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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 (주)시네마 제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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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초등학교에서 17년째 일하고 있는 교사다. 뛰어난 학업 성적, 좋은 인성, 튼튼한 몸, 원활한 친구 관계, 감동을 부르는 글쓰기, 창의성이 드러난 작품 만들기 등등 모든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잘 해주길 강제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더구나 이것들을 일체의 체벌이나 욕설 없이 성스럽게(교직은 성직이니까?) 진행해야 한다.

학생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를 생각해 보면 교사는 철저하게 감정노동에 복무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감정 표현에서 빠질 수 없는 매(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친구들과 노는 것에 빠져 해가 진 후 으슥한 시간에 집에 들어가면 매 맞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저녁밥을 먹기 전까지 참고 기다리던 어른들이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화를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도 매를 때리고 나서는 그것을 수습하는 식구들 사이의 다독임이 있고, 이를 통해 서운한 마음이 해소되었다.

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된 폭력의 전주

1971년에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때부터 매는 제도화된 일상이 되었다. 입학식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친구와 교실에서 정신없이 재밌게 이야기하는데, 담임교사가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때 처음으로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로 뺨을 맞았고, 그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학교는 잘못하면 맞는 곳이다'는 생각과 맞고 나서 우는 나를 아무도 달래주지 않는다는 서러움이 찬 바람과 함께 온 몸을 감았다.

학교에 늦게 와서, 준비물이 없어서,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서, 옷이 더러워서, 용의 검사를 하는 날 몸에 때가 있어서, 받아쓰기를 틀려서, 구구단을 못 외워서, 숙제를 안 해 와서, 시험문제를 틀려서, 떠들어서, 청소 시간에 놀아서, 친구와 싸워서, 말을 안 들어서, 다른 사람을 놀려서 등등 생활의 모든 것이 매로 해결되어 '잘못하면 맞는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의식화 되었다. 그러나 잘못하면 맞는다는 것이 옳은가?

그 중 압권은 담임교사가 교실에 없을 때 반장이나, 부반장에게 떠드는 사람을 적어 놓으라하고, 나중에 명단에 적힌 학생들을 때리는 일이다. 칠판에 보이게 적는 날은 '나 떠들지 않았다'고 항의라도 하고 서로 이야기하여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 모르게 반장이 자기 공책에 적는 날은 부당하다고 느낀다고 해도 이미 매가 종아리나 손바닥을 지나간 후다. 누구도 자신이 떠들어서 맞았다는 당위보다는 '저 ○○, 나를 적어. 나중에 보자'는 증오와 오기만 남는다. 이 때 반장은 매로 학급을 통제하던 담임이 가진 권력에 기생하는 마름과 다름없었다.

복장 때문에 맞고, 시험 봐서 맞고... 맞고 또 맞고

1977년에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아침이면 교문에 3학년 선도부들이 2줄로 4명씩 줄지어 서 있다. 특히 학교에서 머리가 제일 길고, 수선하여 변형된 교복을 입고 있는 선도부장의 눈길을 무사히 통과하는 일이 고역이다.

권력과 돈을 독점한 사람들이 룸살롱에서 딸 같은 여자 애들을 데리고 술 마시고 뇌물 받으면서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덕을 운운하는 것과 무슨 차이일까? 이런 역설이 교육현장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수업과 일상에서 아이들과 드잡이하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어 관리자가 된 사람들이 무엇보다 수업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직해야 한다고,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에서 훈화랍시고 이야기하는 꼴은 정말 씁쓸한 웃음을 선사하는 코미디 아닌가?

모자에 교표가 반듯하게 붙어 있는지, 머리가 긴지, 뻣뻣하게 선 교복 목도리에 학년 배지는 정한 곳에 있는지, 가슴에 이름표가 있는지, 운동화는 검은색인지 등등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들의 매서운 눈길을 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교문에 들어선 학생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했더라도 무조건 걸린다. 선도부에 '걸린' 학생들은 1교시를 시작할 때쯤 선도부 교사에게 인솔되어 매타작을 견딘 후 교실에 가게 된다. 내가 잘못해서 매를 맞는 게 아니라 '오늘 정말 재수 없는 날이다'고 뇌까린다.

