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0월 30일) 나선 바다낚시에서 오랜만에 만족할 만한 조과를 거뒀다. 이날 잡은 고기로 쿨러를 꽉 채울 수 있었기 때문. 마릿수는 물론 어종도 다양했다. 60cm에 육박하는 광어를 시작으로 45cm급 우럭 등 십수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날 영흥도에서 출조하는 경영호를 타고 나가 혼자 잡은 고기는 광어가 5마리 우럭이 4마리 놀래미(놀래기)가 6마리, 그리고 볼락 4마리 등으로 서해 경기권 우럭낚시 출조에서 이 정도 조과면 꽤나 풍성한 조과를 거둔 셈이다.
'루어낚시'에 광어는 '덜~덜~덜?' 일반적인 우럭낚시 채비에 광어는 흔하게 걸려드는 물고기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우럭보다 더 많은 광어를 잡게 된 것은 순전히 새로운 낚시 채비와 기법을 응용했기 때문이다.
우럭의 경우 몇 마리씩 모여 있다가 미끼가 나타나면 잠시 노려본 후 순식간에 달려들어 한입 가득 문 후 뒤돌아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즉 커다란 입을 이용해 큼지막한 미꾸라지가 매달려 있어도 머리부터 시작해 꼬리 끝까지 한 입에 삼킨 후 처음에 서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럭 입질은 미끼를 건드린다는 투둑거리는 느낌을 받은 후 끌어올리면 여지없이 바늘이 주둥이에 정확하게 꽂힌 채 선상으로 끌어올려 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광어는 먹이를 무는 습관이 다르다. 광어는 우럭에 비해 입이 작고 동작이 느린 관계로 미끼에 달려든다고 하여도 한입에 삼키지는 못해 완전하게 물 때까지 잡아채지 말고 3~4초 이상 느긋하게 기다린 후 릴링을 시도해야 한다.
우럭낚시가 고패질을 시작으로 부지런해야 풍성한 조과가 기대되는 반면 광어 낚시는 조금은 게으른 낚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닥을 끌면서 느긋해야만 하고 챔질도 급하게 해서는 광어를 잡을 수 없기에 그렇다.
이런 관계로 초보자들의 경우 낚싯바늘이 바닥에 닿은 줄도 모르고 바닥을 끌고 가다가 어느 순간 광어가 입질을 해대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막상 낚시 채비를 걷어 올리고서야 광어가 걸린 사실을 확인하고는 한다.
이날 내가 탄 경영호의 맨 앞 선수 쪽에서는 한 분이 우럭낚시대가 아닌 루어낚시대로 무장한 채 큼지막한 광어를 계속해서 걸어올리고 있었다.
낚시 채비와 기법을 살펴보니 바닥에 걸리지 않도록 20호 남짓의 봉돌을 낚시줄 맨 끝에 달고 봉돌의 20센티쯤 위에 외바늘 광어 전용 낚싯바늘에 인조미끼를 끼운 게 전부였다.
다만 바늘을 던진 후 바닥에 닿은 봉돌로 광어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한 번씩 챔질을 하면서 바닥을 계속해서 끌고 있는 거였다. 이 같은 낚시 방법에 광어는 여지 없이 걸려들고 있었다.
내가 들고 있던 우럭낚싯대에는 이날 오전 내내 단 한 마리의 우럭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요령을 눈여겨 본 후 광어 전용 낚싯바늘을 하나 빌려서 우럭낚싯대에 매달고는 곧장 우럭 낚시겸 광어낚시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오후 3시간 남짓의 낚시에 앞에서와 같은 풍성한 조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해 경기권의 광어 루어 낚시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고 있다더니, 사람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에 나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떼로 잡은 광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십수 년 전 낚시에 푹 빠져들고 있던 나에게 프로급 낚시꾼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나에게 다양한 물고기가 사는 웅덩이가 있다면 그물을 쳐서 이 웅덩이의 물고기를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잡아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정답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낚시로는 이 웅덩이에 있는 물고기 치어까지도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잡아낼 수 있다고 했다. 낚시는 바로 물고기의 생리에 맞추어 잡아 내기 때문이라는 것.
루어낚시의 기법은 광어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잡는 것이기에 낚시하는 부근에 광어가 있다면 꼼짝없이 걸려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였다. 서해안에 서식하는 광어로서는 대재앙을 만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을 떨어냈다.
잡는 손맛도 짜릿하지만 보다 차지고 오진 것은 예전 민물낚시를 즐겨 다닐 때는 아내가 집으로 고기를 들고 오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비린내 때문이었다. 또 민물고기는 잔가시 등으로 인해 요리를 해먹는 게 단순했다. 매운탕이 고작이었기 때문.
