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길이 335m, 높이 11m, 총저수량 2870만 톤의 물을 가두게 되는 구조물이다.
▲ 상주보 길이 335m, 높이 11m, 총저수량 2870만 톤의 물을 가두게 되는 구조물이다.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지난 일요일(10월 31일) 아침, 우리는 전세버스를 타고 안동을 출발했다. 승객은 교사, 시민, 학생 등 일부러 맞춘 듯한 서른셋. 행선지는 예천 회룡포를 거쳐 낙동강의 상주보 공사 현장. 눈치 챘겠지만 이 답사는 '333대의 버스에 33인의 참여자를 태우고 4대강 현장 답사를 진행하는' <1만명 답사운동 333프로젝트>로 이루어진 것이다.

'1만명 답사운동 333 프로젝트'

'1만명 답사운동'은 이원영 교수 등 학계와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각계 33인에 의해 4대강 사업 공론화를 촉구하면서 출범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간단하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찬성과 반대 견해를 잠시 유보하고 열린 마음으로 현장에 가서 우리 강의 모습과 공사에 따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또 그 변화를 확인함으로써 '강 원형의 모습을 제대로 알고 우리가 지켜가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시민운동이 대중에게 다가가 운동의 대의와 정당성을 나누고자 하는, 보다 진화한 운동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1만명 답사운동 333프로젝트 안내
 1만명 답사운동 333프로젝트 안내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답사는 '누구든 신청만 하면 버스비와 답사해설'을 지원하므로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누구나 후원할 수 있다. 늘 서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습관 때문일까. 나는 우리 지역에서도 답사가 출발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제의가 왔을 때 내가 전혀 망설이지 않았던 이유다.

지역에서 출발하는 일정이어서 먼저 우리 일행은 자체 프로그램으로 예천 회룡포를 답사했다. 10시 반께 우리는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회룡포 마을에 도착했다. 꽤 자주 회룡포를 찾았지만 차로 곧장 마을에 바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이번 답사는 '1만명 답사운동 333프로젝트'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답사는 '1만명 답사운동 333프로젝트'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회룡포는 봉화에서 발원한 내성천이 355도로 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인근 낙동강의 하회와 같은 '물돌이 마을'이다. '뭍 안의 섬' 같은 자그마한 마을이지만 이 마을은 아름다운 풍광과 TV 드라마 <가을동화>로 전국에 알려졌다. 최근에 KBS의 주말 프로그램 <1박 2일>의 무대가 되는 바람에 그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유명세를 타는 게 반드시 마을에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마을의 정적과 고요를 깰 뿐, 사람들이 마을에 남기는 실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예천군에서는 마을에 표지석과 안내판을 세우고 연못을 곁들인 소공원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이들 지자체는 사람들이 그런 '인공'을 만나러 회룡포를 찾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일행은 강변의 언덕을 넘어 모래밭으로 내려갔다. 가을이라 내성천의 수량은 보잘 것 없다. 불과 몇십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얕은 강물이 흐르는 양옆 강가로는 하얀 모래톱이 펼쳐져 있다. 원색의 옷을 차려입은 관광객들이 강을 가로지르는 '뿅뿅다리' 위를 점점이 수놓고 있었다.

회룡포의 비경도 얼마 남지 않았다

회룡포 마을 앞의 '뿅뿅다리'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
▲ 회룡포 회룡포 마을 앞의 '뿅뿅다리'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조만간 사람들은 회룡포의 비경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공사 중인 총저수용량 1억8000만 톤의 영주 송리원댐이 완공되면 회룡포의 모래톱은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흐르던 물이 실어다 주던 모래가 끊긴 회룡포 주변은 개흙이 쌓여서 만드는 습지만이 남을 것이다.

일행은 하릴없이 뿅뿅다리를 건넜다가 돌아온다. 건축 비계용으로 쓰는 구멍 뚫린 철판을 이어놓은 이 명물다리도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철판의 구멍 사이로 흐르는 물은 투명하고 맑았다. 무심하게 다리를 오가며 사진을 찍지만 관광객들은 이 아름다운 풍경의 미래를 알기나 할까.