2학년 때, 시험이 끝난 과학시간은 틀린 문제 수만큼 매 맞는 날이었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과학을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던 교사는 매를 때린 만큼 나라가 잘 된다고 생각했을까?

3학년 한문 시간은 학생들이 번호 순서대로 칠판에 서서 교사가 불러주는 한자를 쓰고, 못쓰거나 틀린 글자 수 만큼 매를 맞았다. 내 순서가 되어 칠판쪽으로 가려는데 늦게 나온다는 이유로 매로 쓰는 몽둥이로 머리를 맞았다. 기분이 나빠 불러주는 사자성어를 일부러 한 자도 쓰지 않았다. 반항하고 있음을 교사도 알았는지, 있는 힘을 다해 허벅지 20대를 때렸다. 그 매를 맞고 난 일주일 내내 고생하면서 때린 교사를 저주하였다.

대학-군대에서도 계속된 '폭력'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 에이앤디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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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에 교복에 카라가 있고, 머리를 길러도 되는 학교여서 매로 이야기하는 교사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매 없던 3년이 신기하다.

1984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연극반 서클활동을 했는데 2학년 때, 남녀 구분 없이 1학년이 엎드려뻗친 4학년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리고 난 후, 다시 차례로 선배들에게 맞고 막걸리를 마셨다. 이른바 '줄빳다'였다. 맞고 술 먹으며 불콰해진 얼굴로 연극반 생활을 열심히 해 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서로에게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1985년 5월 18일 광주 망월동묘지에서 동료들과 시위를 했다.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다 사복전경들에게 붙잡혀 철창 버스로 끌려가면서, 또 경찰서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발로 주먹으로 곤죽이 되도록 맞았다. 평생 가장 많이 맞은 순간이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울분에 총이 있다면 나를 때린 모두를 쏴서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1986년에 육군에 입대했다. 구타 근절을 위한 표어가 부대 곳곳에 써 있고, 소원수리를 통해 구타하는 상급자들이 있는지를 수시로 파악했다. 상급자들이 "요즘 군대 정말 좋아져서 때리지를 못하니 쫄따구들이 군기가 말이 아니다"라며 군기 빠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를 걱정하고 있을 때, 저녁 식사 후 자유시간에 가루연탄 저장창고나 눈에 띄지 않는 으슥한 곳에서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기합을 받고 매도 맞았다. 제대 후엔 '나는 많이 맞았지만 때리지는 않았다'고 이야기 했지만 실상 '요새 소대가 잘 안 돌아간다'며 하급자를 집합시키고 매도 때렸다.

매를 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1994년 9월에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때리지 않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떠들고, 말썽 피고, 말 안 듣고, 화날 때, 매는 너무 가까이 있었고 눈에 보이는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의욕이 넘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주변의 시선도 매를 쉽게 놓지 못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새로운 학기를 시작할 때와 아침마다 '아이들을 때리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지만, 2008년까지 매를 들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키지 못했다.

교사인 아내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했다. 매 맞고 자란 아이들이 더 폭력적인 가장이 되는 상황에서, 폭력을 대물림하는 고리는 교사가 끊어야 한다며 진정으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보다 힘이 약한 대상을 때리는 것은 옳지 않다. 때리지 않는 대신 이루어지는 심한 언어폭력도 옳지 않다. 매와 욕설은 대단히 감정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본질적으로 폭력이기 때문이다.

2010년, 아직까지는 학생들에게 매를 들지 않았다. 그러나 때릴 이유와 '사랑의 매(?)'가 될 수 있는 도구는 지천에 널려있다. 올해, 아니 앞으로 영원히 학생들에게 매를 들지 않겠다는 이 약속을 꼭 지키겠다. '안 맞아야지'하면서 계속 맞았고, '안 때려야지'하면서 계속 때렸지만 지금부터는 안 맞고, 안 때리는 세상을 꿈꾼다.

덧붙이는 글 | '지키지 못할 맹세 왜 했어?' 응모글입니다.



태그:#체벌, #초등학교, #언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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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놀게하게 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초등학교교사. 여행을 좋아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지는 파행적인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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