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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성당-박정희 대통령의 결혼식장

대구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성당이 많다. 그중 계산성당은 아름다운 성당 외관과 특별한 역사를 지닌 곳으로 유명하다. 성당 산하 기관인 대구 매일신문도 바로 옆에 위치해 있고, 대로변 앞인데도 전반적으로 고즈넉한 분위기다. 계산성당은 건립 초기에 한옥형 건물이었는데 화재로 처음 건물은 소실되고 1902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00년이 넘은 건물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지금 봐도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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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 성당 정경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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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암울한 시절 외국의 선교사들이 방황하는 조선인에게 복음을 전파한 곳이다. 또한 1951년 김수환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이며,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때 당시 주례하신 분이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 하며 신랑 신부의 이름을 혼동하여 주례를 하여 하객들이 유쾌하게 웃었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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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 성당에서 바라 본 제일교회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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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성당 주변에는 오래된 주택이 많다. 그곳에 사는 노인들은 대체로 천주교 신자인 경우가 많은데, 경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고 있다. 그들 역시 이 거리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구 천주교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 옛날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앙심을 잃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신에 대한 사랑, 그 근원은 바로 이런 순박한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1901년 2월 4일 지진으로 화재가 나서 소실됨
▲ 1899년 축성된 한국식 십자형 목조 성당 1901년 2월 4일 지진으로 화재가 나서 소실됨
ⓒ 계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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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1년 대어벌 임시성당(현 인교동) .
ⓒ 계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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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성당은 유서가 깊은 곳인 만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화가 많다. 이 성당 뒤편에 살았던 이상화 시인은 이곳을 모티브로 하여 '나의 침실로'라는 시를 지었고, 대구 출신의 화가 이인성은 이곳의 풍경을 몇 점 남겼다. 계산성당 마당에는 화가 이인성이 보고 그린 감나무가 아직 남아있어 이를 '이인성 나무'라는 이름으로 보존하고 있다.                  

제일교회-민족항쟁의 근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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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제일교회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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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교회는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곳이다. 1893년에 세워진 이 교회는 경북지방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서 건물 외관에 고딕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대구지역 근대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한국 근대에 선교사들이 근대 의료 및 교육을 전개한 거점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조선말기 세계의 격류를 외면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아래 도처에 척화비가 세워졌고, 가톨릭 교회는 그 쇄국 정책에 큰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조선의 종교로서는 신라시대 이래의 불교와 조선시대 이후의 유교가 있었다. 이 양대 종교는 모두 그 전성기에 국가적 종교 위치에 있어 국민의 신앙으로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문화, 윤리, 풍속 등에서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불교가 조선시대의 배불정책과 유교의 흥왕에서 퇴각하고, 유교 역시 조선의 쇠퇴와 더불어 그 영향력을 잃었다. 이후 그리스도교 복음이 우리의 땅에 전래했을 무렵에는 우리 민족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이 같은 정신적 공허상태는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서 대성하게 된 한 원인이 되었다. 그 가운데 대구 제일 교회 역시 대구 경북 지방 사람들의 정신적 구원을 위해 노력했다. 

식민지 역사의 언덕,그 속에 피어난 사랑

제일교회의 바로 옆에는 이국적인 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 집들은  일제시대 우리나라에 와서 교육과 종교, 의료 사업을 펼쳤던 선교사들의 집이다. 이제 역사박물관이 된 이곳은 최근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을 촬영한 장소로 유명하며, 각종 영화의 배경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 안에는 100여 년에 걸친 대구 지역 선교, 의료, 교육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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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병원 의료선교 박물관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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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양식이 어우러진 건물 기초는 조선 영조 때 대구읍성 축성 당시 사용된 성돌을 올리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또한 2007년에 시민환경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관한 '잘 가꾼 문화유산'에 선정되기도 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각각의 선교사 주택마다 '선교박물관(스위츠 주택,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의료박물관(챔니스 주택,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5호)', '교육역사박물관(블레어 주택,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6호)'으로 구성되었다. 3곳 모두 1906년~1910년 무렵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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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병원 개원 100주년 기념 종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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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박물관에는 각종 성경과 기타 선교 유물, 기독교 전래과정 등의 사진자료, 성막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의료박물관에는 동·서양 의학 의료기기가 전시돼 있다. 교육역사박물관에는 시대별 교과서 및 민속자료, 대구 3·1운동 관련 자료 및 사진, 2002월드컵 관련자료 및 사진, 2003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고풍스러운 박물관 외관과 더불어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드라마나 영화 촬영, 예비 신혼부부의 웨딩 촬영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대구시 시티투어 코스에도 포함돼 매년 5000~8000여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와 대구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의료선교박물관이 위치한 언덕에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가곡 '동무생각'의 모티브가 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라는 가사를 가진 이 노래에서 '청라(靑蘿)'는 '푸른 담쟁이덩굴'이란 뜻이며, 푸른 담쟁이덩굴로 덮인 이 언덕을 의미하는 구절이다.

가사 중에 '백합'이란 단어는 작곡자 박태준이 학창시절 그 언덕을 지나며 등하굣길에 마주치던 한 여학생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이런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를 들은 작사가 이은상이 즉석에서 노랫말을 지어 가곡 '동무생각'이 탄생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도 인근 학교의 수많은 중고생들이 그 언덕을 지나서 등하교를 하고 있다.

이곳을 관리하는 동산병원에서는 병원과 연계하여 의료관광화했다. 한국의 뛰어난 의술로 병을 치료하며, 더불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배우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의료 관광의 핵심이며, 이는 미래지향적인 문화 나눔의 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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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길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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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병원 의료선교박물관 아래로 이어지는 3·1 운동 길에도 역사가 스며 있다. 3·1운동 당시에 대구 지역의 학생들이 이 길을 통해서 시내 쪽으로 달려 내려가 만세 운동을 벌였던 역사가 담겨져 있다.

대구의 도심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담고 있는 골목들이 많다. 우리가 그간 관심 가지지 않고 돌보지 않아서 잃어버린 것들이 많지만, 섣부른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라 옛 것을 잘 지키고 조상의 정신을 후대에게 잘 계승하며, 이를 바탕으로 나라의 국력과 가치관을 다지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유산들이다.


태그:#대구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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