마을을 떠나려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데, 주차장의 콘크리트에다 벼를 말리고 있는 노인들을 만났다. 붙임성 있는 동료들이 노인들께 말을 붙인다.

- 이 마을에 모두 몇 분이나 사세요?
- 9가구에 모두 열셋밖에 없어.
- 마을 안에도 볼 게 많나요?
- 아니. 곳곳에다 시멘트로 칠갑을 해 놓았는데 볼 게 뭐 있겠어?

갈수기라 수량이 적어  마을을 빙 둘러싼 모래톱의 넓이가 더 텅 비어 보인다.
▲ 회룡포 갈수기라 수량이 적어 마을을 빙 둘러싼 모래톱의 넓이가 더 텅 비어 보인다.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여기까지 와서 회룡포마을을 조망해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일행은 다시 마을을 떠나 회룡대에 올랐다. 늘 그렇듯 여기도 관광객들로 넘친다. 회룡대의 이른바 포토존에는 KBS-TV의 카메라가 버티고 있다. 뭐 하냐니까 자료 화면을 찍고 있단다.

<1박 2일>을 찍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자료화면 촬영을 온 것은 회룡포의 목숨이 경각에 있다는 사실을 내다본 것인지 모른다. 마음이 달라서인가, 회룡대에서 굽어보는 회룡포 마을은 좀 쓸쓸해 보인다. 수량이 보잘 것 없어서 마을을 빙 둘러싼 모래톱의 넓이가 더 텅 비어 보였다.

스스로 해답을 찾고 싶어한다

휴게소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답사단은 상주로 곧장 향했다. 좀 늦었지만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거개가 아는 얼굴이지만, 낯선 이들도 가끔씩 눈에 띄었다. 아무개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사람들은 이 답사에 참여하게 된 동기나 감회를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 이성은 분명 이게 아니라고 하고 있는데, 정작 정서적으로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혼란스럽다. 그래서 '현장'에 가 보자고 생각해서 나왔다.

- 사회적 이슈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여론과 국민의 뜻에 반해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현장을 체험하면서 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싶다.

- 낙동강 주변이 고향이어서 거기서 잔뼈가 굵었다. 그런데 지금 고향은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강을 직접 둘러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참가하게 되었다.

상주보 앞에서 지율스님이 공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상주보 앞에서 지율스님이 공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상주보 현장에서 일행들이 지율 스님의 해설을 듣고 있다.
 상주보 현장에서 일행들이 지율 스님의 해설을 듣고 있다.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상주보 인근에서 지율 스님과 만났다. 미디어에서 늘 보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잿빛 승복에 경등산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썼다. 천성산 도롱뇽 싸움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분인데,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다.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인데 그 안에 힘이 느껴지는 것은 그이가 가진 신념 때문일 게다.

충청도에서 온 답사단 안내가 막 끝났다면서 스님은 답사단을 상주보 현장으로 안내했다. 상주보는 길이 335m, 높이 11m, 총저수량 2870만 톤의 물을 가두게 되는 구조물이다. 정부에서는 '보'를 강조하지만 기실 그 규모로 보아 '댐'이라고 하는 게 훨씬 합당하다.

상주보 현장에 공사가 한창이다.
 상주보 현장에 공사가 한창이다.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 시설의 하나, 둑을 쌓아 흐르는 냇물을 막고 그 물을 담아 두는 곳'이다. 보는 기존 하천의 수위보다 높게 쌓을 수 없다. 왜냐하면 보의 높이를 강물의 수위보다 높이면 장마 때 불어난 강물이 넘쳐서 하천 주변이 침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평균 저수량 110만 톤을 무려 25배가 넘는 2870만 톤, 즉 25배로 높이기 위해서 4대강의 보들이 선택한 게 준설이다. 강바닥을 파내서 물의 저장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계획은 어긋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준설토는 강 양안에 마치 산처럼 쌓여 있었다. 스님은 "강주변이 강보다 훨씬 높았지만, 이제 앞으로는 준설토로 아무리 높여도 강이 주변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주변의 물은 배수펌프를 이용하여 강으로 퍼내는 도리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상주보 현장은 분주했다. 가물막이를 한 엄청난 넓이의 강바닥에 각종 자재가 쌓여 있고, 각종 중장비와 대형 트럭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가물막이 벽에 붙은 현수막에 쓰인 글귀들은 마치 이 공사가 연출하고 있는 모순에 대한 반증처럼 느껴졌다.

