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정적마저 감도는 새벽 5시,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뚫고 몰려든 대형트럭 20여대. 그들이 집결한 곳은 울산시 매곡동에 위치한 ㄱ마트(00유통) 신규 오픈 예정지다. 하얀 우의를 맞춰 입은 00유통(ㄱ마트) 관계자 100여명은 일사불란하게 현장을 정리한다. 기세등등한 모습이다. 그들에게 거칠 것은 없어 보인다. 입구를 막아선 몇 명의 무리는 가볍게 제압한다. 곳곳에서 빨리빨리 진행하라는 고성이 터져 나온다.#장면2. 이와 반대로 그 곁에서 망연자실하게 이를 지켜보고 있는 10여명의 남자들이 있다. 12시간 전부터 ㄱ마트 입점예정지 입구에서 간이천막을 치고 농성중인 울산중소상인네트워크(회장 차선열) 관계자와 매곡동 일대 중소할인점 점주·직원들이다. 최후의 보루로 입구에 설치해 놓은 차량 바리케이드마저 순식간에 뚫린 뒤,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저지해보지만 번번이 무력하게 밀리고 만다.지난 24일 새벽 5시경 00유통 관계자 100여 명이 울산시 매곡동 ㄱ마트 신규입점 예정지에서 기습적인 상품입고 작전을 폈다. 오는 26일, 울산시의 중재로 중소상인 대표단과 '입점여부 및 상생협력 방안'에 대해 우선 만날 것을 약속해 놓고 벌어진 일이었다.
이승진 울산중소상인 네트워크 사무국장은 "ㄱ마트는 이미 울산 구영리에서 협의 약속을 깬 적이 있다"며 "매곡동에서는 기필코 일방적으로 오픈할 수 없도록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승진 사무국장의 바람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이날 새벽 기습 상품입고 작전을 펼친 00유통은 다음날인 25일 매곡동 ㄱ마트를 오픈했다.
경남일대 무차별 확장을 시작한 OO유통앞서 00유통은 지난 6월 21일 울산시 울주군 구영리에 기습적으로 ㄱ마트를 개점한 바 있다. 울산시가 6월 18일 영업개시 일시정지 권고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개점을 강행한 것이다. 단 3일만에 일사천리로 내부공사를 끝냈다. 이때부터 중소상인들과 00유통 간의 소통이 단절되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상생합의안이 나올 수도 있었지만, 00유통의 개점강행을 기점으로 합의안은 파행으로 치닫고 말았다.
"중소상인 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생존권이 달린 문제입니다. 지금 매장을 더 늘려 매출을 확대하지 않으면 유통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홈플러스 테스코 안아무개(41) 과장의 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8월 기준 전국에 3000㎡ 이상 대형할인점이 424곳, 165㎡~3000㎡의 슈퍼마켓(SSM)이 8060곳이다. 대형할인점만 보더라도 업계 일반의 견해인 인구 15만명당 1점포인 330개보다 100여개가 많다. 이미 과다출점 경쟁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인 것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미 2000년경부터 매출 1,2위 생존설이 돌았다. 결국 이 싸움의 최후의 승자는 가장 영역을 넓힌 두 곳 정도라는 말이다. 이런 말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대기업들은 매출실적에 관계없이 신규출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대형할인점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한 기업들은 동네 골목상권마저도 잠식해 가고 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에 이어 이마트도 분위기를 살피고 있으며, 이런 가운데 지역 할인점인 00유통도 경남일대에서 무차별 확장을 시작했다.
강자생존 논리 앞에서 중소상인들 앞날은 풍전등화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멈출 수 없는 위험한 질주를 시작한 대기업들과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물러설 수 없는 중소상인들의 절박함. 대기업들의 무차별 확장의 논리는 '후진적인 유통구조를 가진 중소유통을 개선하는 것이 결국 소비자나 유통산업 발전을 앞당긴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정당화 논리다. 공존이나 상생보다는 강자생존을 앞세운 힘(경제)의 논리 앞에서 중소상인들의 앞날은 풍전등화다.
이 위험해 보이는 불공정한 싸움을 중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정부의 개입이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여야가 재래시장 보호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안(유통법)을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또 관련 법안인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안(상생법)도 정기국회 회기내에 처리키로 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민생안정과 공정을 정권후반부 핵심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많은 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현명한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