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서울 정상회의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전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을 받으며, 처음으로 개도국에서 개최되는 이번 G20 정상회의는 '환율'과 '국제금융기구 개혁' 외에도 우리나라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발' 등 서울 이니셔티브의 구체적인 성과 도출을 위해 청와대를 비롯한 많은 정부기관에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보조를 맞춰, 기업과 언론, 연구소 또한 G20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잔칫집 분위기를 내는데 한 몫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반면, G20의 의미와 논의 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와 경실련에서는 앞으로 6회에 걸쳐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본 G20의 의미와 논의 의제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편집자말] |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이 G20의 최고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 경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경상수지 목표제' 도입과 '시장결정적 환율제도 이행' 등의 합의를 통해 환율 갈등을 봉합했다고 주장했다. '경주 대타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일부 언론은 정부의 활약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본과 캐나다의 외환 개입 가능성 발언이 이어졌다. 지난 10월 26일, 마크 카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의회에서 "만약 필요하다면 (심각한 외환시장)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선택을 고려하겠다"며 외환 개입 가능성을 내보였고,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은 "필요할 경우 시장에서 단호하게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구두개입성 발언을 했다.
경주대타협? 갈등은 전혀 봉합되지 않았다이어 11월 3일 미국의 6000억 달러 양적완화 조치가 현실화되면서 지난 경주 합의가 헛된 노력이었음이 드러났다. 미국의 양적 완화 발표 직후 '달러 홍수' 우려로 원화는 물론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등 주요국 환율이 급등했다. 유가와 금값, 원자재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양적 완화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달러 자금이 미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제 원자재 시장과 신흥국 증시에 유입돼 자산 가격과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환율 전쟁은 봉합되기보다 오히려 갈등의 폭을 키우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조치에 대해 먼저 중국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샤빈(夏斌) 중국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은 "미국의 양적 완화정책은 회복세를 보이는 글로벌 경제에 가장 큰 위험요인"이라며 "달러와 같은 주요 기축통화의 발행에 제한이 없다면 새로운 금융위기 발생은 필연적"이라고 경고했다.
서울 G20 회의의 중국측 교섭대표 추이텐카이 외교부 부부장도 서울회의를 미국 성토의 장(場)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해 중국과 세계가 우려하고 있어 미국의 즉각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은 "2차 양적 완화 조치는 미국 경제상황만 놓고 볼 때는 이해할 만하지만 다른 국가들에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며 "개도국들은 핫머니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 브라질 등도 이 같은 중국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8일 발간되는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미 FRB의) 추가 완화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있다"며 "이는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합리적인 균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미국 금융정책의 신뢰성을 훼손 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중국의 환율 조작을 탓하고 난 후 자국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인위적으로 달러 환율을 낮추는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또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과 관련, "환율 문제와 싸우기 위해 서울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말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진행 중인 '환율 전쟁(currency war)'이 브라질의 수출 부문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인한) 브라질 수출품의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환율 문제가 국제적인 갈등으로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008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해왔던 달러화가 더 이상 그런 지위를 유지해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떠난다"고 밝히며 달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도 2008년 10월 말 모스크바에서 만나 국제통화의 다양화를 주장한 바 있다.
심지어 2008년 12월 29일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서 열린 걸프협력협의회(GCC, Gulf Cooperation Council) 정상회담은 오만을 제외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제안한 6개국(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오만·바레인·카타르·UAE) 화폐 통합 제안에 찬성, 걸프중앙은행 창설안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 회담 결과로 GCC 단일통화가 성공한다면 1999년 유로통화 출범 이후 두 번째로 지역통화 통합 성공사례가 되며, 이는 제3, 제4의 지역화폐 통합 도미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됐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무역대금 결제를 미국 달러 대신 상호자국통화로 처리하며 남미지역 단일통화인 메르코수르 창설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세계 기축통화, 달러의 위기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 창설돼 미국의 브레튼우즈에서 금본위제에 기반을 둔 고정환율 체제가 출범하면서 세계 각국 간 환율은 자국통화의 대미 달러 환율에 의해 결정됐으며, 이후로 달러는 세계 각국 통화의 기축통화가 됐다.
이렇게 탄생한 미국의 통화 패권은 절대 권력과도 같은 영향력을 끼쳤다. 막강한 경제력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 이상을 책임졌고, '월스트리트'는 역사상 가장 견고하다는 평가를 받는 '금융 권력'을 창출해 냈다. '언제든, 원하는 만큼 찍어낼 수 있는' 달러화의 위력,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구를 통해 그 위력은 배가 되었다.
물론 그간 미국 패권에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해 달러를 마구 찍어내던 1960년대 후반,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중앙은행에 달러를 금으로 바꿔서 보유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은 금 태환(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것)을 중지하고 변동환율제로의 변경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이른바 '닉슨 쇼크' 이후 달러화는 강세에서 급격한 약세로 돌아섰고, 이런 상황이 7년여에 걸쳐 이어지면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미국은 수출 경쟁력을 회복했다.
