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여행기는 2010년 4월 14일~6월 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의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내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기자말

 

어느 책에서 말했습니다. 그곳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도로도 없으며, 오직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강물 따라 흘러가는 배를 타야만 하는데… 배는 조그마한 나뭇배이며, 동굴을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자동차가 질주하고, 핸드폰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에, 전기도 없으며, 세상과 연결된 고리가 나뭇배뿐이라는게 너무나 믿기지 않아 먼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윈난(雲南)의 광난이라는 소도시에 닿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야 합니다.

 

어머님,

광난에 내려서, 바메이(坝美)라는 곳을 물어봅니다. 버스는 없는 듯하며, 빵차가 있는데 언제 갈른지 '세월아 네월아' 표정입니다. 광난은 무기력한 느낌이 들면서 내 기운마저 시나브로 빼 먹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버스 정류장 앞에서는 애기 엄마가, 젖먹이를 안고 구두를 닦으면서 한 푼 한 푼을 모으는 모습은 삶의 경이로움을 생각하게 합니다. 무기력한 기운과 삶에 대한 애착이 집착으로 앉아 있는 이 이율배반적인 소도시의 풍경 위에 저는 서 있습니다.

 

어머님,

어제는 '정말 그런 곳이 있을 수 있나'라며 그 말을 믿지 못했고, 오늘은 '정말 이런 곳이 있을 수 있나'라며 아침 풍경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제 오토바이를 타고 10여 분 달리니, 아저씨가 길에서 벗어난 조그마한 산아래 마을에 저를 내려주고 '저쪽'을 가리키며 돌아서십니다. '저쪽?' 조그마한 오솔길이 있지만 사람이 다니지 않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다시 마을 사람에게 '바메이'를 묻고서 오솔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니, 동굴 안으로 물이 흐르고 있으며, 조각배가 놓여져 있습니다. 역시나 아무도 없습니다. 너무나 조용한 곳입니다. 저는 '여보세요'하여 사람을 부르니, 아저씨 두 분께서 나오셔서 표를 한 장 건내주시고, 다른 한 분은 저를 배 위에 태우고 동굴 속으로, 물을 따라 흘러 들어갑니다. 전 정말 믿을 수 없는, 이 기이한 일상으로, 오랜 지구가 만들어낸 석회암 동굴로 배를 젖어 들어갑니다. 어두컴컴하고 조용한 동굴 안은 배가 물위를 지나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배가 동굴을 빠져 나오자 물가 옆으로 나무들이 손을 뻗고서는 저를 부르고, 저 밭에서는 풀을 뜯고 있는 워낭 소리가 풍경(風景) 소리처럼, 선경(仙境) 소리처럼 들려옵니다. 배는 조금 더 내려가서 수차(水車)가 있는 곳에서 멈춰섭니다. 그리고 마차가 기다리는데… 전 홀로 기분에 취해 다시 걷기로 합니다.

 

양 옆으로 산이 우뚝 솟아 세상을 멀리하고, 발 아래는 조그마한 냇물이 흘러 선경으로 인도하고, 바람결에 흩날리는 워낭 소리는 발걸음마저 가볍게 합니다. 다시 배가 놓여져 있고, 이번에는 아주머니와 함께 배를 타고 동굴 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산길을 돌아 30여 분 걸어온 이 길이, 어찌도 이렇게 사람을 황홀케 하는지, 걷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고, 머리 속내는 '세상에 어찌 이런 곳이 있느냐'며 되뇌입니다.

 

어머님,

아주머니와 함께 광난에서 바메이로 들었는데, 그 분이 마침 여관집 주인인지라 쉬이 방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바메이에는 따로 빈관(賓館)이 있는 게 아니라 가정집에서 잠자리를 구하고, 밥을 해결해야 합니다. 어쩜 바메이는 관광지가 아닌 한가한 산골 시골입니다.

 

간밤에는 수차 돌아가는 소리–첸동남지역(黔)과 이곳에는 대나무로 만든 수차(물레방아와 비슷한 모양)가 물을 퍼 올려 논에 물을 대어줍니다–에 깊은 잠은 들지 못했지만 창문이며 방문을 열어놓고 잠을 청했으며, 초저녁에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 본 것은 진기한 경험의 일부입니다.

