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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맷돌은 돌계단난간을 말합니다. '난간'이란 말이 왠지 기능적인 면만 강조한 것 같아 귀에 거슬립니다. 소맷돌은 기능성보다는 오히려 장식으로서의 역할이 더 큰데 말이죠.  

소맷돌은 창살, 담, 굴뚝과 같이 절집을 꾸미는 대상이며 공간입니다. 부처세계의 한 조각이 셈이지요. 그래서 소맷돌을 만들 때 밋밋하게 그냥 만들지 않습니다. 정으로 일일이 쪼아 공들여 만들었지요. 반질반질하게 기계로 만든 뽀얀 현대식 소맷돌에 눈길이 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건물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옆을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것이 소맷돌입니다. 몇 차례 답사 끝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어서 일반인들에게 관심도 사랑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기만 하면 이것만큼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도 없습니다.

오이씨같기도 하고 버선코 같기도 한 불국사 대웅전소맷돌부터 연꽃향기를 뿜고 있는 통도사 소맷돌,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영암사지 금당사터 소맷돌, 사자의 코에서 콧김을 뿜어내며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은 송광사와 대둔사 소맷돌, 보는 순간 어루만지고 싶어지는 도갑사 소맷돌까지 절집의 소맷돌은 개성이 너무나 강합니다. 이들 소맷돌은 제각각 다른 멋과 맛이 있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합니다.

살아 움직일 듯한 송광사·대둔사 소맷돌

송광사는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숲길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숲길을 벗어나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일주문 소맷돌 돌사자입니다. 소맷돌 양끝에서 두마리 사자가 꼿꼿이 선 채 오는 이를 반깁니다. 왼쪽사자는 앞발 하나를 턱에 괴고 곰곰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딴전을 피우고, 오른쪽사자는 두발 모두 가지런히 내려놓은 채 물끄러미 오는 사람을 쳐다봅니다.

송광사 일주문 소맷돌 두 마리의 돌사자가 목에 방울을 단 채 고개를 쳐들고 오는 이를 반기고 있습니다
송광사 일주문 소맷돌두 마리의 돌사자가 목에 방울을 단 채 고개를 쳐들고 오는 이를 반기고 있습니다 ⓒ 김정봉

집지키는 개같이 목에 방울을 달고 있습니다. 방울은 잡귀로부터 불전을 수호하는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방울을 흔드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송광사 관음전 소맷돌 금세 앞으로 돌진할 기세입니다
송광사 관음전 소맷돌금세 앞으로 돌진할 기세입니다 ⓒ 김정봉

관음전에도 돌사자가 있습니다. 귀는 쫑긋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 험상궂게 생겼습니다. 꼬리를 치켜세우고 상체를 앞으로 하여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기세입니다. 이를 보고 겁먹을 사람은 없습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겁이 나서 지레 으르렁거리는 개처럼 이 사자도 속으로는 겁이 난 겝니다. 보면 볼수록 귀여운 생각이 듭니다.

해남 대둔사 대웅보전 소맷돌 코에선 콧김이 풍풍 나고 눈을 부라리고 있지만 무섭지 만은 않습니다
해남 대둔사 대웅보전 소맷돌코에선 콧김이 풍풍 나고 눈을 부라리고 있지만 무섭지 만은 않습니다 ⓒ 김정봉

생동감있는 소맷돌 돌사자가 해남 대둔사에도 있습니다. 코에서 콧김을 풍풍 내고 두 눈은 크게 뜨고 눈망울을 사납게 굴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무섭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그러는 익살꾸러기입니다. 송광사와 대둔사 소맷돌사자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연꽃향기 가득한 통도사 대웅전 소맷돌

통도사 대웅전 주변은 꽃밭입니다. 기단에서 피기 시작한 꽃은 소맷돌 등을 타고 대웅전 꽃창살에 이르러 절정을 이룹니다. 소맷돌의 은은한 연꽃향에 대웅전 꽃창살의 진한 국화향이 더해져 주변은 꽃향기가 가득합니다.

