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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을 한 나무부분은 부식되고 청동부분만 남은 검초 검초는 나무칼집에 청동장식을 한 것이다.
옻칠을 한 나무부분은 부식되고 청동부분만 남은 검초검초는 나무칼집에 청동장식을 한 것이다. ⓒ 안서순

충남 서산에서 '청동제 검초(劍鞘) 부속구'가 출토됐다.

26일 백제문화재연구원(원장 오서선)은 "서산 동서간선도로 개설공사 부지 가운데 유구가 확인된 (1만6400㎡) 현장에서 지표조사를 벌인 결과 18호 분구묘로 이름 붙인 무덤에서 청동제검초 부속구가 발견됐다"며 "이는 경주를 포함한 경상도지역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출토된 유물"이라고 밝혔다.

검초는 칼집으로, 손잡이 끝에 청동제 검파두식이 결합된 옻칠을 한 나무칼집으로 돼있다. 우리나라에선 고조선 후기부터 만들어왔고 지금까지 서북한지역과 경남 경주, 창원, 김해, 대구 등지에서 출토됐으나 충청남북도 지역에서는 처음 나온 것이다.

발굴 당시 나무에 옻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칼집은 이미 썩어 보이지 않았고 청동으로 만든 손잡이 부분과 철로 만든 칼날이 부식된 채 짧게 남아있었다. '검초'는 현재 수습됐고, 보존처리를 위해 공주박물관으로 옮겨진 상태다.

이강열 학예사(서산시청 문화관광과)는 "경주나 김해지역에서 출토된 검초의 경우 무덤주인이 상당한 신분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아직 이를 뒷받침할 만한 유물 등이 출토되지 않아 검초만 기지고는 무덤의 주인을 알수 없다"며 "다만 중부지역에서 처음 출토된 것으로 앞으로 연구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데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출토된 원삼국시대 토기와 철제검  서산동서간선도로에서 춡토된  이 유물은 옹관에서부터 작은 술잔까지 디양하다
출토된 원삼국시대 토기와 철제검 서산동서간선도로에서 춡토된 이 유물은 옹관에서부터 작은 술잔까지 디양하다 ⓒ 안서순

백제문화연구원은 서산시의 의뢰로 지난 2007년 6월부터 '동서간선도로 개설공사구간(총연장2.5km, 폭 35m)에 대한 지표조사를 벌였고 이를  통해 확인된 유물분포지 2만1000㎡에 대한 시굴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103기의 백제시대 분구묘가 확인됐으나 조사지역 바깥으로 주구가 이어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분구묘의 범위는 훨씬 넓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지역 일대가 대규모 고분군을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청동제 검초 부속구' 이외에 청동기 시대 유물인 '구순각목공렬문토기', '소형호' 등 토기류와 석검편, 석도, 석부, 석기류가 출토됐고 초기 철기시대 유구로 토광묘2기와 옹관묘1기가 발견됐으나 토광묘에서는 목관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옹관에서도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유구와 분구묘 유구와 분구묘는 조사지역외로 더 나가 있어 이 일대 주볌에 대한 발국조사가 시급하다
유구와 분구묘유구와 분구묘는 조사지역외로 더 나가 있어 이 일대 주볌에 대한 발국조사가 시급하다 ⓒ 안서순

매장주체부가 조사된 분구묘는 모두 36기로 대부분 단장(單葬)이거나 18호 분구묘와 같이 2기의 매장주체부가 확인된 경우도 있다.

매장시설로는 대부분 목관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목관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출토유물로는 원저단경호, 이종구연호, 유견호 등의 토기류와 환두대도, 철검, 철겸,철준, 철모 등의 철기류와 각종 구슬류 등이 나왔다.

서산지역은 지난 2003년 음암면 부장리 백제시대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모를 비롯해 해미휴암리 유적과 대산읍 대로리 주거지, 인지면 둔당리와 남정리 고인돌, 대산읍 운산리 토끼섬과 팔봉면 호리의 패총 등 청동기 전기부터 중기에 이르는 많은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이 발견돼 고대사의 보고(寶庫)로 불리우고 있다.


#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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