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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메피스토펠레> 프레스 리허설 하이라이트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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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그리고 대단히 인상적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상연되는 아리고 보이토 작곡의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는 괴테의 유명한 희곡 <파우스트>를 기본으로 한 것으로 20일과 22일, 23일 사흘간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상연중이다.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되고 있는 <메피스토펠레>는 그리 흔치 않은 베이스 주연(메피스토펠레 역)의 오페라다. 그간 국내에서 여러번 공연된 바 있는 구노의 <파우스트>와는 다르게 파우스트 박사를 유혹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또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뒤 악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이 특징이다.


메피스토펠레, 악마의 눈으로 바라다 본 세상

물론 줄거리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은 악마 메피스토펠레가 신과 내기를 하며 파우스트 박사를 유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악마의 유혹에 이끌린 파우스트가 다시 젊어져 시골처녀 마르게리타를 유혹한 뒤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도 동일하다.

 

하지만 총 4막에 앞뒤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붙은 <메피스토펠레>에서는 마르게리타의 죽음 이후 파우스트가 그리스로 가 다시 엘레나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추가됐다. 물론 파우스트는 여기서도 진정한 의미의 구원을 찾지는 못한다.

 

이 작품 속 메피스토펠레는 단순히 파우스트 박사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 완벽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파우스트 자신의 이중적 자아의 다른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결국 파우스트 자신의 내면 속 일부인 것이다.

 

작곡가 아리고 보이토는 오페라 작품으로서는 유일하게 이 작품 하나만을 남겼다고 한다. 오히려 오페라 대본쪽에서는 베르디와 함께 <오텔로>와 <팔스타프>를, 폰키엘리와는 <라 조콘다> 작업을 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오페라 역사 속에 남게 되었다.

 

세속적 욕망만을 좇다 돌아온 탕아


첫 프롤로그 장면부터 천사들이 쏟아내는 합창의 장중함은, 반투명 장막을 통해 마치 3D 화면처럼 구름의 바다 영상에 오버랩되면서 감동을 더해줬다. 객석에 앉아 있었음에도 마치 천사들과 함께 공중을 붕붕 떠다니며 우주의 하모니를 듣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를 놓고 신과 내기를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1막이 시작되면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지하철 장면이 등장한다. EXIT(출구)란 붉은 색 표시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열차 한대가 지나가고 승객들이 승차한다. 시대배경이 현대가 된 것이다. 지상에 내려온 메피스토는 회색코트를 입고 전철역에서부터 파우스트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다. 그는 결국 기회를 잡아 파우스트와 영혼을 사고 파는 거래에 성공하게 된다. 이제부터 시간과 공간의 이동은 그냥 마음대로다. 그냥 구름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2막에서 파우스트는 그가 욕망하는대로 다시 젊어진다. 엔리코라는 청년이 되어 공원에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시골처녀 마르게리타와 사랑에 빠진다. 메피스토의 조종을 받는 파우스트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르게리타가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독살하도록 만든다.

그 후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에 의해 브로켄산으로 이끌려 오게 된다. 거기서 악마들은 온갖 쾌락과 욕정들로 그를 유혹한다(이 장면은 15세기 말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쾌락의 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낳은 결실의 환영을 보게 되고, 다시 마르게리타를 찾게된다.

 

이윽고 3막. 마르게리타에게로 돌아온 파우스트. 하지만 그는 마르게리타가 자신의 어머니를 독살했으며 파우스트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까지 물에 빠트려 죽였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음을 알게 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힘을 빌어 그녀를 탈출시키려 하지만 이미 기력이 다한 마르케리타는 끝내 천사의 무리에 의해 하늘나라로 인도된다(무대설명은 감옥이라 되어 있지만, 나는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타가 처음 만난 바로 그 공원에서 마치 하늘이 찢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만일 진짜 감옥 안이었다면 왜 위에선 자꾸만 낙엽이 떨어지는 것일까? 때문에 무대의 공간은 더욱 더 안과 밖이 혼재된 초월적 공간으로 보였다).

 

마르게리타의 죽음으로 깊은 절망감에 빠진 파우스트는 4막에 이르러 메피스토에 의해 시간을 초월, 고대의 그리스로 옮겨진다. 거기서 새롭게 엘레나를 만난 파우스트는 그녀와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다시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열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랑도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정작 에필로그에서의 파우스트는 여전히 외로운 혼자의 몸이다. 문득 그가 지금껏 보낸 인생, 부질없는 욕정들이 모두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그토록 탐닉했던 세상의 모든 지식들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된다. 비록 늦었지만 뉘우친 그에게 신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신과 내기를 한 메피스토는 끝까지 파우스트를 유혹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 대목에서 천사가 파우스트의 책을 손에 들고 불태우는 장면이 아주 의미심장하다. 책에 쓰여진 모든 지식이 다 헛되다는 것. 오로지 신에 의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매우 성경적이다. 파우스트가 세상 모든 종류의 책들과 씨름한 것도 젊은 여성들을 유혹하고 다닌 것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욕망일 뿐, 결코 그를 영원불멸의 고독감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다는 뜻인 셈이다.

쾌락의 정원을 실제로 보여준 무대미술

 

이번 작품은 악마인 메피스트가 주연이었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기존과 같았다. 실존 인물이었던 마술사 파우스트가 엉클 스크루지 내지는 돌아온 탕아의 자리를 대신 꿰찬 것일 뿐, 신을 통한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상으론 결국 서양 기독교 고전인것이다. 주제가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아닌 내가 이 오페라에 열광한 것은, 일단 기본적으로 아리고 보이토의 음악(지휘 오타비오 마리노)이 매우 훌륭했기 때문이다. 출연진들은 이를 잘 소화했고, 특히 이번 공연은 무대 미술(티치아노 산티/루이지 마르키오네)과 연출(다비데 리베르모어)이 굉장히 창의적이었다.

 

난 맨 처음 프롤로그의 합창에 매료됐고, 1막 지하철 장면에서 신선함을, 그리고 2막 브로켄산 악마 파티 장면에서 강렬함을, 3막에선 진짜로 하늘이 찢어진 게 이런 거구나를 느꼈다. 또 4막에 엘레나 장면이 추가되면서 구성이 탄탄해졌고, 마지막 에필로그, 하나님의 구원은 곧 '빛'이라는 시각적 이미지 구현은 여러모로 신선했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이소영)은 내년에 구노의 <파우스트>도 공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때 이번 공연과 비교해 감상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 같다. 


태그:#오페라 메피스토펠레, #아리고 보이토, #국립오페라단,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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