이어 주요 선진 5개국(G5)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는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다시금 달러화 약세 유도를 결정한다. 성과는 곧바로 나타나 달러화는 무려 9년 7개월간 약세가 지속되면서 엔화에 대한 가치는 3분의 1, 마르크화에 대해서는 절반 수준까지 각각 떨어진다. 덕분에 미국 경제는 호황을 구가하고 세계 통화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한다.
그러나 달러화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수출주도 성장을 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로 흘러 들어가고, 아시아 국가들은 그 달러화로 외환보유고 확대를 위해 미국 재무부 채권을 매입하여 미국의 재정 적자를 보전해 주는 순환구조를 통해 유지되고 있던 글로벌 불균형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의 재정적자를 크게 악화 시키며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달러화가 직면한 상황은 트리핀(Triffin)이 1960년 브레튼 우즈 체제의 내적 모순으로 지적한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와 정확히 일치한다. 트리핀은 국제적인 기축통화로서 특정 단일 국가의 통화를 사용하는 체제가 부딪힌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기축통화국은 국제유동성을 제공하기 위해 국제수지의 적자를 지속해야 하는데, 이 적자는 기축통화에 대란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긴축정책으로 유동성을 흡수하면 경제침체를 낳게 되어 통화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한계이러한 달러 중심의 세계 통화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 이명박 정부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안전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일단 정부의 이런 노력의 결과는 IMF 대출제도 개선으로 나타났다. 펀더멘털이 우수하지만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가에 별도의 조건 없이 지원하는 탄력대출제도(FCL, Flexible Credit Line)는 2009년 3월 도입됐지만, IMF 자금 대출에 따른 낙인 효과를 우려한 탓에 실적이 저조했던 제도였다. 이를 대출한도 폐지와 함께 6개월에서 1년으로 인출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개선했다. 또한 FCL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건전한 정책을 수행하는 국가 가운데 예방적 유동성을 희망하는 곳에 국가별 쿼터의 1000%를 6개월 기한으로 지원하는 예방대출제도(PCL, Precautionary Credit Line)를 도입했다.
정부는 서울정상회의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제2단계 금융안전망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가칭 다국탄력대출제도(MCFCL, Multi-Country FCL) 도입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FCL 개선 및 PCL 도입 방안이 IMF와 한 국가간의 양자적 개념이라면, MCFCL은 금융위기 '전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다자적 개념의 '집단대출제도' 도입이다. 지금처럼 글로벌한 시스템 속에서 금융위기가 한 국가에서 발생하더라도 그 위기는 빠른 시간 내에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파급효과를 미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수 있도록 말 그대로 예방 차원의 금융안전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금융위기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발생한다. 자국의 유동성 위기에 대처하기도 어려운데 다른 국가에 자금을 빌려줄 여유가 있는 국가가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또한 독일이 반대하는 이유처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도 이 같은 제도의 한계로 평가된다.
IMF의 신용공여 제도 개선 이외에도 정부는 국가간 통화스왑을 확대하여, ECB의 VSTF, 비엔나 이니셔티브,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 체제(CMIM)와 같은 역내통화협정을 통해 외환보유액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금융위기 발생에 대해 이중 삼중의 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간 통화스왑의 경우, 외환보유액이 많은 국가일수록 통화스왑 체결이 용이했다는 점에서 평상시 외환보유액을 축적하려는 유인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국가간의 외환보유 경쟁을 촉발시켜 위기를 조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닥칠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내통화협정 역시 상설화할 경우, 국가신인도가 낮고 지분율이 낮은 국가에 대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지역통합 통화의 필요성 대두환율 문제는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통화의 개수가 2개 이상인 다음에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와 같은 전문가는 새로운 세계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IMF나 UN과 같은 국제기구의 관리 하에 세계 기축통화를 새로 만들어 환율차이로 인한 외환문제를 일거에 제거하자고 주장했다. 스트라우스-칸 IMF 총재 역시 달러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축통화 논의가 충분히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며 수개월 이내에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인 주장은 현실 적용 가능성을 고려할 때, 매우 이상적인 주장이다. 현재의 국제통화체제에 큰 충격이 온다고 하더라도 달러화가 일순간에 다른 통화에 의해 대체되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전망은 비현실적이다. 미국 경제는 2차대전 직후의 압도적 경제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여전히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며, 달러화가 가진 국제통화로서의 기반을 고려하면 달러화는 상당 기간 그 역할을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통화 개혁 시나리오는 '지역통합 통화'이다. 지역통합 통화로 가장 유력시되는 것이 유로화와 위안화다. 이미 유로화는 27개 EU회원국 중 16개국이 유로화를 사용하며 그 인원수만도 3억 3000만 명에 달한다. 유로를 실질적인 지정 통화로 사용하고 있는 몬테네그로와 코소보, 유로에 환율이 고정된 유로 페그제를 실시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까지 합치면 유로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인구는 5억명에 달한다. 유로 표시채권은 6조 달러어치가 발행돼 전세계 채권발행규모의 48%를 차지한다. 달러 표시채권 발행액은 4조 달러 수준으로 오히려 유로화보다 적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 중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 1999년 17.9%였던 것이 2008년에는 28%에 다다랐다.
