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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20개국(G20) 서울 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이번 회의를 앞두고, 단군 이래 최대의 국제행사라며 대대적인 선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만들어진 G20 회의가 과연 경제위기 해법에 올바르게 다가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오마이뉴스>는 손지애 G20서울정상회의 준비위원회 대변인과 장화식 G20대응 민중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환율전쟁이 끝났다구요? 순진한 생각이죠."

 

장화식 위원장은 딱 잘라 말했다. 오는 11일 서울서 열리는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단호했다.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세계 정상들이 모였다고 하지만, 위기 해결을 위한 기본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G20대응 민중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번 위기를 불러온 대형 금융기관이나 기업에 각국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넣어 살렸다"면서 "정부가 나서 경제위기 책임자를 구제해놓고, 서민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일자리 등의 지원은 미비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별관 2층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 역시 이번 서울 회의를 앞두고, 각종 심포지엄과 집회 준비 등으로 바빠 보였다.

 

장 위원장은 "서울회의에 맞춰 11월부터 광화문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인 1인시위를 비롯해, 진보학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제심포지엄 등이 열릴 예정"이라며 "해외에서도 1000여 명에 달하는 학계, 노동계 등 인사들이 들어와 각종 행사와 집회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 책임과 원인은 사라지고, 서민과 노동자 고통만 늘어"

 

- G20 서울정상회의를 앞두고 바쁜 것 같다.

"G20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어떤 성격의 회의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각종 심포지엄도 열고, 1인시위도 하면서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여러 평가가 있긴 하지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G20이 역할을 했다는 의견도 많지 않은가.

"(곧장) 경제위기가 닥치자 각 나라들이 대규모 재정지출을 하고, 구제금융으로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문제를 발생시킨 당사자들에게 위기의 책임을 묻지도 않고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위험한 투기로 막대한 이득을 올렸지만, 위기 상황에선 책임도 지지 않고 각종 지원을 받았다."

 

장 위원장의 생각은 분명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G20의 목적은 금융위기의 극복과 재발 방지였죠. 그러면 위기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 있는 당사자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맞죠. 지금 보면, 일단 급한 불을 꺼놓고 보니 책임은 사라졌고 위기의 원인도 사라져 버렸어요.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은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은 살아났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지요. 오히려 그 회사 CEO들은 세금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였잖아요."

 

지난 경주 G20 재무장관회의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번 회의에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촉발된 환율전쟁이 큰 관심사였다. 올해 들어 일부 신흥국가를 중심으로 경기회복세가 뚜렷해진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여전히 회복세가 더딘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국제공조가 느슨해지면서, 오히려 세계 곳곳에서 무역마찰이 일 조짐까지 보였다.

 

"환율전쟁 종식 선언은 순진한 생각... 고환율 혜택은 수출 대기업에만 집중"

 

- 이번 경주회의를 마치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전쟁은 종식됐다"고 선언했는데.

"(고개를 흔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미국의 달러화가 여전히 기축통화로 쓰이고 있는 상황에선 결코 환율을 둘러싼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순진한 생각이다."

 

- 그래도 이번 합의를 통해서 전보다 나라 사이의 환율 갈등이 줄어들 소지는 있지 않은가.

"이번 합의는 단순한 미봉책 수준이다. 미국이 재정이나 경상수지에서 여전히 큰 폭의 적자를 보이고 있고, 조만간에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을 쓴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해서 시장에 달러화가 엄청 풀리게 되면, 상대적으로 일본 엔화 등의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중국 위안화 가치도 올라가야 하지만, 중국 정부가 (환율을) 잡고 있는 상황에선 언제든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 한국 역시 중국과 함께 환율조작국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잠시 생각하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과거엔 정부에서 외국환평형기금이라는 것을 통해서 외환시장에 개입해왔다. 수출이 많은 우리나라 입장에선 경제안정을 위해 환율을 적정하게 유지, 관리한 측면이 있지만, 사실상 수출 대기업들만 환율 혜택을 고스란히 받았다."

