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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살인> 겉표지
<새의 살인>겉표지 ⓒ 작가정신
매사냥꾼들은 매를 길들이고 훈련시켜서 특정한 동물을 사냥하도록 만든다. 이런 매사냥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시대에는 매사냥이 '왕과 귀족의 스포츠'였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매사냥에 심취해서 <새를 이용한 사냥기술에 대해서>라는 논문을 쓸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 매사냥꾼이 매를 조련하지 않더라도, 매는 자연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냥을 한다. 다만 인간에게 조련을 받게되면 매의 비행기술과 사냥기술이 좋아지고, 사냥이 끝난 뒤 매가 매사냥꾼에게 돌아온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매사냥꾼이 특정한 방법으로 매를 조련하게되면 그 매가 인간을 공격해서 죽일 수도 있을까. 과거에 러시아에서 독수리들이 늑대를 사냥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늑대를 사냥할 정도의 맹금류라면 충분히 인간을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윌리엄 베이어의 작품 <새의 살인>(윌리엄 베이어 저, 작가정신 펴냄)에는 도시 한복판에서 특정한 인간을 공격해서 죽이는 매가 등장한다. 그 매는 암컷 송골매로, 사냥감이 정해지면 그위의 하늘을 선회하다가 무서운 속도로 낙하하며 인간을 공격한다.

몸무게가 2킬로그램 밖에 안되는 새가 떨어지는 속도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중에서 폭발적인 힘과 번개 같은 속도로 떨어지며 사람을 타격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기절해서 쓰러진 사람의 목을 날카로운 부리로 몇 차례 깊게 벤다. 그럼 사냥이 끝난다.

도심에서 젊은 여성만을 공격하는 '송골매'

송골매의 이런 공격은 여러가지 면에서 비상식적이다. 맹금류는 보통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이상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송골매가 아무리 굶주리더라도 인간을 자신의 먹이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인간을 죽인 송골매는 시체를 뜯어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사라져간다. 왜 송골매가 인간을 공격했을까?

뉴욕시의 지역 방송국 기자인 팸 배럿은 우연한 기회에 송골매가 젊은 여성을 공격해서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역시 그 광경을 우연히 동영상으로 촬영했던 행인에게 부탁해서 동영상을 얻어낸다. 말하자면 팸은 특종을 따낸 것이다.

새의 공격을 알리는 이 보도는 저녁뉴스 시간에 동영상과 함께 방송된다. 팸은 주목받는 기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도심 한가운데에 나타난 송골매의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특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후속기사가 계속해서 적절히 나와줘야 한다. 팸은 슬픔에 잠긴 사망여성의 가족을 취재하고, 조류 전문가를 찾아서 인터뷰하며 시민들의 관심을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팸은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자신이 이용하고 있다는 죄책감도 느끼지만, 직감적으로 이번 특종으로 자신의 기자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올거라고 느낀다. 며칠 후에 그 송골매는 또 다시 사람을 공격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살인사건이라면 이제 연쇄살인으로 돌변한 것이다. 사망자들은 모두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두번째 사건이 터진 날, 팸은 '송골매'라고 서명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에서 송골매는 자신이 또다시 사냥에 나서서 자기 의도에 맞는 사냥감에게 사납게 달려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편지가 장난편지가 아니라면, 누군가가 송골매를 조종해서 사람을 계속 죽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범인은 살인을 하기 위해서 참으로 교묘한 무기를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새의 주인에게 죄값을 치르게 할까

<새의 살인> 말고도 동물이 인간을 공격해서 죽이는 내용의 작품들이 있다. 코난 도일의 <바스커어빌가의 개>에서, 범인은 입과 눈에서 유황불을 뿜어내는 지옥의 개를 만들어 피해자를 공격한다. 최초의 추리소설인 에드가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에서는 오랑우탄이 엄청난 괴력으로 피해자들을 살해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에서는 갈매기와 까마귀가 인간을 공격한다.

동물을 이용한 살인사건이라면 수사관들이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기가 그만큼 어려울 것이다. 하늘로 날아가버리면 그만인 송골매라면 더욱 그렇다. 송골매를 발견하고 추적하기 위해서 헬기를 띄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빌딩숲을 이룬 뉴욕시에서 송골매의 둥지를 발견하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와 같다.

그렇게 송골매를 추적해서 죽인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연쇄살인범에게 무기를 빼앗는다고 해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새가 아니라 배후의 사람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새의 주인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그 주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송골매가 사람을 죽이면 그 주인에게 어떻게 책임을 지게할까. 자기는 인간을 공격하도록 훈련시킨 적이 없다고 잡아뗀다면 살인죄로 기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작품 속에서 전문적인 매사냥꾼은 팸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매가 사냥에 나서도록 특정한 동물을 매에게 '입력'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렇더라도 인간을 공격하도록 훈련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매사냥', 숭고한 스포츠 또는 잔인한 오락

그는 매사냥을 그리스연극에 비유한다. 매사냥꾼은 매를 통해 사냥에 참여함으로써 연민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자기를 정화시킨다. 즉 매사냥은 새와 사람이 서로에게 헌신하는 숭고한 스포츠라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조류 전문가는 매사냥을 비난한다. 그에 의하면 야생동물을 사람이 조종하는 것 자체가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다. 숭고한 스포츠가 아니라 이기적이고 잔인한 오락이다. 그렇게 훈련받은 새들은 야생상태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매사냥꾼의 지시없이 스스로 먹잇감을 찾는데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쟁말고도 <새의 살인>에는 많은 흥미로운 모습들이 있다. 방송국 직원들은 시청률을 확보하고 특종을 이어가려고 고민하고, 기자와 형사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숨기면서 자신이 상대보다 우위에 서려고 한다. 일반사람들이 잘 모르는 새 암시장에서는 독수리나 올빼미같은 대형조류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거래된다.

야생상태의 송골매는 희귀동물이다. 살충제가 먹이사슬에 스며드는 바람에 번식력이 약해진 것이 한 원인이다. 살충제의 화학물질 때문에 알의 껍데기가 얇아졌고 그래서 정상적인 부화 이전에 깨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대한 송골매의 공격은, 인간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해진 송골매의 분노의 역습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새의 살인> 윌리엄 베이어 지음 /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펴냄.



새의 살인

윌리엄 베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2010)


#새의 살인#송골매#매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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