하지만 십수 년 전부터 우럭낚시를 즐기게 되면서부터 아내는 아무리 많은 고기를 잡아가지고 와도 싫은 내색은 하지 않는다. 바다 생선은 회로 먹고 매운탕으로 먹고 구워서 먹는 등 밥상을 풍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내가 생선을 다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다하기에 이젠 낚시를 다녀오면 먼저 쿨러를 들여다보고 많이 잡은 날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배시시 짓곤 한다. 이날도 쿨러가 꽉 찰 만큼 잡은 물고기를 본 아내의 얼굴에는 곧 화색이 도는 것 같다. 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토요일 날 혼자 놀러 갔다고 화가 나 있는 듯 무척이나 싸늘(?)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는 낚시를 즐겼다면 이제는 먹는 맛을 즐길 차례다. 배에서 내렸다지만 마치 배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 '육지멀미'에 시달리면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맛있는 회를 먹기만을 고대하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그 정도 수고는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게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한 시간여 동안 칼질을 한 후에야 이날 잡은 생선 중 가장 큰 60cm급 자연산 광어를 손질해 회로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회로 뜨고 남은 뼈와 나머지 부위로는 맑은 탕을 끓여내니 간만에 식탁이 풍성하다. 중학교 2학년짜리인 큰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짜리인 둘째 아들 등 네 식구가 둘러앉아 접시 가득 썰어 놓은 광어회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둘째 정연이는 "회로 배를 채우겠다"며 공언한 후 실제 이날 눈짐작으로 공깃밥 그릇 이상의 분량을 혼자서 먹어 치우기도 했다. 3kg가 넘는 자연산 광어의 거의 1/4쯤을 혼자 먹어 치운 것이다.
'회'- '초밥'- '매운탕'- '지리탕'- '우럭 아가미 고추장 구이'- 그리고! 다음날인 일요일, 원래 이날은 임진각에서 열리는 6·15통일마라톤대회에 갔어야만 했는데 갑작스럽게 낮 12시경 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약속 시각에 나가기 전부터 손길이 바빠졌다. 냉장고에 생선을 넣어놨다지만 손질을 해 놓지 않았기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손질에 나섰다. 광어 4마리와 우럭 4마리, 그리고 25cm급 놀래미(놀래기)를 먼저 내장을 빼내고 포를 떴다.
포를 뜬 후 양을 가늠해 보니 회로만 먹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양이다. 60cm급에 가까운 꽤 큼지막한 광어 한 마리와 30cm급 우럭 한 마리로는 점심때 먹을 초밥을 만들기 위해 초밥용에 맞춰 회를 썰어 놓았다.
또 4~50cm급 광어 한 마리와 우럭 30cm급 두 마리는 포를 뜬 후 키친타올로 잘 감싼 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문제는 나머지 광어와 우럭, 놀래미(놀래기). 그냥 다듬어서 냉동해 놓고 매운탕으로 먹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생선가스를 만들면 어떨까? 예전 광어로 전을 만들어 본 적 있는데 생각보다는 맛이 없었다. 흰살생선이라고는 하지만 명태전에 비해 살이 퍽퍽하게만 느껴졌기 때문. 하지만 놀래미는 횟감으로는 2% 부족하다지만 생선까스용으로는 제격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포로 뜬 놀래미를 생선가스로 만드는 것은 아내의 몫이었다. 아내는 평소에 아이들이 먹을 밑반찬으로 돈가스를 장만해 냉동실에 넣어 두곤 했었다. 생선가스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 아내는, 돈가스를 만드는 법과 생선가스를 만드는 법이 대동소이 하다며 그거 괜찮겠다며 찬성했다.
아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포로 떠놓은 생선에 소금 등으로 밑간을 하고 부침개로 옷을 입힌 후 빵가루로 마무리해 둔다면 냉동고에 보관하더라도 꽤 장기간 동안 반찬으로 두고 두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내 옆에서 팔을 걷어붙였다.
인터넷으로 생선가스 소스를 만드는 법을 즉석에서 배운 후 마요네즈 등 각종 양념 10여 가지에 여기에 레시피에는 나오지 않는 사과까지 갈아서 넣은 후 맛을 보니 꽤 그럴싸하다.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게끔 유리그릇에 넣고 냉장고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점심은 초밥을 만들어 여느 일식집 초밥에 뒤지지 않는 화려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저녁은 이날 처음으로 만들어본 생선가스로 만찬을 차렸다. 회에다가 매운탕에 생선가스에 혹시 상 다리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우리 집 식탁이 오찬에는 '일식집'으로 만찬에는 '일류 레스토랑'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낚시를 가서 즐기는 '손맛'도 즐겁다지만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제는 아내와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더 즐거운 것 같다. 이날 잡은 생선들이 '오지고 차지게'만 여겨진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아내와 아이들이 즐겁게 먹을 때가 더 즐거우니 그것이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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