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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행장 (14)

 거사 직후 안중근
거사 직후 안중근 ⓒ 눈빛출판사
유동하는 곧 동흥학교로 떠나고 방에 남은 두 사람은 가사를 지었다. 그들의 결행이 성공하면 <대동공보>에 두 사람이 작사한 글을 싣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안중근은 한시로, 우덕순은 한글시를 지었다. 이른바 <장부가(丈夫歌)>와 <보구가(報仇歌)>였다.

장부가(丈夫歌)

丈夫處世兮 其志大矣
時造英雄兮 英雄造時
雄視天下兮 何日成業
東風漸寒兮 壯士義熱
憤慨一去兮 必成目的
鼠窃ㅇㅇ兮 豈肯比命
豈度至此兮 事勢固然
同胞同胞兮 速成大業
萬歲萬歲兮 大韓獨立
萬歲萬歲兮 大韓同胞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차가우나 장사의 의기는 뜨겁도다
분개하여 한번 지나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 도적 ○○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
어찌 이렇게 될 줄을 헤아렸으리요 사세가 본디 그러하도다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 지어라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만세여 대한동포로다

 거사 직후 우덕순(이명, 우연준)
거사 직후 우덕순(이명, 우연준)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보구가(報仇歌)

만났도다 만났도다 원수 너를 만났도다
너를 한번 만나고자 일평생에 원했지만
하상견지만야(何相見之晩也)런고
너를 한번 만나려고 수륙으로 기만리(幾萬里)를
혹은 윤선(輪船) 혹은 화차(火車) 천신만고 거듭하야
노청양지(露淸兩地) 지날 때에 앉을 때나 섰을 때나
앙천(仰天)하고 기도하길 살피소서 살피소서 주 예수여 살피소서
동반도의 대제국을 내 원대로 구하소서
오호 간악한 노적(老敵)아  우리민족 이천만을
멸망까지 시켜놓고 금수강산 삼천리를
소리 없이 뺏노라고 궁흉극악(窮凶極惡) 네 수단으로
대한민족 이천만이 다 같이 애련하여
너 노적을 이 정거장에서 만나기를 천만번 기도하며
주야를 잊고 만나고자 하였더니 마침내 이토를 만났고나
금일 네 명(命)이 나의 손에 달렸으니
지금 네 명 끊어지니 너도 원통하리로다
갑오독립 시켜놓고 을사체약(乙巳締約)한 연후에
오늘 네가 북향(北向)할 줄 나도 역시 몰랐도다
덕 닦으면 덕이 오고 죄 범하면 죄가 온다
너뿐인 줄 아지 마라 너의 동포 오천만을
오늘부터 시작하여 하나 둘씩 보는 대로
내 손으로 죽이리라 오호라 우리 동포여
한마음으로 전결(專結)한 후 우리 국권 회복하고
부국강병 꾀하며는 세계에 어느 누가 압박할까
우리의 자유가 하등(下等)의 냉우(冷遇)를 받으니
속히 속히 합심하고 용감한 힘을 가져
국민 의무 다하세.

거사자금 부족으로 곤경에 처하다

 거사 직후 유동하
거사 직후 유동하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우덕순의 흥얼거리는 노래는 꽤 길어졌지만 본인은 어딘가 부족한 듯 했다. 하지만 유동하가 돌아오는 바람에 거기서 그쳤다.

"아이 추워."

유동하는 입술을 떨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얼빈의 송화강은 11월이면 얼음이 얼 정도로 추위가 빠르다.

"그래 대답은?"
"김성백씨는 가진 돈이 없다고 거절했어요."
"알겠네."

안중근은 체념을 하고는 우덕순과 쓴웃음을 지었다.

"수고했네. 내일 하얼빈 역까지 안내를 부탁해."
"남쪽으로 같이 갈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 조도선이라는 사람이 곧 올 거야. 그러나 자네도 역까지 바래다주게.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하얼빈에 남아 연락을 맡아주어야겠어."
"여기서 며칠을 기다려야 합니까?"
"길어야 이삼 일이야."

유동하는 울상을 지으면서 여동생 부부 방으로 갔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우덕순이 말을 꺼냈다.

"자금 부족은 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뭔데."
"조도선 씨에게 아무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하얼빈 떠나기 전에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거사 직후 조도선
거사 직후 조도선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그때 조도선이 찾아왔다. 
- <광야의 열사 안중근> 102쪽~104쪽 발췌 요약정리

이튿날 하얼빈에 있는 김성백(金聖伯)의 집에 이르러 유숙하고, 다시 신문을 보고 이토가 오는 날짜를 자세히 탐지하였다.

또 그 이튿날 다시 남쪽으로 창춘(長春) 등지로 가서 거사하고도 싶었으나 유동하가 본시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 곧 저희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다시 통역할 사람을 얻으려하던 중, 조도선(曺道先)을 만나 가족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자고 했더니, 조씨는 곧 승낙하였다.

그날(1909년 19월 23일) 밤은 또 김성백의 집에 묵었다. 그때 여비가 부족할 것이 걱정스러워서 유동하를 시켜 김성백에게 가서 50원만 빌려가지고 오면 곧 갚겠다고 말하라고 하여, 유씨가 김씨를 찾아갔으나 그냥 돌아왔다. 그때 나는 홀로 등불 밑 차디찬 상 위에 앉아 잠깐 동안 장차 행할 일을 생각하며, 강개한 마음을 이길 길 없어 노래 한 수 읊었다.

[丈夫歌] 생략

이렇게 읊기를 마치고, 다시 편지 한 장을 써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대동공보 신문사에 붙이려 했으니, 그 뜻인즉 첫째 우리들이 행하는 목적을 신문에 널리 알리자는 것이요, 또 한 가지는 유동하가 만일 김성백에게서 50원을 꾸어 온다면 갚아줄 방책이 없기 때문에, 대동공보사에서 갚아주도록 하는 핑계로 말한 것이니 그것은 잠깐 동안의 꾀였다. 편지 쓰기를 끝마치자 유씨가 돌아왔는데 돈을 꾸지 못했다고 하므로 자지도 못하고 그날 밤을 지새웠다.
- <안응칠 역사> 166~170쪽

 중국국기가 펄럭이는 오늘의 하얼빈 거리
중국국기가 펄럭이는 오늘의 하얼빈 거리 ⓒ 박도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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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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