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중엽 포르투갈 식민주의자들이 깃발을 꽂으면서 도시로 출발한 꾸리찌바. 브라질 남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대전보다는 약간 큰 도시. 애초 가난한 지방 도시였던 그곳이 환경친화적인 도시로 거듭난 데에는 혁신적인 사고를 가진 레느네르 시장의 주도가 컸다. 당연히 국제사회에 관심을 받고 있고, 우리나라에게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본래 그 도시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구급증과 환경파괴 등 여타 도시들이 겪는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출발했다. 이를테면 1950년대의 급속한 인구증가, 환경오염, 교통체증, 그리고 문화유적의 훼손 등으로 인해 꾸리찌바가 위기에 빠져든 것이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꾸리찌바는 변신을 시작했다.
박용남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박용남 저, 녹색평론사 펴냄, 2009개정증보판)는 그 모든 면들을 보여준다. 이른바 철저한 토지 이용계획을 마련하여 합리적인 대중교통체계를 이룩한 물리적 혁명, 녹색공간으로 둘러싸인 공업단지를 조성하여 지속가능한 도시 기반을 구축한 경제적 혁명, 교육·보건·주택 등 복지부문에 대한 민간 공공부문의 투자를 결합한 사회적 혁명, 그리고 유적지와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창출한 문화적 혁명 등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독창적인 교통체계였다. 꾸리찌바에서는 지하철을 대신한 버스 노선을 땅 위에 설계해 교통난을 해소했다. 그 버스 노선을 세우는데 들어간 비용은 지하철 건설비의 1/80∼1/100 정도였고, 시속은 약 30㎞의 속도였다. 그 노선에 따라 지하철역과 같은 개념으로 요금을 미리 받는 원통형 버스정류장과 급행버스전용선, 그리고 대형 굴절버스 등을 도입한 것도 퍽 인상적이었다.
교외의 빈민가나 위성도시로부터 장거리 통행하는 시민들은 어떠할까? 그들을 위해 거리와는 관계없는 단일요금체계, 일명 '사회적 요금'제도를 채택했다. 그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을 크게 해소해 주었다고 한다. 그와 함께 버스 승강대와 동일한 높이의 플랫폼 정류장을 만들어 장애우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승하차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차별화 된 전략이다.
그렇다면 보행자들을 위한 제도는 없을까? 당연히 있다. 꾸리찌바는 출퇴근과 등하교, 쇼핑까지도 자동차 없이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전거 도로를 늘렸다. 어떤 곳은 무려 100km나 되는 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실로 보행자들의 천국이다.
지하철이 없으면서도 교통난이 없는 도시 꾸리찌바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정책이 있다. 바로 시정이다. 이를테면 꾸리찌바의 시청은 꾸리찌바의 토지에 관한 정보의 세세한 변동사항까지 즉시 공개한다. 그것은 아마도 토지 관련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투기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함인 듯 하다. 그로 인해 투기 과열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고,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까지도 미연에 차단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곳의 홍수피해대책은 뭐가 있을까? 꾸리찌바는 홍수 통제를 위해 댐을 건설한다거나 강의 주변을 퍼내고 콘크리트 벽을 쌓는 그런 사업은 시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도랑들을 그대로 유지해 나가며 중간 중간에 호수를 만들었다. 또한 녹지대를 그대로 보호하는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홍수를 조절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로 인해 아무런 홍수피해도 겪지 않았으니 대성공인 듯 하다.
지하철이 없으면서도 교통난이 없으며, 저마다의 소득에 따라 교통 요금을 달리 매기며, 각종 폐기물을 생필품과 돈으로 교환할 수 있고, 도시 곳곳에는 도서관과 시민 학교가 교육의 꿈을 키우며, 창조적인 상상력을 도시 행정의 원천으로 삼아, 도시 계획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꾸리찌바의 면면을 우리가 벤치마킹했으면 한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21세기의 희망의 모델, 창조적 리더십의 모델을 두바이로 꼽았다. 하지만 진정한 모델은 여전히 꾸리찌바일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 도시는 시민을 존중하는 정치가와 행정가들이 지속적으로 돌보고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꿈의 도시 "꾸리찌바의 비밀은 지속적인 관리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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