 

장 위원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 통화인 원화의 가치도 어느 정도 올라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고환율 정책을 유지했지만, 수출 대기업들만 이득을 봤을 뿐 일자리 창출 등 고용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 참여정부 때 (원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가) 900원대였던 것이 1500원까지 올랐지요. 지금은 1100원대까지 다시 떨어졌지만... 환율이 오르면 수출하는 기업들은 이득을 보겠지만, 각종 원자재 등 수입물가가 오르게 되면서 물가상승, 소비위축 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죠.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등 수출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올렸다고 하지만 국민들에게 휴대폰, 자동차값 깎아준 적 있어요? 이들 대기업 일자리는 거의 제자리에다가, 하청업체들은 여전히 먹고살기 힘들지요. 도대체 고환율 정책 펴서 나아진 게 뭐가 있습니까."

 

"IMF 개혁? 미국이 거부권을 포기했다면 획기적인 변화였을 것"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올라가 있었다. 그는 "물가 안정과 내수 진작을 위해서라도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도 적정하게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문제도 G20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데, 언론들은 이번 경주회의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가지고 있는 IMF의 지분을 좀더 신흥국에게 주겠다는 것인데, 정치적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 일부에선 합의대로 된다면, 세계 경제에서 신흥국들의 입김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IMF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이다. 예전 우리 외환위기 때 강요한 협정을 생각해보라. 고금리, 긴축정책, 구조조정 등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던 장본인들이다. 게다가 전 세계 금융자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투기활동을 조장하거나 방조해 온 기구였다."

 

- IMF에 대한 제대로 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다. G20은 IMF가 그동안 해왔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평가나 이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IMF 지분을 5%에서 6% 넘기기로 했다고 해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선진국은 여전히 IMF에서 투표권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면서 "특히 미국은 혼자서 중요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위원장은 "만약 미국이 거부권을 포기했다면, IMF 구조개혁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G20에 대한 비판은 계속됐다. 서울정상회의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도 물었다. 물론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경주회의에서 합의된 것 이상으로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며 "경주 합의문에 화려한 정치적 수사어구 등이 덧붙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역에서 대규모 집회 열 계획... 시민들이 나서야 할 때"

 

장 위원장은 또 "G20에서 합의문을 발표하더라도, 각 나라가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면서 "지난 캐나다 토론토 회의에선 G20의 핵심 사안이었던 금융규제에 대해 아예 '어떠한 것도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 어차피 G20 역시 다자 간 국제협의체 성격이라, 합의에 대한 강제성을 띠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고 있지 않은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니까, 캐나다 회의처럼 아무런 의미 없는 합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G20 회의 한 번 개최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나. 그러니까 선진국에서도 G20 무용론이 나오는 것 아닌가."

 

- G20이란 회의체 말고 다른 대안이 있나.

"굳이 찾는다면, 유엔을 통해서 해도 된다. 유엔은 국제법적으로 합의된 최고 의사결정 기관 아닌가. 이번 위기의 핵심인 금융투기자본에 대한 규제 등은 충분히 유엔에서 논의될 수 있다. 유엔에서 결정하면, 법적으로 책임도 물을 수 있지 않은가."

 

- 유엔은 너무 기구가 방대하고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는데.

"만약에 전쟁이 터졌을 때, 전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긴급한 문제가 터졌을 때, 유엔에서 논의한 사례가 많았다. 경제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유엔이라는) 기구가 너무 크고 회원국이 너무 많다고 한다면, 뭐하러 20개 나라가 모여서 회의를 하나. 미국과 중국, 빅2만 모여서 회의하지."

 

장 위원장은 "아마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유엔 차원에서 곧바로 금융규제 등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면, 오히려 지금쯤이면 나름의 성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 이번 서울회의를 앞두고, 정부 차원에서 '단군 이래 최대행사'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웃으면서) 이번 회의의 경제적 효과가 수십조원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효과가 크면 매달 그런 회의를 유치하지... 터무니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국제회의 한 번 개최한다고 당장 국격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회의 유치해 놓고 막대한 세금만 쓰고, 제대로 된 성과 없이 끝나면 그것처럼 낭비도 없다."

 

그는 "적어도 (정상회의가) 최소한 점심값이라도 하려면, 금융거래세 도입을 비롯한 제대로 된 금융규제와 자본통제를 위한 진지한 토론과 논의의 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 장 위원장은 최근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프랑스 청년과 노동자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예로 들며, "이제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본격적인 서울정상회의가 열리는 12일에 강남역 일대에 집회 신고를 해놓은 상태"라며 "많은 시민들이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 앞으로 좀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G20#장화식#서울 정상회의#IMF#환율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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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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