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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야, 마우스가 뭐냐?"

"예, 무슨 마우스요?"

"거, 컴퓨터에 있는 것 말이다."

 

아침식사를 하시다가 불쑥 내게 묻는 71세 노모다.

 

"어머니가 컴퓨터 마우스를 어떻게 아세요?"

"어제부터 H노인센터에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그것을 배워가지고 어디에다 써먹으시게요. 괜한 고생마세요."

"아니어야, 노인들한테 ㄱ, ㄴ부터 가르쳐주고 그것을 배우면 치매도 예방한다고 하더라."

"어머니, 그 시간에 차라리 운동이나 하세요"

 

어머니는 1주일에 2회 컴퓨터를 배우시려고 1만원의 수강료를 내셨다고 한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컴퓨터 교재 몇 페이지를 넘겨봤다. 그런데 글씨가 너무 작아 내가 보기도 힘들다. 성경책을 읽으시려면 돋보기 안경을 쓰셔야만 하는 어머니에게는 무리다.

내가 처음 컴퓨터 배울 때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아침에 컴퓨터 배우시는 것을 포기하시라고 말씀드려서, 나는 그러실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으신 것 같다. 내가 잠시 가게를 비운 사이, 성당에 가시는 길에 가게에 들르신 어머니는 내 컴퓨터 앞에 앉으셔서 마우스를 만지고 계시지 않는가.

 

내가 가게에 들어오자 깜짝 놀라신다. 컴퓨터 화면이 까맣다. 마우스로 블록을 지정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오기 전에 블록을 풀어야 하는데 풀지 못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시다.

 

"어머니 그렇게 컴퓨터가 배우시고 싶으세요?"

"아니다, 나 성당 간다."

 

이렇게 말하시고는 휭 나가신다.

저녁식사 무렵에 어머니 전화다.

 

"저녁밥은 먹었냐?"

"네."

"아까 형한테 전화가 왔는데 내가 컴퓨터 배운다고 했더니 잘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너는 싫으냐?"

"어머니 알았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지금 당장 설치해 드릴게요. 집에 계세요."

 

컴퓨터 A.S회사에 전화를 해 컴퓨터를 설치했다. 그리고 다음날 인터넷도 신청했다.

애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에 없어, 집에는 컴퓨터가 없다. 어머니에게 무조건 항복(?)이다.

 

지난해 겨울, 어머니는 눈길에 넘어져 팔이 부러지고 다치셔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셔서 컴퓨터를 배우시겠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다음날. 컴퓨터 켜는 것부터 컴퓨터 낱말 연습장 프로그램을 여는 것 ,컴퓨터 끄는 것까지 가르쳐 드렸다. 어머니가 가장 어려워하시는 것은 클릭을 하기 위해 커서를 맞추는 것과 더블클릭을 하는 것이었다. 어깨에 잔득 힘을 주고 연습을 하신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1단계 연습이지만 자판에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하시려고 노력한다. 그러시면서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하신다. 나는 지금도 왼손 두 손가락과 오른손은 한 손가락으로만 자판을 사용한다. 거의 독수리 타법이다.

 

한 마을에 전화가 한 대 밖에 없어 시골 동네사람 모두가 이용했던 시절, 감나무 위에 걸려있는 스피커에서 "00댁 광주서 전화 왔습니다, 전화 받으세요"라는 소리가 들리면 서둘러 가 전화를 받던 시절을 사셨던 어머니가 핸드폰 컴퓨터로 이어지는 문명의 이기들을 멀리하지 않고 배우시려는 것이 요즘은 대단해 보인다.

 

"쌍 기억은 어디를 누르고 쓰라고 했는데 안 된다. 어떻게 허냐?"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 나를 불러 세운다.

 

"여기를 누르고 이렇게 하면 되요."

"아, 그렇구나"

 

즐거워하시는 어머님에게 출근인사를 하고 아파트를 나선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뭇잎 색깔을 보며 세월의 빠름이 실감난다. 그리고 점점 작아진 꿈을 보며 가을에 드리워진 허망하고 쓸쓸한 그림자가 함께 있자고 한다. 아직은 내 인생에도 초록색 이파리가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말이다.

 

인생의 늦가을을 보내고 계신 어머니가 요즘은 오히려 단풍잎들 사이에 몇 잎 남아있는 쌕쌕한 초록 잎처럼 보인다. 너무 기초적인 것을 모르고 물으실 때는 짜증도 나지만 그런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관리 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다. 그리고 틈틈이 어머니께 컴퓨터를 가르쳐드리면서 작은 소망 하나가 생겼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열심히 배우셔서 첫눈이 내리는 날 이런 글을 메일로 받고 싶다.

 

'애비야, 우리 가족 늘 건강하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자.'

 

내 욕심일까.


태그:#어머니,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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