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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5회를 맞아 치러진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오늘(10월 15일)을 마지막으로 그 축제의 막을 내린다. 예년에 비해 한산한 풍경을 연출한 올해의 경우 현장 판매 티켓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해의 경우 대체로 흥행작 위주로 작품이 선정됐고 부가적인 행사가 많아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영화제를 맞이한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의 경우 부산영화제를 찾는 국내외 인구가 예년에 비해 저조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한산했던 올 가을 부산영화제는 잔잔한 감정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면 중국감독 장이머우의 <산사 나무 아래>를 들 수 있다.
 
역사 속에서 건져 낸 아름다운 스토리텔링
 
이 영화는 1966년부터 76년 사이에 있었던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격동하던 그 시절의 정치와 사회보다는 흔들리던 역사의 가운데에서 두 청춘 남녀의 순박한 사랑을 그리고자 한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 한다.
 
실제로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에 십대 시절을 보낸 장이머우 감독은 국민당원인 아버지 때문에 비판을 받고 가족이 모두 베이징에서 쫓겨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이후 실항지에서 방직공장에 다니며 야구를 통해 생의 의욕을 다졌다. 이때의 경험이 그의 영화 <국두>(1990)를 찍는 데 반영되어 방직공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등장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거나 가부장제에 대한 경각심, 여성과 육체의 해방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오늘날의 중국문제를 소소한 일화를 중심으로 다루는 형식이다. <산사나무 아래>도 이런 맥락과 함께 한다.

 

혁명속에 피어난 사랑, 영화 <산사나무 아래>

 

마오쩌둥의 주도로 발동된 문화대혁명시절은 매일마다 대규모 군중운동의 연속이었다. 한 손에는 마오쩌둥어록을 들고 문화대혁명을 통한 새로운 사회주의사회의 건설을 부르짖으며, 모든 생산활동은 정지됐다. 파괴와 비난은 미덕이 되었으며, 전 인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치 학습에 시달려야만 했던 도덕 불문의 시대였다. 그 시절 '농촌으로 가서 배우라'는 마오쩌둥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 여고생 징치우의 이야기가 이 <산사 나무 아래>의 내용이다.

 

징치우는 시골의 지주집에 묵으며 산사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원래 산사나무는 흰 꽃이 피지만 그곳에 있는 나무에서는 붉은 꽃이 핀다는 것이 요지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이 투쟁의 결과로 생긴 피가 땅에 흘러들어서 붉은 산사나무 꽃이 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 내내 붉은 산사꽃은 '열정'이라는 모티브로 작용하여 주인공들의 감정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징치우는 그 집에서 20대 초반의 섬세하고 정이 많은 청년 라오산을 만나게 되어 인간적인 면모에 이끌리게 되지만, 이후 도시로 돌아와 일상에서 힘겨운 생활을 계속 이어간다.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된 뒤, 그녀는 학교에 취직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당부를 늘 잊지 않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나타나서 몰래 도와주던 라오산을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장녀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런 징치우를 바라보면서 라오산은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라오산을 바라보며 붉은 산사꽃 같은 옷을 입은 징치우가 그 앞에서 오열을 하며 그들의 순수했던 사랑은 끝이 난다.

 

중국 현대사에서 문화대혁명이 가진 이미지는 무조건적인 폭력과 억압으로 구시대 관습과 유물을 타파하고 봉건잔재를 청산함으로써 사회 변혁을 이루자는 핵심 기치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 숱한 부르주아와 지식인들이 고초를 겪었고, 마오쩌둥의 열혈사상에 이유 불문하고 동조하던 열혈청년 홍위병들은 같은 민족에게 붉은 피를 흩뿌리는 과오를 저지르게 되었다.

 

장이머우 감독이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우리에게 시사하고 싶었던 바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이라고 한다. 사회의 변화된 환경 때문에 이제는 점차 사라져 가는 '순수함', '각박한 시대 상황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수함'은 섬세하고 정감 어린 연출을 통해 표현되었고, 신파극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올 가을 부산 국제 영화제의 바다를 눈물로 물들이는 가을 감성 영화로 팬들의 가슴에 남게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산사 나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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