통도사 대웅전 꽃창살 소맷돌의 연꽃향과 꽃창살의 국화향으로 대웅전 주변은 꽃향기가 가득합니다
통도사 대웅전 꽃창살소맷돌의 연꽃향과 꽃창살의 국화향으로 대웅전 주변은 꽃향기가 가득합니다 ⓒ 김정봉

대웅전동쪽 소맷돌에는 두 송이의 연꽃이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연줄기가 소맷돌 등을 따고 뻗어 내려 소맷돌 아래에 와서 연꽃주위를 한바퀴 돌아 꽃받침에 닿도록 하였습니다. 둥글고 원만한 연꽃의 성질을 줄기로 잘 표현하였지요.  

통도사 대웅전 동쪽 소맷돌 연꽃줄기와 덩굴로 두 송이의 연꽃이 감싸여 있습니다. 화려한 걸로 치면 우리나라 최고의 소맷돌이 아닌가 싶습니다
통도사 대웅전 동쪽 소맷돌연꽃줄기와 덩굴로 두 송이의 연꽃이 감싸여 있습니다. 화려한 걸로 치면 우리나라 최고의 소맷돌이 아닌가 싶습니다 ⓒ 김정봉

소맷돌 위쪽에는 덩굴이 한 바퀴 휘감고 있는 만개한 연꽃이 있습니다. 연꽃과 덩굴을 섞어 도안한 연당초무늬를 나타낸 것입니다. 두 송이 모두 줄기와 덩굴에 의해 포근하게 감싸여 있어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통도사 대웅전 남쪽(금강계단) 소맷돌 소맷돌  덩굴을 생략하고 만개한 꽃 대신 몽우리를 넣어 깔끔해 보입니다. 동쪽소맷돌은 화려하고 남쪽 것은 깔끔합니다
통도사 대웅전 남쪽(금강계단) 소맷돌소맷돌 덩굴을 생략하고 만개한 꽃 대신 몽우리를 넣어 깔끔해 보입니다. 동쪽소맷돌은 화려하고 남쪽 것은 깔끔합니다 ⓒ 김정봉

대웅전 남쪽(금강계단) 소맷돌에도 두 송이의 연꽃이 있습니다. 크기가 작은 남쪽 소맷돌에는 덩굴을 생략하여 깔끔해 보입니다. 그리고 만개한 연꽃 대신 연꽃몽우리를 넣어, 대웅전 영역이 늘 연꽃향기가 함께 하는 공간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오이씨 맛'이 나는 불국사 대웅전 소맷돌

불국사 대웅전 소맷돌은 모든 곳은 직선으로 처리하고 밑에 한자정도만 곡선으로 처리하여 곡선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직선이 팽팽한 긴장감을 주지요. 오이씨같기도 하고 버선코같기도 합니다. 아니, 그보다 갸름하고 예쁘장하여 오이씨 같은 발을 가진 여인의 버선코같은 게 맞을 겝니다. 오이씨가 그렇듯 뾰족한 듯하나 뾰족하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둥글지도 않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 보이지요. 

이 소맷돌의 멋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오이씨나 버선코 갖고는 도저히 이 멋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애초부터 언어로 표현하여 보편 타당한 멋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 모릅니다. 다행히 한국미의 최고의 필력가로 꼽히는 최순우 선생의 생각에서 힌트를 얻어 봅니다. 최순우 선생은 한국미의 둥근 멋을 '둥근 맛'이라 하였지요.

불국사 대웅전 소맷돌 오이씨 같은 발을 가진 여인의 버선코 같습니다
불국사 대웅전 소맷돌오이씨 같은 발을 가진 여인의 버선코 같습니다 ⓒ 김정봉

맛은 시각의 범주를 너머 촉각, 미각을 아우르며, 멋으로 도저히 표현하지 못하는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맷돌의 멋은 어떤 맛일까요? 다른 사람들도 도저히 표현 못하는 '오이씨 맛'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합니다. 먹어 보아도 알듯 말 듯한 맛, 이런 맛이 우리의 멋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이씨를 먹 듯 스스로 느낄 때만 이 멋을 알 수 있는 오묘한 멋이 이 소맷돌에는 있습니다. '한국미는 이론을 캐거나 따져서 발견하는 게 아니라 느껴야 한다'고 한 김원룡 선생의 말이 생각납니다.

청아한 소리를 내는 영암사지 금당터 소맷돌

사람머리를 한 상상의 새가 있습니다. 가릉빈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새로, 울음소리가 곱고 극락에 둥지를 튼다고 합니다. 이 가릉빈가가 소맷돌이 된 곳이 있습니다. 합천 영암사지 금당터입니다. 돌에 가릉빈가를 조각한 게 아니고 돌을 통째로 깎아 내어 가릉빈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선조는 상상하는 건 무엇이든 만들 수있는 천부적 손재주를 가진 모양입니다.  

