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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급한 불은 껐다. 날로 격해지던 이른바 '환율 전쟁'은 임시 휴전(休戰)에 들어갔다. 23일 오후 경주에서 막을 내린 세계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공동선언에서다.

 

일부에선 '파격적 합의', '극적 성과'라는 말의 성찬도 이어졌지만, 한켠에선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미국과 중국 등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일시적인 합의를 이뤘다는 것이다. 특히 향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없고, 회원국이 합의한 내용에 대한 구속력 역시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환율 전쟁'은 일단 잠시 쉬어가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향후 세계경제의 흐름에 따라 총성 없는 전쟁은 언제든지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신 이번 경주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분조정에서 과거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측면은 긍정적이다. 그동안 IMF에서 상대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신흥국가들의 입지가 과거보다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G20 출범 당시 IMF에 대한 강력하고 근본적인 구조 개혁에 한 목소리는 전보다 크게 줄고, 개혁 방향 역시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이다.

 

환율전쟁 일단 휴전... 성급한(?) 윤증현 장관 "환율 논쟁 종식될 것"

 

이번 G20 경주회의의 핵심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미-중간 촉발된 무역 분쟁이 전 세계적인 '환율 전쟁'으로 확산되면서, 다자간 협의 체제인 G20에서 과연 어떤 식으로 이들 국가간 갈등을 조정할 것이냐였다. 특히 그동안 금융거래세 도입 등 국제 금융규제 개혁에 앞장서 왔던 브라질이 이번 회의에 불참하고, 신흥국 중심으로 미국 등 선진국의 환율 압박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환율 전쟁'을 막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또 하나는 그동안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IMF에 대한 구조개혁 방안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입김에 좌지우지됐던 IMF가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았다. 선진국이 갖고 있던 IMF 내부 지분 5%를 신흥국에게 넘기기로 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얼마를 이전할지는 정해지 않았었다.

 

23일 오후 발표된 경주 공동선언문(코뮈니케)을 보면, 이들 두가지 핵심 이슈에 대해 과거보다 한발 앞선 내용들이 담겨졌다.

 

환율 갈등 문제에 대해서 "(G20 국가들이) 경제 펀더멘털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자제한다"고 적었다. 또  환율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경상수지에 대해서도 "경상수지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정책 수단을 추구한다"고 합의했다.

 

지난 6월 토론토 정상선언에선 환율과 관련해서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시장지향적인 환율은 세계 경제의 안정에 기여한다"고 언급했었다. '시장지향적'이라는 단어가 '시장결정적'으로 바뀌었고,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자제하자"고 좀더 구체적으로 적었다.

 

이를 두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시장 결정적 환율제도는 환율 결정되는 과정에서 시장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는 뜻"이라며 "이제 환율 논쟁은 이걸로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 전쟁' 핵심 중국, 고정환율체제 유지로 실효성도 의문

 

윤 장관은 이번 환율 합의를 두고 말 그대로 "환율 논쟁의 종식"을 선언했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라는 의문은 여전하다. 윤 장관이 국제적인 환율 문제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앞서 나가고 있다는 지적까지 있다.

 

물론 이번 합의로 일시적으로 G20 회원국 사이에 앞다퉈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쟁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진국이나 신흥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율 문제에서 단지 '시장결정적'이라는 용어로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G20 회원국들이 이번 합의로 환율 갈등이 과거보다 약간 누그러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각국이 금리정책처럼 외환정책을 오픈하는 것도 아니고, 과연 어떤 것이 시장결정적이냐에 대한 해석도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 환율 전쟁의 핵심인 중국의 경우는 여전히 국가에서 환율을 통제하는 고정환율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서 환율이 결정되는 변동환율체제가 아닌 이상, 이번 합의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같은 실효성 문제를 의식한 듯, 윤증현 장관은 "이같은 시장결정적 환율제도의 집행 여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주기적으로 상황을 모니터링 할 것"이라며 "또 회원국들끼리 서로 평가하는 과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시장결정적 환율제도 의미는 외환시장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면서)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되게 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법적 구속력이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총재의 말은 이번 환율제도의 한계를 분명히 그어 놓고 있는 셈이다.

 

환율과 IMF 지분, 정치적 '빅딜'... 선진국과 신흥국간 이해 맞아 떨어져

 

환율 제도와 함께 이번 공동 합의문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회원국 사이의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가이드 라인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환율을 조작해서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 중국 화폐인 위안화 절상 등 환율 문제와 함께 경상수지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정 비율로 규정하자고 주장했다.

 

불균형 무역을 통해 일부 나라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아예 일정한 선에서 막자는 주장이었다. 이를 두고, 독일 등 유럽국가들마저 미국이 너무 앞서 나간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이번 합의문에 경상수지 규모를 GDP 대비 일정 비율로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자고 적었다.

 

구체적인 비율을 적지 않고 '지속가능한 수준'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단어를 썼지만, 이 역시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환율제도나 무역 부문에서 중국이 일정하게 '양보'한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신 중국 등 신흥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조개혁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IMF의 내부 지분 조정에서 그동안 합의 됐던 '5% 이상'을 '6% 이상'으로 늘렸다. 세계 경제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IMF의 경우 내부 지분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상당부분 차지해 왔다. 그만큼 이들의 영향력이 막대했다.

 

선진국은 IMF에서의 자신들 지분 이전을 극도로 꺼려왔지만, 이번에 신흥국가들에게 이전 비율을 1%포인트 늘리는 데 합의했다. 물론 이같은 지분 이전의 가장 큰 수혜국가는 중국이다. G20 주변에선 이번 합의로 중국의 IMF 쿼터가 현재 6위에서 2위 수준까지 올라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러시아와 인도, 중국, 브라질 등 브릭스 국가들이 IMF의 10대 주주로 올라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동안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IMF에 대한 구조개혁이 회원국들 사이의 지분 나눠먹기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또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던 미국의 경우 IMF에서 여전히 가장 많은 15% 지분을 유지하고, 거부권까지 지니게 되는 등 자국의 기득권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입김은 여전할 것이라는 분석도 여전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경주회의 역시 금융시스템 전반에 걸친 구조 개혁보다는 회원국들 사이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빅딜'과 '말잔치의 장(場)'으로 끝나고 만 셈이다.


태그:#G20정상회의, #경주회의, #환율전쟁, #윤증현, #김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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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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