인이었다. 반갑게 악수를 하면서 문학상 수상을 축하해주었다.

사실 이동순 시인은 2001년 제1회 김삿갓 문학상 수상자였다. 그 이후 이재무, 이승훈, 오세영, 문효치 시인이 바통을 이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문학상 시상제도가 없어졌던 모양이다. 2회 이재무시인에 이어 2007년도에 이승훈시인이 수상을 한 것으로 공동시집 <삿갓에 맺힌 이슬>에 설명되어 있다. 즐겁게 '코리아문학' 및 '문학신문'(발행인 최무송 치과병원장) 소속문인들과 함께 이동순 시인과 사진촬영을 했다.

여전히 고독한 김삿갓의 묘소   - 평생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독하게 시대의 모순과 맞서 살아갔던 천재 시인 김립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
여전히 고독한 김삿갓의 묘소 - 평생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독하게 시대의 모순과 맞서 살아갔던 천재 시인 김립은 수많은 관광객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 ⓒ 박태상

이어서 김삿갓 문학관을 둘러보고 그의 무덤 앞에서 동행한 문인들에게 '김삿갓의 삶과 문학'에 대해 해설을 했다. 민중시인 김삿갓은 평생을 방랑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병연이고, 호는 난고(蘭皐)이다. 김병연(1807-1863, 순조7~철종14)은 선천의 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자, 집안의 종이었던 김성수의 도움으로 경우 빠져나와 형 김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에 숨어 살았다.

그러던 중에 김익순에 대한 문제는 본인에게만 묻고 가문을 폐문한다는 조정의 결정이 알려지면서 모친과 함께 황해도 곡산을 떠나 할머니가 계시는 광주를 걸쳐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거쳐 영월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반역죄로 조부인 김익순이 능지처참을 당하고 집안이 폐족이 되었지만, 어려서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산속에 칩거하여 살았던 김병연은 모친 함평이씨의 지엄한 교육관 때문에 한시 등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학업에만 정진을 하던 김병연은 영월도호부가 동헌에서 실시한 백일장에서 그의 조부 김익순을 통렬하게 탄핵한 한시를 써내서 장원급제를 하였다. 하지만 김병연은 어머니로 부터 집안 내력에 대한 일들을 전해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문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멸시로 인해 22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을 떠난다.

김삿갓 조형물 앞에서 만난 유럽여성 - 마대산 자락에 있는 김삿갓 주거지를 방문하고 막 내려온 벽안의 유럽 여성이 난고시의 에스프리를 느끼면서 다가왔다.
김삿갓 조형물 앞에서 만난 유럽여성- 마대산 자락에 있는 김삿갓 주거지를 방문하고 막 내려온 벽안의 유럽 여성이 난고시의 에스프리를 느끼면서 다가왔다. ⓒ 박태상

이때부터 난고 김병연은 죄인의식으로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 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금강산 유람으로 방랑의 생활을 시작하여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를 돌았으며 도산서원 아랫마을과 황해도 곡산 등지에서 몇 해 동안 훈장생활을 했다.

22세부터 40여 년간 방랑생활을 하면서 읊은 김립의 시는 구전되어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김삿갓은 결국 1863년 57세로 전라도 화순 동복 구암리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으나 3년 뒤에 그의 차남 김익균이 부친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학문과 도를 닦았던 영월군 와석리 노루목으로 묘를 이장했다.

최종원 국회의원과 찰깍? - 예술축제에 연극인 출신의 예술인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냥 갈수가 있는가? 한 컷 찍어야지~~ 하필 이 중요한 때에 일행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최종원 국회의원과 찰깍?- 예술축제에 연극인 출신의 예술인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냥 갈수가 있는가? 한 컷 찍어야지~~ 하필 이 중요한 때에 일행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 박태상

문학관에서 김립의 묘소 쪽으로 가는 길에서 이 지역 국회의원으로 보궐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연극인 출신의 정치인 최종원 국회의원을 우연히 만나 사진 촬영을 하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관과 지역발전에 대한 그의 포부를 잠깐 들었다.

김립의 묘소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에 속한다. 그의 묘소 왼쪽은 태백산의 끝자락이며, 소백산 시발점인 이곳은 양백지간에 '유지앵소' 형국으로 정감록에 기록되어 있는 십승지 중의 한 곳으로 에너지가 함축되어 있는 지점이다. '柳枝鸚巢'란 버드나무 가지에 있는 꾀꼬리 집의 형국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번 여행은 일행들이 무려 40여 명이나 되어서 난고의 주거지까지 등반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5월에 방문했을 때는 ENG카메라를 둘러맨 촬영감독, 조감독과 함께 3시간 이상 마대산을 등반했다.

마대산은 백두대간이 선달산을 거쳐 고치령과 마항치 사이에 형제봉을 일으키고 북쪽으로 가지를 쳐 옥동천과 남한강에 가로막혀 지맥을 다한 산이다. 그곳은 그 산 동쪽 계곡에 김삿갓 유적지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산으로 봄가을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산이다. 김삿갓 주거지 주변은 왼 편으로는 충북 단양군, 오른편 아래쪽으로는 경북 영주시, 북쪽으로는  강원도 정선군이 얽혀있는 삼도의 접경지로, 단풍철에 특히 아름다운 산이다.

김삿갓 문학관에 서있는 난고의 풍자시 -김립은 정말로 다양다기한 한시를 수도 없이 지었다. 길거리에서 굶주리다가 죽은 걸인 소년의 시체를 보고 지은 한탄시를 비롯하여 고독한 방랑객의 아픔을 노래한 시 등 우리 삶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하다.
김삿갓 문학관에 서있는 난고의 풍자시-김립은 정말로 다양다기한 한시를 수도 없이 지었다. 길거리에서 굶주리다가 죽은 걸인 소년의 시체를 보고 지은 한탄시를 비롯하여 고독한 방랑객의 아픔을 노래한 시 등 우리 삶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하다. ⓒ 박태상

시간이 있을 때 연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버스여행이나 자가용여행을 오게 되면, 단종의 묘소가 있는 장릉, 청령포와 그 주변에 있는 중국의 장가계의 축소판인 '선돌(영월 10경의 하나)' 그리고 세계민속악기박물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더욱 초등학생이나 중고교 학생의 자녀를 두었다면, 영월읍에 있는 '별마로 천문대'를 찾아가 천문과학 교육관을 찾아보는 것도 자녀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을에 다시 찾은 영월은 여름에 많이 온 큰비 덕분에 계곡에 물도 많았고 산에 단풍나무의 붉은 기운과 함께 마대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푸른 바람을 얼굴로 맞댈 수 있어서 동행한 문인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덧붙이는 글 | 가난하게 살다간 한 천재시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지자체 중 하나인 강원도 영월군을 먹여살린다. 역사적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치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 미국의 막트윈의 문학관이 그의 가난한 촌 고향을 먹여살리듯이~~



#영월문화탐방기#김삿갓문화제#울고 넘는 박달재#코리아문학, 문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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