영암사지 금당터 소맷돌   돌을 통째로 깎아 가릉빈가 소맷돌을 만들었습니다. 기교로 치면 우리나라 최고의 소맷돌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암사지 금당터 소맷돌 돌을 통째로 깎아 가릉빈가 소맷돌을 만들었습니다. 기교로 치면 우리나라 최고의 소맷돌이 아닌가 싶습니다 ⓒ 김정봉

금당터에는 가릉빈가만 있는 게 아닙니다. 금당터 기단면에는 사자상들을 조각해놓았습니다. 사자들은 입을 벌린 정도가 다릅니다. 미세한 입모양의 변화로 깊고 오묘한 불법의 진리를 나타낸 것이지요. 입을 크게 벌린 놈, 중간정도 벌린 놈, 입을 다문 놈이 있습니다. 세 마리 사자만 보았지만 안 보아도 네 마리의 사자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네 마리의 사자가 각각 다른 입모양을 하고 있는 화엄사사사자석탑이나 제천 사사자빈신사지석탑, 홍천 괘석리사사자석탑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여하튼 사자들은 금당터 맨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쌍사자석등의 사자의 지휘아래 입모양을 번갈아 바꿔 가며 화음을 넣고, 가릉빈가는 청아한 목소리로 한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금당터는 금세 천상의 콘서트 홀이 되었습니다.  

어루만지고 싶어지는 도갑사 해탈문 소맷돌

영암 도갑사 소맷돌은 화려하거나 기교를 부려 만든 것도 아니어서 좀처럼 눈길을 끌지 못합니다. 그래도 둥글고 모나지 않은 것이 우리의 심성을 닮은 것 같아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어루만지고 싶어집니다. 

도갑사 해탈문 소맷돌  도갑사는 새벽녘에 해탈문에서 바라다보는 정경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소맷돌은 볼 때마다 새벽이슬을 맞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이 소맷돌은 새벽이슬을 머금고 있는 달팽이 같이 순하게 보입니다
도갑사 해탈문 소맷돌 도갑사는 새벽녘에 해탈문에서 바라다보는 정경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소맷돌은 볼 때마다 새벽이슬을 맞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이 소맷돌은 새벽이슬을 머금고 있는 달팽이 같이 순하게 보입니다 ⓒ 김정봉

해탈문에 오르는 돌계단소맷돌 무늬를 두고 혹자는 태극무늬 라기도 하기도 하고 구름무늬라고 하기도 합니다. 혹은 만다라로 해석하기도 하지요. 난 그냥 달팽이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좀 떨어져서 보면 달팽이 세 마리가 놀러 온 것 같습니다. 잡아다가 풀밭에 놓아주고 싶어집니다.

도갑사 해탈문 소맷돌   화려하지도 기교를 부린 것도 아니지만 모나지 않고 둥근 것이 우리의 심성을 닮을 것 같아 사랑스럽습니다
도갑사 해탈문 소맷돌 화려하지도 기교를 부린 것도 아니지만 모나지 않고 둥근 것이 우리의 심성을 닮을 것 같아 사랑스럽습니다 ⓒ 김정봉

가까이 다가서자, 둥글게 말려 들어가는 곡선이 유혹을 합니다. 금방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만다라 그림을 그리 듯 쪼그리고 앉아 선을 따라 그려봅니다. 이내 마음이 평온해 집니다.

절집의 소맷돌은 모두 개성이 강하여 모두 다른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절집의 분위기에 맞게 꾸며졌지요. 그래서 불국사에는 세련되고 맵씨 있는 '오이씨 맛'이 나는 소맷돌이 어울립니다. 새벽이슬을 머금고 있는 달팽이 같이 순한 도갑사 소맷돌은 불국사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통도사에는 연꽃 향이 가득한 연꽃소맷돌이, 산골짝 찾는 이 없는 영암사지에는 청아한 목소리가 들리는 가릉빈가 소맷돌이 제격입니다. 그리고 향토색 짙은 남도에는 익살스런 사자 소맷돌이 어울립니다.


#소맷돌#통도사 소맷돌#불국사 소맷돌#영암사지 소맷돌#송광사 소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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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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