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늘의 일정은 고운사이다. 이런 학구적인 것을 원래 좋아하지는 않지만 잠깐 고운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경상북도 의성군의 등운산 자락에 위치한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신라 신문왕 원년인 681년에 신라의 승려인 의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으나, 조선시대 책만 사모으다가 망한 학자 최치원이 머물며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래 최치원의 호인 고운(孤雲)을 따라 절의 이름을 개칭했단다.
 

절의 유래가 어떻고 이름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내 보기에 좋으면 그만이지 내가 역사학자도 아닌 터에 이 정도만 알아도 훌륭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어디어디 다니면서 이 정도를 모르면 안 된다는 듯이 누군가에게 누누이 설명을 듣는 일이다. 그냥 보고 느끼면 되지 몇 년에 세워졌으면 뭘 할 것이며 또 그것을 외워본들 뭘 어쩌겠는가? 나중에 남들 앞에서 내가 이 정도이니라! 하고 뽐내려고? 피곤한 일은 아예 안 만드는 게 상책이다.

 

"고로롱 선생님 좋으시겠습니다. 오늘은 차만 타고 움직인답니다."
 

걷고 오르고 일정을 빡세게 돌려서 다음부터는 고로롱 선생이 "나 안 갈래!"이 소리가 나오게끔 만들었어야 되는데 많이 아쉽다. 나도 올해로 반백 년의 삶으로 접어들었지만은 이래서 나이 들으면 서러웁다 하는가 보다. 그러나 눈도 안 좋아, 귀도 잘 안 들려, 다리는 찔룩 거려, 거기에 따라다니며 잔소리까지 심한 고로롱 선생을 내가 아니면 어느 뉘가 같이 놀아드리겠는가? 해서 마음을 착하게 고쳐먹고 고로롱거리는 선생과 재미나게 놀아드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멋진 풍경 사진 찍고 싶으시면 차 세우세요"라며 히죽이 웃는 실없는 양반 차를 타고 고운사로 들어가는데 길 옆 아름드리나무들 가지에 붉고 파란 천들과 흰 천들이 서낭당 뭐 마냥 줄줄이 걸려있다. 고로롱 선생이 아는 척을 하시는데 설치미술 뭐라 시더라? 그래서 내가 단 칼에 베어버렸다.  "아닙니다."


이 양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갔는지 그럼 뭐냐며 설명을 해 보란다. 굳이 설명을 하라면 못할 것도 없지만 꼰대가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쌩 까고 말았다.

 

고운사로 달리는 차안에서 가만 생각을 해보니 여행이란 이런 거구나 싶은 게 여행 중에 만나는 바람소리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도랑물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자기를 낮춤으로서 다투지 아니함을 가르쳐준다. 국도변 길가의 나무들은 움직임이 없어도 한평생을 자족하는 지혜를 가르치고 이 나무 저 나무 바람에 서로를 부대끼며 버석이는 나뭇가지는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도처에 스승 아닌 것이 없으며 성철스님의 말씀대로 눈에 보이는 것마다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마다 묘음(妙音)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망할 고로롱 선생은 눈치도 없지 자꾸만 말을 시키고 난리다. 나는 차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에 취해서 반쯤은 넋이 나갔는데 뭘 자꾸만 물어보니 대답인들 공손할까? 나중에는 열이 뻗쳐서 달리는 승용차 문을 열고 발로다가 밀어버릴 뻔했다. 그래도 내가 배운 사람이기에 망정이기 돼먹지 못한 놈이라도 만났으면 고로롱 선생은 지금쯤 염라대왕 앞에서 히죽이고 있을는지 모른다. 허허!

 

한참을 타이어 고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달려온 곳, 드디어 고운사에 당도를 했다. 내리자마자 궐련 한 개비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데 어라!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어쭈, 이것들이 서울하고도 면목동에서 가롤로 거사님이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나? 비까지 뿌려주게! 쓸 곳도 없는 생각에 히죽이 웃으며 카메라를 꺼내는데, 응? 건전지가 다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예비 건전지 안 챙겨온 것을 후회해봐야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지 때는 늦었다.

 

뒷짐을 지고 뭐나 된 듯 절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고요한 절집에서 뭔 놈의 라디오 방송을 한답시고 난 장이 벌어졌다. 쯧쯧쯧! 굵은 소금을 뿌려놓은 듯 안개꽃을 닮은 누님 한 분과 달맞이꽃을 닮은 여인네와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내가 무늬는 가톨릭 신자지만 그래도 반야심경(般若心經) 정도는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다. 변두리 동네 목탁공양 다니는 스님네 보다는 낫다는 얘기다.


부처님의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허나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공즉시색도 나에게는 시비(是非)고 색즉시공도 시비다. 이것저것 하는 자체가, 나에게는 옳다 그르다 따지고 싶지 않은 시시비비(是是非非)일 뿐이다.

  

고즈넉함을 더해주는 내리는 빗속에 오라질 놈의 라디오 방송만 아니었으면 참으로 좋았을 고운사의 풍경에 취하고 부처님 말씀에 취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어머니 만들어주신 배꼽시계가 밥 때를 알려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밥집으로 향하는데 마음이 안 좋다. 이번 여행이 어찌 관광이 목적이고 볼거리가 목적이었겠는가? 나의 이번 여행은 바로 사람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들과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 온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갈치조림에 평소 한 공기도 많다던 내가 밥을 두 공기나 비우고 KTX를 타기 위해서 대구역으로 향하는데 발걸음이 묵직하다.

 

  

대구역! 누가 안동 선비의 고장 아니랄까 봐 우리를 초대했던 분이 KTX 표를 끊어 오시는데 사람은 셋이건만 동반석으로 4인석을 끊어 오셨다. KTX가 보기보다는 좌석이 좁아 불편하니 조금이라도 편히 가시라는 배려이시다. 염치 불구하고 편하게 서울까지 오기는 왔는데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함께한 벗들이 마련해준 선물꾸러미를 들고 서울역 개찰구를 나오며 이게 바로 사람 사는 것이겠거니 해보지만 참으로 신세만 지우고 떠나왔다는 생각이다.

  

도대체 이번 여행의 후유증이 얼마만큼 가려는지 모르겠으나 지금도 그들의 까르륵 숨 너머 가는 웃음소리가 귀에 쟁쟁한 게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의 콘크리트 숲이 주왕산 봉우리로만 보이니 큰일이다.


태그:#안동, #주왕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