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구려 고분군
평양 주변의 고구려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2004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그것은 북한이 폐쇄적인 사회여서 그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민족인 우리가 북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거나, 알려는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을 알리는 방송이 있어 그 내용을 미리 보게 되었다. 독일의 남서독일방송(SWR)을 통해서다. 원래 방송은 10월16일 13시50분에 나갈 예정인데,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 내용과 비디오 파일을 미리 올려놓았다. 제목은 '고구려 고분(Koguryo Graeber)'이고 방송시간은 14분48초이다.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보면 강서대묘 사진이 나온다. 그리고 그 아래 고구려 고분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고대 한국 사람들은 사후의 삶(後生)을 믿었기 때문에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경우 큰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그 안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는, 기원전 37년부터 668년까지 가장 강력한 동아시아 국가 중 하나였던 제국의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소개하는 방송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독일의 남서독일방송(SWR)이 가장 유명하다. 현재는 드라이자트(3sat)와 함께 세계유산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방송사를 통해 소개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400편쯤 된다. 참고로 KBS에서는 1997년 9월부터 1998년 1월까지 남서독일방송(SWR)에서 제작한 세계유산 55편을 방송한 바 있다. 그때 그 비디오 텍스트의 번역을 필자가 했다.
강서 대묘
방송은 처음 1500년 전에 만들어진 강서대묘를 보여주며 고구려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한다. 그리고는 현재 평양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북한을 고구려의 터전에 세워진 국가라고 말한다. 이어서 북한은 호전적인 국가로,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소위 주체사상을 설명하는 것 같다. 그리고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다. 이 동명왕에 대해 학생 때부터 관심을 가진 사람이 김인철이며, 그 때문에 현재 그는 북한의 역사학자가 되었다.
방송은 이제 김인철과 함께 고분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먼저 100개가 넘는 고구려 고분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강서대묘를 찾아간다. 봉분 높이가 12m나 되는 고분 내부에는 비밀로 가득찬 종교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내부가 좁고 어두워 곰팡이 냄새가 나지만, 고분은 유리로 잘 보호되고 있다.
강서대묘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방송에서는 그 중 북쪽에 있는 현무를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현무는 거북과 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용, 불사조, 거북, 뱀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또 거북과 뱀은 음과 양을 상징하며 영원히 움직이면서 변신의 과정(윤회: 輪廻)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사신이 죽은 자가 저승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이어서 이야기는 중국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온 불교로 바뀐다. 아마 윤회라는 것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불교는 372년 고구려의 국교가 되었고, 이후 국가의 후원 하에 많은 절들이 생겨났다. 평양 근교에 있는 광법사(廣法寺)도 그 중 하나다. 이 절은 역사 속에서 여러 번 불탄 후 1990년 재건되었는데, 장식이 풍부한 나무조각과 화려한 단청으로 유명하다.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에서는 현재 종교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승려들은 신도들도 없이 개별적으로 기도를 할 뿐이다.
안악 고분
대동강변의 평양이 고구려 수도가 된 것은 427년이다. 당시 1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던 평양에는 현재 300만 명이 살고 있다. 수도 이전 후 평양에는 성이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성문이 보통문과 대동문이다. 비디오 자료에는 보통문이 소개되고, 사진 자료에는 대동문이 소개된다. 이들 성은 도시에 세워진 도성과 산에 요새로 만들어진 산성으로 나누어진다.
고구려 사람들은 이들 성에서 적과 싸웠는데, 전쟁과 방어를 위해 꾸준히 체력을 길러야 했다. 체력을 기르면서 생겨난 무도(武道)가 바로 태권도다. 고구려 사람들이 태권도를 연마한 그림이 바로 안악고분에 남아있다. 수박도(手搏道)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무예로, 상투를 틀고 팬티만 걸친 두 사람이 대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안악고분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지 김인철은 평양에 있는 역사박물관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안악고분이 실물 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고분 안으로 들어간 김인철은 고분벽화 중 묘주의 초상화, 부엌의 모습을 그린 그림, 행렬도를 소개한다. 최근 연구 결과 안악3호분의 주인공은 고국원왕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 방송은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고, 의복과 두건이 중국풍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부엌의 모습을 그린 주방도는 4세기 중반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솥과 아궁이 등이 있고, 한 여인이 큰 솥 앞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 아궁이와 목조 흙집으로 보아 당시에도 온돌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현재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고 이어진다.
세 번째로 소개되는 그림이 군사행렬도다. 250명이 넘는 인물이 그려진 높이 2m, 길이 10.5m의 대형 그림이다. 그림에 보면 수레를 탄 주인공을 문무백관이 따르고 그 주변을 기병과 보병이 호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주인공 앞에서는 악대와 무동들이 흥을 돋우고 있다. 수레 뒤쪽으로는 기수들이 호종하고 있다. 한 마디로 위풍당당 행렬도다.
그러나 사진과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고구려 옛 땅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고구려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평상시 고구려 군대는 5만 명 정도를 유지했지만, 전시에는 20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고구려 국민들은 상무정신을 가지고 외적을 물리쳤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는 한반도 최초의 제국으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가장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한 국가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구려는 668년 멸망했고, 현재 북한이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동명왕릉을 성역화하면서 자신들이 고구려의 후예임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순례하는 역사 코스에 아마 동명왕릉이 들어있는 것 같다. 우리가 보통 주몽이라고 하고, 광개토대왕비에 추모라고 기록되어 있는 왕이 바로 동명왕이다.
나는 이번 방송 자료를 통해 그나마 평양과 그 주변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고분의 내부와 외부를 보면서 고구려 역사와 세계관 그리고 종교관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고분벽화를 통해 1,500년 전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림과 동영상으로 아무리 보면 뭐하나? 내 눈으로 현장을 직접 보고 또 그 땅을 밟아보지 않고는 실체의 10%도 알 수 없는 게 현실인 것을. 『삼국사기』를 만 번 읽는 것보다, 만주의 고구려 유적을 한 번 방문하는 것이 낫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언제쯤이나 그곳에 가 볼 수 있으려나? 고구려 고분군과 평양성 그리고 역사박물관을.
덧붙이는 글 | 독일 남서방송국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구려 고분군’ 이 소개된다. 이를 계기로 다음 회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품고 있는 도시 평양을 살펴보려고 한다. 평양은 현재 북한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평양에 가보지 못한 기자로서는 ‘고구려 고분군’ 방송에 나온 비디오와 사진 자료, 국내에서 나온 도서 자료, 인터넷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서양의 최신 자료를 참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