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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에서의 쪽팔림과 우여곡절을 뒤로하고 찔룩찔룩 다리를 절며 숙소로 돌아왔다. 분명 나보다 연세가 한참이나 많으신 형님도 계시건만 찔룩찔룩 다리를 저는 사람은 고로롱선생과 나 둘뿐 이었다. 아! 관절 마디마디에서 우렁우렁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이 몹쓸 저질 몸뚱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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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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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짐을 풀고 저녁상을 받아놓았는데 주둥이는 살아있으니 그래도 마셔볼 거라고 술을 한 잔 목구멍으로 흘려 넣는다. 허나 온 몸의 마디가 이탈이 되었다가 술의 힘을 빌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지 얼굴은 화끈거리고 하초에서는 뜨끈한 기운이 올라온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은 게 술도 맛이 없고 사람들 앞에서 구라발도 살아나지를 않는다. 그리고 구라발이 살아난다 해도 낮에 사람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나의 속 알맹이 본모습을 보여줬으니 그놈의 구라가 씨알도 안 먹힐 터이다.

"오호 통재라, 도대체 이 일을 어찌 하면 좋겠는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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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정비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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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주인장께서 예를 다하여 손들과 함께 차려놓은 밥상머리에서 재수 없게 징징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해서 요래요래 눈치만 보고 있는데 낮에 엄청난 데미지를 맞은 다리가 슬슬 풀려온다. 술이 한 잔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몸은 더워지고 주둥이는 열두 마력짜리 모터를 달은 듯 너불너불 거리기 시작하는데 떠드는 나야 그렇다 쳐도 들어주는 분들도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을 해도 앞뒤가 없는 구라를 한참 떠들다가 제풀에 제가 죽어 잠이나 자러간다며 그 맛난 안동찜닭을 한 접시도 못 먹고 비틀거리며 올라가는데 꼴에 여기가 어디라고 독방 차지한다며 아래층의 그 넓은 방을 놔두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집 주인장이 배운 사람 티를 내는데 꼴같잖은 나를 따라 와서는 이부자리까지 펴주고 내려가시는 게 아닌가? 배운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게 표시가 나는 법인가 보다. 잠깐 내가 돌았는지 어쨌는지 주인장이 내려가자마자 농을 열고는 양단이불 두 채를 꺼내어 하나는 깔고 하나는 둘둘 말아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는 그야말로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려와서 한다는 소리가 내 집처럼 편하게 잤다며 낄낄거리고 해장부터 온갖 참견을 다하고 다닌다.

비는 내리는데.....
▲ 정원 비는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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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카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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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밖에를 나가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동네서 밤에 레이벤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다가 눈총을 받더니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본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정원에 물 뿌리고 있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가관이다. 면목동에서나 통할 짓거리를 양반의 고장 안동에까지 와서 겁도 없이 해대니 그나마 사람들 안 보기 다행이다. 그리고 뭔 잘난 짓을 한다고 카메라를 자동 타이머에 맞추어 놓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셀프카메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혼자 놀기도 지쳤는지 이번에는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서 노는데 어째 노는 폼이 평소와는 다르게 좀은 고상하게 논다. 이 집의 최고 어르신께서 한학자이신데 내가 안동여행을 간다하니 동네 누가 충고를 해준 기억이 났다. 안동에 가서 한학에 대해 아는 척 하지마라가 그것인데 참으로 큰일 날 뻔했다. 물론 아는 게 없어 아는 척 할리도 만무지만 고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소지가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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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창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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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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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서원, 병산서원, 고산서원, 묵계서원, 예안향교, 임청각, 퇴계종택, 영호루, 애일당, 국학진흥원, 등등이 있고 인구 17만도 안 되는 도시에 대학이 다섯 개씩이나 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가 아니던가! 또한 월영교, 하회마을, 안동포, 안동찜닭, 안동 민속촌과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향교(서당)가 여럿 있을 정도의 학문의 고장이자 선비의 고장인 것이다. 이 댁의 어르신께서도 칠십의 연로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아침이면 앉은뱅이 책상 앞에 정좌를 하시고 학문에 정진을 하시며 대학에 출강을 하신다는 말씀에 그 분의 자제분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품위와 인격이 절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사실은 어르신의 공부하신 흔적 이모저모를 내 마음의 각주로 삼으려 사진으로나마 찍어와 보고 또 보며 마음을 다진다하지만 공부는 결심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안다. 참으로 이번 안동여행은 나에게 있어 여러모로 많은 공부가 되는 여행이었고 사람공부 역시 많은 여행이었다.

정원에 오죽이 있습니다.
▲ 오죽 정원에 오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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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틈에 새집이 있는데 새들은 마실갔나 봅니다.
▲ 새집 벽틈에 새집이 있는데 새들은 마실갔나 봅니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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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기는 6편을 끝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밝혀두지만 글 속에 나오는 "고로롱 선생"은 현재 방송작가로 현역에서 활동을 하시는 분이시며 또한 내가 존경하는 분이시다. 여행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다소 거친표현이 있지만 내가 존경하는 분들을 흠집내려는 의도는 아니다. 나는 글쓰는 작가도 아니요, 더군다나 없는 얘기를 꾸며내는 극작가는 더더욱 아니다. 나의 이 글로 인해서 함께했던 사랑하는 분들께 누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소한 잘못은 용서해 주시리라 믿는다.


태그:#안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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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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