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분신했다. 평범한 재단사가 꿈이었던 그가 왜 몸을 던졌나?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대변하기 위함이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근무시간 단축을 위함이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 전태일은 어떤 모습으로 생환해 있을까?
손아람·하종강 외 4인이 쓴 <너는 나다>는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응원하고 있는 책이다. 2010년 88만 원 세대의 저주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욕망하고 있는 오늘날의 전태일들을 만나게 해 준다. 노동현장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이 실은 40년 전의 전태일의 적자들임을 밝힌다.
"왜 재단사의 죽음이 사회적 기억 속에서 40년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 우리가 상속인이기 때문이다. 한 명이 살았던 시간은 시대 뒤로 겸허히 물러나지만 삶과 노동의 조건은 순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그것이 바로 윤회의 사회적 의미다. 전태일은 모든 전태일의 적자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가진 이름이 전태일과 다를 뿐이다." (64쪽) 이 책에 첫머리에는 각기 다른 5인의 전태일이 등장한다. 평택에서 백화점 아르바이트를 꿈꾸고 있는 '스무 살 병아리' 전태일, 부산에서 '극장 안내원' 일을 하고 있는 전태일, 전주에서 CSI 검찰조사관을 꿈꾸고 있는 '고시생' 전태일, 거제에서 선박 배선공으로 일하고 있는 '개 같은 청년' 전태일, 그리고 인천에서 유통업자로 살아가는 '고용주' 전태일이 그들이다.
이들에게 자유와 낭만이 있을까? 뭔가 오를 수 있는 도전과 꿈이 있을까? 뒤편에 등장하는 하종강 교수도 일과 취미가 같은 게 진짜로 좋은 직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전태일들은 그게 결코 같지 않다. 왜일까?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자본주의 사회가 그런 개인화된 사회구조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40년 전 전태일은 사랑은 사치라고 일기장에 썼다. 뿐만 아니라 동심을 버리고 현실에 충실하라고 일갈했다. 사랑이든 이성이든 그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 시대의 사랑은 그에게 사치일 뿐이었다. 헌데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전태일들은 그 당시의 전태일과는 사뭇 다르다. 몸서리치는 사랑에 아파하고 있고, 배신당한 사랑에 울고 웃고, 끝없는 사랑을 찾아 헤매고 다닌다. 사랑할 수 없는 환경과 사랑으로 현실을 이겨내고픈 욕망의 차이일까?
"박태환처럼 수영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이 동네 작은 체육관 수영장에서 평생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면서,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물에 잘 떠서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재밌고 쉽게 가르치는 일을 평생 하며 사는 것도 보람일 수 있는 거거든요. 문제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그 일을 통해서 충분히 살아갈 만큼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183쪽)이게 정답이다. 대학교수만, 의사들만, 법조계 인물들만, 정치인들만, 공무원들만 좋은 환경여건과 고임금을 받는다면 우리는 40년 뒤에도 40년 전의 전태일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우리도 스웨덴과 핀란드와 네덜란드 같은 북유럽의 복지사회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그곳에서는 수영 코치의 월급이 대학교수랑 비슷하고, 벽돌 기술자나 배관 기술자 수입이 의사랑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까닭이다. 더욱이 실업자의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서 생계비를 지급하고, 일정 수준의 교육을 통해 우수한 노동력을 갖춘 노동자로 양성하여 취업의 길을 새롭게 열어주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세금을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 당연히 부자들의 책임이 클 것이다.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지성도 자기 연봉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고 있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바다. 핀란드의 부자들도 자기 소득의 60%를 세금으로 내고 있고, 스웨덴에서는 85%까지 세금으로 낸다고 한다. 볼보의 사장도 그만큼의 세금을 내는 걸 당연시한다고 한다.
이 책은 청년 전태일 40주기 기념일환으로 만든 것이다.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 보이는 창, '철수와 영희'에서 공동으로 기획하여 출판한 책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젊은 전태일들이 겪고 있는 애환을 심각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도전과 저돌적인 사랑을 잃어버린 채 사회체제에 순한 양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전태일들이 남다른 진취적인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 책이 그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