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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여행기는 머릿속에서 포맷을 시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련다. 어쨌든 내 앞에만 서면 별나게 불쌍한 표정을 지으시는 고로롱 선생과의 모종의 가출계획을 세웠는데 일정에 산행이 있다는 말씀에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못 가시겠단다. 그런데 사실은 나 역시도 도가니의 품질이 안 좋아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것은 고로롱 선생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해서 내숭이신 것은 알지만 안 가신다는 것을 내가 곁에서 모실 테니 함께 가시자고 살살 꼬드

겨서 결국은 모시고 갔다.

 

120~150Km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곁에 없는 놈들 잘근잘근 씹어가며 선비의 고장 안동에 도착했고 주왕산행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어떻게 꼬드겨서 모시고는 갔지만 막상 도착을 하고보니 사람마음이 어디 그렇던가 말이지. 산행이 시작되었고 고로롱 선생은 이미 내 관심 밖에서 멀어져갔다. 사실 내가 아니더라도 챙겨드릴 분들도 많았지만 나의 첫 안동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암튼 고로롱 선생을 모시고 왔다는 후회가 척추를 타고 올라와 대뇌의 오른쪽을 따당하고 때리는데 일부러 선생의 눈을 피해 먼 산만 바라본다.  그리고  "억" 소리와 "흐아~~~" 소리를 번갈아 내지르는데 "억" 소리는 풍경에 놀라는 소리고  "흐아~~~" 소리는 산을 오르며 숨 너머 가는 소리다. 그러면서 고로롱 선생을 아주 외면을 해버렸는데 나중에야 어떻게 되던지 나중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경상도 양반들 뭐가 그렇게 바쁜지 평지와 다름없는 길을 뛰다시피 걷는다. 화천에서 군대 생활할 적에 이웅평이가 북에서 '쌕새기'를 몰고 넘어왔는데 그때도 이렇게 바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김신조 열배쯤은 되는 놈이 넘어왔든가 뭔 사단이 난 것만 같았다. 이거는 등산도 아니고 산책도 아니고 완전히 무장공비 잡으러 수색 나가는 군인아저씨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도대체 사람을 들볶아도 유분수지 안동선비도 말뿐인가 싶었다. 어디 선비들이 점잖지 못하고 경박스럽게 그리 방방 뛰어다닌다 말인가? 내가 풍양조씨로서 그 옛날 안동김씨와 우리 할머니 조대비와의 세력다툼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도대체 안동사람들은 양반을 돈 주고 샀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의 조대비 할머니께서 안동김씨 하고는 놀지 말라고 하셨는데 내가 할머니 말씀을 안 들어서 지금 이런 수모를 당하는구나 싶은 게 무장공비 잡으러 뛰어가다시피 하는 안동김씨들 쫓아가려니 가랑이는 찢어지고 도가니는 삐걱거리는게 완전 죽을 맛이다. 그래도 가끔은 주위 풍경에 놀라서  "억"소리는 빼놓지 않았다. 다만 "억" 소리보다는  "아흐~~~" 하고 몰아쉬는 숨소리가 더 커서 내곁을 스쳐지나가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두어 시간을 올라가니 평지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려는 찰나 발목이 고장났다.  그만하면 좋을 것을 달거리가 끝난지도 꽤 되었건만 아랫배는 아파오고 식은땀은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쪽팔리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발목이 아파서 도대체가 땅을 디딜 수가 없고 배가 아프니 똥은 마렵고 그야말로 갓 시집 온 며느리 시아버지 앞에서 국 쏟고 허벅지 데이는 기가 막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암말 마시라!

 

사람들은 가롤로(저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왜 안 오냐 찾아대지, 좁은 등산로는 나 때문에 막혀있지, 똥은 마렵지,  아이고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일행을 잊어버려 천신만고 끝에 찾아오니 아,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일행을 찾아 놓고는 동네 강아지 집 나가면 영역표시 해놓듯이 나도 영역 표시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일행들 사이로 조그만 길이 있어 올려다보니 옳다 저기다 싶은 곳이 눈에 띄었다.

 

바로 밑에서는 일행들이 간식 먹으며 깔깔거리고 이놈의 우라질 중생하나는 갈참나무 밑에서 엉덩이 까고 아랫배 힘을 주며 사타구니에 대가리를 처박고 울고 앉았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안동 산자락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 정녕 당신께서 이 가롤로를 사랑하신다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할렐루우야.....!!!

 


태그:#주왕산,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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