유로화에 이어 아시아의 단일 통화를 위해 위안화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이미 미셸 아글리에타 파리 10대학 교수는 "아시아 지역도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면서 유럽, 북미와 함께 삼국 체제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학 교수는 "한·중·일 3개국 공동 통화를 만들어 아시아의 축을 형성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통해 아시아 단일 통화에 대한 긍정적인 예상을 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말, 2조 달러에 가까운 세계 최대 규모의 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아시아에서의 외환위기 재발을 방지하고 아시아 회원국에 미치는 자본 도피와 금융 교란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중국이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2008년 하반기,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로 한국·중국·일본 3국이 공동으로 800억 달러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으며, 2009년에는 한·중·일 3국에 아세안(ASEAN) 10개 국이 추가로 참여해 총 1200억 달러 기금을 마련하기로 한 사실은 그만큼 중국 당국이 위안화의 국제화에 열의를 내고 있음을 드러낸다.
중국은 1996년, IMF 8조국에 가입했는데 이로써 위안화의 국제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2006년 세계무역기구 가입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위안화의 국제화에 큰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중국의 자본계정이 아직 완전 자유화되지 않았으며, 자유태환 없이는 위안화의 국제화, 즉 기축통화로 발전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아직 일본의 엔화 또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단일통화 도입은 당장 도입하기에 현실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시아 단일통화 도입을 위한 준비작업따라서 첫째, 역내 환율안정을 제도화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 방편으로 아시아 환율체계(ARM, Asian Exchange Rate Mechanism)의 도입가능성 및 도입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내 환율안정을 위한 협조개입 제도의 전형적인 예로는 유럽이 공동통화로 넘어가기 전에 과도기적인 단계로 운용되었던 유럽환율체계(ERM, European Exchange Rate Mechanism)를 들 수 있다.
ARM은 ERM에서와 같이 기준 환율을 중심으로 일정한 밴드폭 이내에서 회원국의 환율변동을 허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때 중요한 과제가 기준이 되는 통화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와 밴드의 폭을 얼마로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준이 되는 통화, 즉 기준통화(anchor currency)에 관해서는 특정국가의 통화를 사용하는 방안과 달러 유로 엔으로 구성된 통화바스켓을 사용하는 방안 및 역내무역구조 등을 가중치로 한 역내 통화바스켓을 기초로 한 아시아통화단위(ACU, Asian Currency Unit)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밴드의 폭도 처음에는 역내 경제여건에 맞게 다소 신축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유사시에 궁극적으로 뒷받침하게 될 역내 최종대부자 및 감시기구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로, 태국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1997년 9월 홍콩에서 개최되었던 IMF 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일본에 의해서 제안되었던 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을 설립하자는 안도 검토될 만하다.
AMF의 설립 주장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역내 특정국가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는 등 긴급한 경우에 역내 환율안정을 위하여 긴급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중국 등 특정한 국가가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동아시아 역내에 상존하는 현실적인 정치사회적 장벽을 고려해 볼 때 특정국가의 중앙은행보다 유럽의 유럽통화협력기금(EMCF, European Monetary Cooperation Fund)과 같은 지역통화기금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물론 IMF가 위기시 긴급자금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지만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시에 경험한 바와 같이 기존의 IMF 만으로는 자금지원규모면에서 지역외환위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족하므로 이를 보조하기 위한 지역통화기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대체로 외환위기는 위기의 전염효과 등으로 지역적으로 발생하므로 지역내 특정국가의 외환위기의 발생과 지역내 다른 국가로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지역단위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동아시아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고려해 볼 때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외환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기구 설립의 타당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CMI 다자화 합의는 AMF와 같은 역내 최종대부자 기구 설립에 한걸음 다가섰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최종대부자에 의해서 긴급 유동성이 필요한 나라에 유효하게, 그리고 수여국의 도덕적 해이 없이 효율적으로 공급되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역경제와 자본흐름을 감시하는 역할과 최종대부자 기능을 실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권한도 동 최종대부자에게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면 장기적으로 아시아 통화 통합문제를 검토할 수 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반성과 양보가 절실하다지금까지 G20에서 논의되었던 임시 처방식의 각국 정상간 합의는 환율 갈등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특히 다른 나라에는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근린궁핍화 정책도 마다하지 않는 미국은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할 필요성이 높다. 많은 국가의 정상들이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미국을 성토할 것이라는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 기축통화로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일국 중심의 통화체계에서 벗어나, 유로화에 이어 아시아 단일통화, GCC 단일통화, 남미지역 단일통화 등 지역별로 다자화된 통화체계 구축을 통해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조성하고, 세계 단일통화체제로 나아갈 수 있는 시발점을 만드는 논의가 서울 정상회의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금융세계화와 미국, 백창재, 2006
달러 위기론과 국제통화질서의 현 주소, 유승경, 2009
중국 위안화의 기축통화 가능성, 박번순, 2009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기축통화논쟁과 동아시아의 선택, 오정근, 2009
1985년 플라자 합의의 이행과정과 시사점, 한국은행, 2010
시스템 위험 관리를 위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최공필,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