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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소비를 주도했다. 자연히 세계 경기 또한 미국이 선도했다.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세계 경기가 몸살을 앓는 등 위기에 내몰렸다. 이 같은 세계 경제에 대한 미국 영향력의 배경에는 정치·군사적 우위와 함께 미국 화폐인 달러화가 국제거래의 기준이 되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미 달러화는 곧 국제무역 및 각종 국제금융거래의 기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다고 했다. 8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세계 경제에 대한 역할은 점차 축소된다. 이 시기 일본과 독일 경제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미국 경제의 세계사적 지위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 이 시기 일본 경제는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통해 무역대국으로 발돋움했고, 이때 벌어들인 달러화를 미국에 재투자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일본은 미국의 주요 부동산을 사들였고, 유명 영화사 등도 사들이게 된다. 그리고 막대한 미국 국채를 사들여 미 달러화 가치의 변화에도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로써 그동안 미국이 자국화폐인 달러를 기반으로 구축했던, 소위 달러(금융)제국주의의 지위가 타격을 입는다. 이 결과 빚어졌던 것이 소위 85년의 플라자 합의다. 이 플라자 합의를 통해 미국은 달러화에 대한 엔화환율을 급격이 끌어올린다. 이로써 엔화가치는 폭등한다. 이후 일본 경제는 이때의 충격에서 좀 채 벗어나지 못했다.

그 파장으로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다. 이 같은 경기퇴조를 막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일본은 지준율을 낮추고 제로금리를 채택하는 한편 더 나아가 통화의 양적완화에까지 나선다. 이 같은 일본의 대응은 그 시기 일본 내 부동산 가격을 포함하여 주가 등 각종 자산가격을 폭등시킨다. 그러나 90년대 초 이 같은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함께 물가문제가 본격 제기되자 이번에는 지준율을 인상하는 한편 금융 긴축에 나서게 된다. 이 결과는 부동산 가격의 폭락 사태가 연잇게 되고, 주가를 비롯한 자산 가격 또한 급락한다.

한편 일본 경제가 이렇게 망가진 데에는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화환율 급등과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수출의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수많은 제조업의 해외 이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본 경제 역시 당시 수출이 주요 성장 동인이었다. 이 결과 일본 국내는 경제공동화 현상이 야기된다. 이 같은 일본 내 경제공동화 현상은 국내 실업의 확대와 함께 국내소비 위축을 불렀고, 종래 그나마 국내에 남아있던 주요기업들의 생산위축을 부른다. 일본 국내 주요기업의 생산위축은 명퇴와 함께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 몰린다. 이 결과 그 동안 일본이 자랑했던 평생직장의 개념 또한 이시기에 해체되고 만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할 때 85년의 플라자 합의는 일본 경제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재의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 중국은 이 같은 일본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위안화 가치 절상 요구에 대해 무역보복에 나서는 등 보다 강경하게 중국이 대응하는 것도 그 같은 교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실 중국 경제 역시 성장주요 동인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런 상태에서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중국이 굴복하면, 중국 경제 역시 새로운 타격과 함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경제를 답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물론 중국의 경우 경제 상황이 여러모로 당시 일본과는 다르다. 따라서 위안화 절상의 파장 역시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긴 하다. 그러나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 보고 놀라듯 중국 역시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경제 침몰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그러나 미국 역시 중국과의 환율 전쟁에서 그냥 물러설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현재의 중국 역시 85년 당시 일본처럼 막대한 달러 보유를 통해 달러화 가치 변동에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고정환율제도(2005년 통화바스킷제도 채택)를 채택하고 있다.

이처럼 미중간의 환율전쟁은 당사자간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고, 세계 주요국의 환율문제로 비약되고 있다. 이 문제가 이처럼 비약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2008년 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주요국은 그동안 재정확대 정책과 함께 금융완화 정책을 적극 실시했다. 이 결과 세계 주요국 대부분이 재정적자의 확대와 함께 초저금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이제 더는 재정을 확대하거나 금리를 추가적으로 더 낮출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른 상태다. 이렇고 보면 자국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수출을 확대해야 하며, 이를 통해 경상수지 또한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율을 낮추는 방법 외에는 또 다른 수단이 없어진 셈이다. 최근 세계 주요국간의 환율전쟁이 격화되는 것과 이 점이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편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금융완화 정책은 세계금융시장에 달러화의 과잉 공급 상태를 초래하고 있고, 종래 이 같은 미국의 금융완화 정책이 자산버블을 다시 불러 세계경제를 새로운 위기로 몰고 가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금융시장에 넘쳐 나는 과잉 달러는 한국을 비롯한 주요 신흥국 시장으로 흘러들고 있고, 그것은 종래 이들 국가의 물가 상승압력으로 작용하는 한편 자산버블을 불러올 개연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시장 움직임에 중국을 비롯해 브라질 등이 일부 국가는 자국의 금리를 인상한다든가 아니면 자국 채권투자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 단행된 중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중국 경제 자체가 당면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이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경제동향을 고려한 조치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에 유리하도록 해석하려는 경향이 세계 주요국 학자들에 의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이번 기준금리 인상이 위안화 환율인상 효과로 이어지리라는 것 등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해석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잘못된 해석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왜 환율전쟁인가? 이는 자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세계 주요국의 몸부림이다. 따라서 이 환율전쟁을 합리적으로 세계가 조율하지 못하면, 세계경제는 보호무역을 보다 강화할 수박에 없고, 종래 무역전쟁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세계 주요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조율할까? 오는 11월 12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 역시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룰 것이고, 그 결과가 주목되는 것도 또한 이 때문이다.


#환율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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