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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흘러가도 기록은 남습니다. 기록은 망각과의 투쟁이며 미래를 보내는 과거로부터의 메시지입니다. 특히 모순과 억압에 찬 사회일수록 진실의 기록이 미래세대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또한 왜곡과 위선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올바른 기억을 위한 진실의 고백서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일제 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사진 왼쪽부터)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하고 있다.
 일제 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사진 왼쪽부터)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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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열렸다. 시민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혈서지원'을 증명하는 일본어신문인 <만주신문(滿洲新聞)> 기사가 실린 '친일인명사전'의 한 부분을 읽고 있다.
 일제 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열렸다. 시민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혈서지원'을 증명하는 일본어신문인 <만주신문(滿洲新聞)> 기사가 실린 '친일인명사전'의 한 부분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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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8일 효창공원의 백범선생 묘소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개최한 때로부터 꼭 일 년이 되었습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경찰의 습격으로 와해된 지 60년 만에 비로소 친일인물들의 행적과 경력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첫 성과가 출간된 것입니다.

반민특위가 중간에 불행한 삶을 마감한 것과 달리 사전은 기필코 만들어졌습니다. 유형무형의 압박 속에서 '일곱 개의 봉인에 갇힌 한국근현대사의 판도라 상자'가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본 것입니다. 이미 한국사회의 기득권을 굳게 장악한 친일의 후계세력들의 구조적 억압 아래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이 가능했던 것은, 오로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의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헌신적인 지지와 동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라는 거대한 배는 그것을 띄우기 위한 눈물의 바다가 있었기에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바다가 여러분들입니다.

사전 편찬, 누리꾼의 댓글과 기금모금 있었기에 가능

일제 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참석자들이 '친일청산','친일타도'가 적힌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일제 시절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참석자들이 '친일청산','친일타도'가 적힌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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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친일인명사전편찬 교수 일만인 지지 서명운동'에서 불씨가 타올라 2001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공식으로 구성됨으로써 사전 편찬의 첫발을 힘차게 디뎠습니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의 단체 인물 기초조사를 위한 예산이 국회에서 전액삭감되면서 좌초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누리꾼을 비롯한 시민 여러분이 나서주셨습니다.

어느 누리꾼의 제안과 열렬한 댓글의 힘으로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 주관한 '친일인명사전편찬 국민의 힘으로'라는 캠페인 아래 자발적인 사전 편찬 기금 모금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 모금운동은 2004년 새해에 태양보다 붉게, 들불보다 힘차게 이 땅을 휩쓸었습니다. 8월까지 예정된 모금액 5억 원을 불과 보름도 되지 않아 초과달성하는 놀라운 기록을 이루며,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푸른 대나무에 역사의 획을 새겼습니다. 어쩌면 친일인명사전은 기록된 내용보다는 그 사전을 만들어 낸 지난한 과정 그 자체의 역사적 의의가 더 크다고 하겠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고도 오랜 기간 유보되어왔던 친일파 숙청을, 강제병합 100주년을 눈앞에 둔 시점에 역사적 청산과 학문적 정리라는 최소한의 절차를 거쳐 일단락 지었다는 사실은 다행입니다. 특히 지난달 국가보훈처는 사전에 등재된 독립유공자 20명에 대해 서훈 취소를 검토 중인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가짜 독립유공자에 대한 역사바로잡기가 시민사회에서 국가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증좌라 하겠습니다. 순국선열을 대하기 부끄러웠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친일인명사전은 한국 민주주의의 전진과 함께했습니다. 먼저 냉전구조의 해체와 사회의 민주화라는 시대적 상황이 40여 년간 지속된 독재정권 하에서 금기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친일문제를 객관화·공론화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더디게나마 사상과 학문,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면서 친일문제에 대한 연구도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민주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누리꾼의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친일인명사전은 한국 민주주의의 소중한 자식이기도 합니다.