- 낙동강이 살고, 사람이 살고, 지역 경제가 살아납니다.
- 우리가 꿈꾸는 강의 이름은 '행복'입니다.

강 건너 모래밭으로 준설토를 실어내는 대형 트럭이 질주하고 있다.
 강 건너 모래밭으로 준설토를 실어내는 대형 트럭이 질주하고 있다.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스님은 강둑에 말라죽은 풀을 가리켰다. 환경부가 생태교란종으로 지정한 외래종 '가시박'이었다. 가시박은 하루에 30cm씩 12m까지 자라는 풀이다. 이 풀은 그 엄청난 번식력으로 주변을 죽음의 '녹색사막'으로 만든다. 스님은 가시박의 번식과 폐해를 4대강에 비겼다.

'녹색사막' 가시박과 4대강사업은 너무 닮았다

"가시박이 만드는 녹색사막은 4대강 사업과 너무 똑 같습니다. 그러나 가시박도 첫 서리가 내리면 끝이지요. 이 4대강 사업을 멈추게 하는 첫서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스님은 그러나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 운동은 큰 독에다 물을 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붓다 보면 누가 부은 물이 마지막 물이 되어 넘칠지 모릅니다다. 누군가라도 한 바가지 부으면 마지막 순간, 우리가 원했던 어떤 상황이 올 것입니다. 한 바가지 넘친 물이 마치 첫 서리처럼 이제까지의 염원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물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어렵지만 사람들은 강을 찾고 있습니다.
……염원이 모이면 우연이 운명을 만들어 나가서 필연이 된다고 믿습니다.
우연에도 필연이 따라야 합니다. 우연도 보이지 않는 인과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경천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경천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 이미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 장호철

관련사진보기


상주보를 거쳐 스님은 일행을 경천대 전망대로 안내했다. 도중에 마침 개장하는 자전거 박물관 앞을 지나쳤다. 스님은 자전거 박물관에 무려 1000억 원의 예산이 들었다고 하는데 상주시민의 80%가 농민이고, 농민 중 80%가 60대 이상인데 예산의 우선순위가 왜 그러냐고 반문했다.

또 상주는 '쌀, 곶감, 비단' 등 '삼백'의 고장으로 곶감 농사의 비중이 매우 크다. 곶감농사에는 햇볕이 가장 중요한데, 4대강 사업으로 상주보가 만들어지면 안개일수가 급격히 늘 수밖에 없으니 그건 곶감에는 치명적이라는 사실도 짚어주었다.

어둠살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스님을 따라 경천대 전망대에 올랐다. 경천대의 풍광은 이미 적잖이 훼손되었다. 전망대에서 스님은 예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상주 일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폐해에 대해서,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을 옥죌 것인가를 알려주었다.

지율 스님과 우리는 상주박물관 앞에서 작별했다. 스님은 조그만 자전거를 타고 내리는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돌아오는 길은 모두가 말이 없었다. 단지 피로해서만은 아니었을 터였다. 차창에 달라붙는 어둠을 바라보며 나는 상주보를 떠나며 스님이 건넨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분이 오늘 밟은 이 강은 앞으로는 다시 밟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물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을 찾고 있습니다. ……쉬지 않고 모두가 한 바가지의 물을 붓는 일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태그:#1만명 답사운동 333프로젝트, #상주보, #지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