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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부의 테라코타는 1200도의 고열에서 소성(塑性)해 석영(=이산화규소로 이뤄진 육방정계의 광물질)이 강하게 배어 나와 매우 강도가 높다. 뿐만 아니라 불의 성질을 실험하고 파악하면서 환원염을 적절히 활용해 황토색에서 회갈색으로 변화시킨다.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점 또한 특징이다. 결국 김수부는 모티브에 집중하면서 실제 모델을 크로키하고 대상의 내재적인 구조를 지각적인 이미지로 견고하게 만들어 내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예술창조다"

 

미술평론가이자 한국미학연구소 대표 박명인씨는 김수부(69ㆍ인천국제미술교류회 이사, 부평향토원로작가회의 회원) 구상조각가의 테라코타 여인상을 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김수부 작가가 한 평생 흙과 불과 물에 의존하며 작가적 열정을 불태웠던 그 장인정신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부평아트센터는 지난 21일부터 27일까지 갤러리꽃누리에서 김수부 조각가의 개인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김수부 작가의 테라코타 조각 18점과 부조 4점, 크로키 18점 등이 선보인다.

 

거친 점토에서도 유려한 곡선이 음악처럼 마음속에 스며     

 

22일 볕이 화사하게 내리쬐는 늦은 가을 아침에 작가의 전시장을 찾았다. 전날 많은 지인들이 오고 갔던 터라 작가는 홀로 전화를 받으며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기자를 보자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그의 말투에서 지극한 겸손이 묻어 나온다.

 

"아, 어서오세요. 제가 전날 전화로 인사드렸던 김수부 작가입니다. 시간도 없으실 텐데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중히 명함을 건네며) 저도 본래는 부평 토박이였는데 아들 직장 따라 서울로 집을 옮기다보니 고향 오기가 여간 쉽질 않네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부평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어 개인적으로나 원로작가회의로나 큰 영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의 지인인 박명인 미술평론가가 말했듯 고희(70)를 눈앞에 두고 있는 '어르신의 위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양의석 부평구예술인회 초대 회장이 언급했듯 '청춘'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동안의 얼굴에 수줍은 말솜씨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근본은 내내 침착하고 정중동(조용한 가운데 어떤 움직임)에 가까운 그의 성격 탓이 아닐까도 싶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기간은 6개월, 도자기공의 장인정신에 버금가는 흙과의 지난한 투쟁,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여인에서 여신으로 탄생해가는 그의 창조적 예술성이 더해져 비로소 김수부 작가의 사랑은 완성돼 간다.

 

김수부 작가의 작품은 브론즈, 부조, 크로키, 테라코타, 그리고 빛의 향연이라고 하는 독창적인 그만의 소재로 실현됐다. 그중에서도 유독 테라코타 작품이 돋보이는데, 이는 생명의 출발점인 어머니와의 접촉과 아름다운 이성을 만났을 때의 유혹의 접촉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만지고 싶은 충동적 욕구를 그대로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김수부 작가가 강조한 근원적 생명력에 기인한다. 실체모델을 보며 1차 크로키(1~3분) 작업을 마치고, 2차로 부드러운 흙을 만지면서 아기가 어머니의 피부에서 느끼는 감촉과 같은 섬세함을 손끝에서 전달해 따뜻한 질감을 느끼게 하는 자신만의 미적 형상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박명인 한국미학연구소 대표는 "거친 점토에서도 유려한 곡선이 음악처럼 마음속에 스며들어 정동(情動)을 일으키는 촉각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라고 평론 부제를 정한 뒤 "아기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듯 본능적인 촉각에 의해 인체의 부드러운 곡선을 잘 살려내고 질박한 흙의 특성을 완벽하게 소화해 냄으로써 손맛이 살아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흙으로 조성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평했다.

 

조각은 장식품이 아니라 작가의 혼이 담긴 예술품임을     

 

김수부 작가는 박 대표와 한 대담에서 "요컨대 예술가는 현실에 대한 재현성(누드모델과 크로키의 과정)이 있어야 하고, 경험(시신경 촉각에 의한 인지)을 재현해야 하고, 다양한 심볼(실체모델의 각기 다른 특징적 개성 포착)이 형성되어야 그 작가의 개성이 살아나겠지요"라며 "어느 날 우연히 흙을 다루면서 흙의 질감에 매료돼 그림에서 조각으로 더욱 정진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김 작가의 이력은 독특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조그만 앉은뱅이책상 서랍 속에는 온통 크로키 작품이 가득했으며, 미대가 아닌 영문학과를 나와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다 15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된 흙의 매력에 넋이 나가 조각가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여느 예술가가 그러하듯 조각가로 인생을 살아가기엔 먹고사는 문제가 항상 발을 붙잡았다. 작품 제작기간도 그렇지만, 전시 공간도 만만치 않아 애써 만든 작품이 빛도 못보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 작품의 제 값 받기도 쉽지가 않아 그저 장식품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많은 절망감도 느껴야 했다.

 

"구상조각가의 슬픔이라고 할까요. 즉흥적으로 혼을 태우는 비구상 또는 반구상 작가에 비해 많은 노력과 공이 들어가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래서 미대생들조차 구상조각가의 길을 회피하는 현상이 많아졌고요.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저 많은 관람객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공공장소(역이나 공원 등)에 전시장이 설치됐으면 좋겠고요.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개인전시의 어려움을 이해해줘서 제도적인 지원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김 작가는 이번 작품 제작을 위해 많은 돈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작품이 돈으로 평가되는 건 그로서도 마땅치 않지만, 작가도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작품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걸 아쉬워했다. 그저 다른 것과 어울리는 장식품이 아닌 작가의 혼이 담긴 예술품으로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그의 소박한 마음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흙을 만지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열정이 있는 한 그는 언제나 청춘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부 개인전#부평아트센터 꽃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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