 

어머님,

세외도원이라 함은 어떤 의미인지 저는 미처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놀고 먹기만 하는 곳이 어쩜 도원이라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른 아침, 아주머니들은 도시락 하나에 소를 몰고, 산으로 들로 일하러 가십니다. 그러니까 동내에는 갓난아기와 할머니, 저뿐입니다. 선비 놀음 마냥 놀다가, 어제 들어온 그 신기한 동굴로 다시 올라가봅니다.

 

들었다, 나왔다, 다시 드는 길이지만 기이하고 신비로움은 한층 더 짙어집니다. 배 나아가는 소리에 천장을 바라보니, 지옥의 아귀처럼 종유석들이 흐물흐물 거리며 나를 낚아 채려 합니다. 동굴 속에서는 큰소리 치거나 일어서 버린다면 천장에 매달린 아귀에 붙잡혀 저 너머로 갈 수 없을 듯합니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니, 백만 마리의 아귀 무리가 '가지 마라' '가지 마라'하며 '나를 살려달라'하며, 손을 뻗고 함부로 고함을 치르는 듯합니다. 꼭 지옥의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동굴을 빠져 나와, 두 번째 동굴로 이르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아주머니들이 냇가에 목욕을 하고 계십니다. 나는 가던 길을 놀라서 다시 뒤돌아 서서 먼 산을 바라봅니다.

 

저녁에는 아주머니랑 아저씨랑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반찬을 덜어 주시고, 아저씨는 맥주를 건내주십니다. 밤에는 원산(文山)에서 왔다는 대학생 연인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네들은 한국인을 처음 본다고 했으며, 한국 돈 천원을 기념품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님,

제가 바메이라는 동내에서 한 일이라고는 바람과 잠시 이야기만 나눈 것뿐일른지 모릅니다. 바메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음날 아주머니랑 함께 길을 나섭니다. 아주머니는 늘 그렇듯이 시장에 나가셔서 장을 보곤 하시는데, 아저씨의 선한 모습과는 다르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어린아이 마냥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길을 나서는 꼬맹이가 되어 있습니다. 아주머니랑 저는 그제 왔던 길이 아닌 물따라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다시 배가 놓여져 있고, 커다란 동굴이 있습니다. 동굴은 어떠한 불빛도 들어오지 않으며, 짙은 어둠 어디선가 '너는 왜 세상으로 들려 하느냐'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어둠, 어둠의 저편은 더 짙은 어둠이 내 눈을 어지럽게 할 터인데, 왜 그곳으로 가르하느냐' 내 귀에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습니다.

 

나는 배가 바위에, 동굴 벽에 행여나 부딪히지 않을까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데, 사공은 말 없이 고요합니다. '짙은 어둠이 사위를 가리면 모든 게 꿈결처럼 사라지고, 어둠이 걷히게 되면 너는 혼돈의 거리에 서 있으리라' 어둠 저편에서 주문이 이어집니다. 물 소리뿐입니다. 어디선가 한 줄기 빛이 솟아져 내려옵니다. 다시 배를 돌려야 하지만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바메이라는 어느 시골의 산골을 드나들기 전, 무릉도원을, 세외도원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놀고 먹는 곳쯤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선비 노릇이나 하듯 수양버드나무 아래서, 냇물 소리로 귀를 씻으며 홀로 책을 읽는 것이 오랜 낙(樂)이며 삶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바메이를 나온 지금, 뒤돌아보니 '도원(桃園)'이라 함은 해가 나면 일하러 가고 해가 해실바실 너머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아주 평범한 일상인 듯합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해와 바람이 머무르고, 낮에는 냇물이 밤에는 달과 미리내가 흐르며, 땀 흘린 만큼의 노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부족함이 없이 구할 수 있는 곳입니다.

 

누군가 '세외도원'이 어떤 곳이냐고 물어온다면, 저는 이렇게 들려줄 듯합니다. 내 몸이 건강하고, 하루 일할 거리가 있으며, 그 일로 인하여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으며, 밤에는 수많은 별들이 저희끼리 소근거리고, 그 밤길을 홀로 걸어가 냇물에 목욕을 하고, 방문을 열어놓은 채 잠자리에 드는 산촌이라고.

 

고마운 하루를 보내고 다시 낯선 길을 찾고 있습니다.

 

2010. 05.05 윈난(雲南) 바메이(坝美村-世外桃園)에서


태그:#중국, #세외도원, #바메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