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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홉 살 때 보셨다는 서커스 이야기를 여러번 하셨어요. 어머니 표현을 따르면 누워서 두 발을 치켜들고 그 위에 사다리를 세웠다고 합니다.(놀랍죠?) 그런데 어떤 소녀가 그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가서 누웠다고 해요.(더 놀랍죠?) 그런데 누운 사람이 두 발을 바꿔가며 사다리를 뱅글뱅글 돌렸다나요.(이 말을 믿어도 될까요?)

어머니는 진짜라고 합니다. 저는 못 믿겠다고 고개를 흔들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손짓 발짓까지 해 가며 그 흐릿한 기억의 실체를 입증하시려고 안간힘을 쓰십니다.

3급 장애와 치매, 그리고 듣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가장 흥겨운 것이 서커스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유독 그 기억만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 싶습니다. '워낭소리'와 '차마고도' 다큐를 재밌게 보셨던 어머니는 동적인 영상이 대사와 감정표현보다 더 직감적일 것입니다.

지금껏 서커스를 보여 드리려고 인터넷의 서커스 동영상도 찾고 '동춘서커스'의 공연장을 검색 해가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바로 옆 고을 진안에서 서커스 공연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냉큼 갔지요.

진안예술회관입니다. '추억의 서커스'라는 펼침막이 보입니다.
▲ 진안 마이산축제 진안예술회관입니다. '추억의 서커스'라는 펼침막이 보입니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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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아내와 통화를 했는데 시간이 괜찮다고 하길래 만나서 함께 서커스장에 들어갔습니다. 넓다란 공연장 안에는 진안군 군민들이 많이 와 계셨습니다. 농번기 바쁜 일정에 잠시 흥겨운 잔치가 보약같은가 봅니다. 한 잔 걸친 사람들이 무대 앞에서 진행과 무관하게 막 춤을 추며 맘껏 즐기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외줄타기
▲ 줄타기 외줄타기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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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머니가 별로 안 놀라시더니 서커스 공연이 중반에 접어들고 외줄타기가 시작되자 저런..저런.. 하시기 시작했어요. 이 묘기를 보고 사다리 돌리기보다 더 어려운 거라고 제가 했더니 한사코 어머니는 태도를 돌변하여 "저까짓거는 아무나 한다"고 하시네요. 외고집 우리 어머니답습니다.

서커스 공연
▲ 물구나무 서커스 공연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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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녀는 한 손을 옮겨가며 받침대를 좌우 하나씩 차례로 쌓아 올라갔습니다. 그 소녀가 한 손을 옮겨가며 받침대를 쌓는 모습은 아찔했습니다. 어머니는 집중을 하고 서커스를 관람하셨습니다.

흥겨워 하시는 모습
▲ 구경 흥겨워 하시는 모습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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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구경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막 춤을 추는 동네 노인네들을 더 흥미로워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곡예사들이 주로 10대 청소년들이었고요. 20대 후반 정도가 한 두분 있었는데 아마 단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부류에 속하는 듯 했습니다.

일곱살 쯤 돼 보이는 쌍둥이 소녀가 나와서 연기(?) 할때 제가 떠 올린 단어는 '학대' 였습니다. 몸에 대한 학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작은 통속에 들어가서 부리는 묘기와 연체동물처럼 온 몸을 마구잡이고 구기고 젖히고 하는 동작을 보고있자니 알 수 없는 슬픔이 생기더군요. 더구나 모든 곡예사는 다 중국인이고 단 한사람만 한국인이었습니다.

사회를 보는 사람은 40대 후반의 한국 남자였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까지는 다 중국산이고요. 이번에는 국산입니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시 또 갈 생각은 없네요. 여전히 예술이라기보다 학대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놀이라고 하기에도 구경꾼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고...


태그:#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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