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라피티 첫 작품은 완벽했다. 굳이 자평하자면 100점 만점이다."
농담이 아니었다. 구속 직전까지 갔을 때는 마음 졸이기도 했다지만, 그는 지금의 상황을 되레 즐기는 듯했다.
G20을 앞두고 온 국민에게 고품격의 국격을 강요하는 정부에 '똥침'을 날린 대학강사 박 아무개(40)씨. 그는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롯데백화점 인근에서 G20 공식 포스터에 쥐 형상을 그려넣었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그의 행동보다 그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 손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경찰의 경직된 대응이 국격을 떨어뜨렸다고 조롱했다. 결국 그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 있는 그라피티그로부터 1주일 후인 8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 그가 밝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G20, 그리고 인권 침해에 대한 긴급 토론회' 패널로 참석하기 위해서다. 사건이 발생한 뒤 언론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시간여 동안 토론을 마친 그를 잠시 만나 최근의 소회 등을 물었다.
"그라피티 아트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 있는 예술행위다.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영역을 좀 더 넓히는 게 그 취지다. 즉, 사법적 논리와 충돌하면서 풍자와 유머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다. 제 첫 작품이기도 한 이번 그림은 예술 작품 자체로서는 좀 미달되지만, 사회적 파장과 효과 등을 놓고 볼 때 완벽했다. 그라피티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는데 그에 대한 홍보효과도 만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기도 한데, 그라피티 아트를 설명해달라."원래는 낙서다. 힙합 문화의 일종이기도 하고 팝 아트라고 할 수 있다. 힙합에서는 공공의 장소에 스프레이로 글씨나 그림을 그린다. 그라피티 아트는 평화나 빈곤 문제, 자본주의 과소비의 문제, 환경 문제 등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아서 형상화한다. 영국의 길거리 작가 뱅크시가 유명한 데, 그 역시 쥐 형상을 많이 그렸다. 나는 그에게 영향을 받았고, 이번 작품도 거기에 착안한 것이다."
그는 이어 "공공미술도 그라피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가령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은 전철역 등에 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자발성과 저항정신이 빠진 관변화된 그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위클리 수유너머'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1년에 두 번, 20개 회원국이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행사를 두고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까 생각했다"며 "70년대 국가행사 총동원령 같은 유치한 생각이 들었고 이를 그라피티를 통해 풍자한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 취지를 설명했다.
'쥐 형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재물손괴 혐의가 적용됐는데, 예상했나?
"그라피티에 적용되는 단골메뉴다."
- 검찰이 문제를 삼은 부분은 무엇인가? "영장실질 심사 때 검사가 인상적이었다. 나의 작품이 왜 처벌 대상인지에 대해 단호하게 설명했다. 정부 측의 논리를 정확하게 대변했다고 본다. 그는 논리적이고 유창한 언변으로 전 국민이 잘 치르기를 갈망하고 있는 G20 행사의 포스터를 훼손한 것은 국가의 품격에 도전하는 일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또 이것은 예술적 행위가 아니라 조직적인 정치 행위이고 그 배후가 의심된다는 말도 했다. 순수 예술이라고 설명하는 내게 '그것은 검찰을 조롱하는 것이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대단한 분이다."
- 혹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쥐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묻지 않던가?"감히 그러지는 못하더라(웃음). 조서에 나오면 좀 그렇지 않은가."
- 그래도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쥐'를 그린 것은 아닌가?"국문학을 전공했기에 전통민중예술에서 나오는 언어유희 정신에 익숙하고 개그를 좋아한다. G라는 것에서 자연스레 '쥐'를 떠올린 것이다. 물론 내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즉 특정인에 대한 연상에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설령 그런 연상을 했다고 해도 그건 배경에 불과하다."
그는 특히 "그라피티 예술에서 항상 논란이 되고, 나에게도 적용된 재물 손괴 혐의는 사실상 재물을 파괴했을 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포스터는 정부의 소유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그 위에 그린 쥐의 형상은 나에게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경찰이 함부로 손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웃기도 했다.
그는 또 "인터넷 상의 여러 댓글 중에 '뭐, 그 나이에 새벽 한시가 넘어서 그런 작업을 벌이고 있냐'고 조롱하는 것을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였다"면서 "하지만 이 나이 먹으니까 비로소 이런 예술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은 거대하고 파괴적인 그라피티"그에게 최근 현안과 관련해서 그라피티로 풍자하고 싶은 대상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장애인 활동가, 외국인 노동자 등 한국 사회 내부에 있는 소수자들을 위한 작품을 하고 싶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주의가 강하고, 정상적인 삶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풍자하고 싶다. 기존 관념과 문화를 느슨하게 하는 작업이다. 사실 현 정부를 풍자하는 것은 너무 쉽다. 인터넷에서 많은 누리꾼들이 하고 있고."그에게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그라피티 예술로 '승화'시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최근 4대강 사업 공사현장인 낙동강에 가봤는데 거대한 공공미술이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산 중턱을 '바리깡'으로 밀듯이 깎아 자전거도로를 냈던데 자전거를 타고 거길 오를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책상머리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4대강 사업 사진홍보용으로 자연을 훼손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4대강 사업이야말로 국가가 진행하는 아주 거대하고 파괴적인 그라피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경찰과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그의 예술행위가 우리나라의 국격을 실추시켰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정부 중요 행사의 포스터를 감히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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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용되는 것이 탐탁지 않다. 메이지 유신 때도 '민도'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국가의 품격을 논하는 것은 낡은 근대의 유산이다. 거기에 국가가 대체 얼마짜리인가라는 천박한 경제논리가 추가됐다. 오히려 유머와 풍자와 자유정신이 가미된 인격의 크기라는 말을 사용했으면 좋겠다. 이번 일로 나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한 수사기관의 인격은 쫀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