<친일인명사전>, 자칭 보수세력 연원 추척에 큰 힘

<친일인명사전>은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실증주의에 대한 실증적 반격의 의미도 지닙니다. 뉴라이트 교과서에서 한국을 빛낸 인물로 찬양하는 다양한 친일군상들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그 행적을 소상히 알지 못한 까닭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전은 그들의 행적을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서술함으로써 뉴라이트의 이념형 인간형이 언제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변신한 카멜레온같은 속성을 지닌 인물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나아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앞세우며 과거로 회귀하는 자칭 보수세력의 연원을 추적하는 데도 사전은 사실의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이 만들어 나가는 모습대로 국가는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소수의 손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너무나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사전은 자주민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훼손한 자들이 정작 대한민국의 정체성 또는 정통성을 내세우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신경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에서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 받아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기록한 <친일인명사전> 내용을 시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신경군관학교 2기생 예과 졸업식에서 우등상을 받고 부상으로 부의 황제 명의의 금시계를 하사 받아 대열 앞에서 생도 대표로 인사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기록한 <친일인명사전> 내용을 시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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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색하게 박정희, 장지연 등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사들의 후손들에 의해 소송도 6개 이상 진행되었습니다. 사전에 실릴 것을 꺼리고 조상을 방어하는 것은 후손의 의무나 권리일 수 있기에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명백한 역사의 진실 앞에서 한층 성숙한 역사 인식을 갖고 대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에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정답은 사법적 재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내면의 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후 많은 시민들이 적지 않은 가격임에도 직접 구입해주셨습니다. 출판계의 "500부 이상 팔리기 힘들 것"이라는 예단을 무색하게 3850부(기증 200부)가 팔렸고, 3쇄까지 나왔습니다(11월 초 현재). 인명사전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개인구매가 많다는 것은 사전의 효용성 외에도 이 사전을 구매하는 것이 또 하나의 역사운동이라는 시민들의 놀라운 자각과 역사적 책무 의식의 발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구조적 난관 불구, 사전은 계속 보급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바늘구멍의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이러한 구조적 난관에도 사전은 보급되고 있습니다. 보급이 운동의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인터넷포털 <다음>의 카페 '세계아고라정의포럼' 회원은 물론 많은 분들이 공개·비공개로 사전을 여러 권 구매해 국내외로 무료 배포하는 눈물겨운 현실이 있습니다. 이 '망조가 든 나라'가 아직도 미래에 희망이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이름 없는 분들의 분투노력 때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전히 사전은 감동과 눈물의 파문을 던지며 우리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친일인명사전은 증오와 갈등의 산실이 아닙니다. 이제껏 수많은 사전이 발간되었지만 자신의 부끄러운 역사를 고백하는 사전은 오직 이것 하나라고 감히 추정합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지배 아래 우리 내부에도 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 동조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조한 부끄러운 역사가 있음을 과감히 고백하는 성찰의 산실입니다. 그리하여 여전히 과거의 범죄를 반성하기는커녕 이를 왜곡·미화하는 일본에 대해서도 진정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과거를 용기있게 대면함으로써 미래의 올바른 가치를 세우자는 생산적 작업이 사전 편찬이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어야 할 필요성은 어쩌면 대부분 죽어 사라진 그들 때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상식의 사전조차 나오는 것을 반대, 방해, 탄압하는 이 모순된 대한민국의 현실에 사전이 나와야 하는 역사적 당위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전은 세상에 나왔고 그 친일의 역사를 어떻게 대면하고 성숙된 역사인식으로 이를 해석·수용할 것인가는 우리와 미래 세대의 몫입니다.

"이제는 역사관 건립이다"

이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를 이론적·역사적으로 해명하는 ▲총론편과 ▲자료편도 준비 중입니다. 또 미흡했다고 지적받았던 지방과 해외의 조사연구를 확충해 ▲친일인명사전 보유편과 ▲수정증보판도 발간할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식민통치기구사전>,<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편, 해외편)> 등 식민시기의 인물과 조직에 대한 종합적인 사전 편찬사업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각각의 사업은 <친일연구총서>라는 거질의 사업으로 종료될 것입니다.

여전히 현실은 밝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제국주의의 억압과 수탈 대신 근대화 역량 축적기로 파악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자체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집단적으로 제기하는 실정입니다. 국치100년을 맞아 신식민사학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는 20여 년 가까이 수집한 방대한 일제강점기의 실물 자료와 유물 등을 전시하고 시민과 학생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일제식민지 지배의 실상을 낱낱이 알릴 수 있는 역사관을 건립하고자 합니다. 정말 식민지 시대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다시는 그러한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과거로부터의 메시지를, 그 눈물과 고난으로 얼룩진 당대의 유물을 보여줄 역사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박한용 기자는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



태그:#친일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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