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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 - 조을영
 
 
42. 기억의 섬
 
안내원이 소릴 지르자 군중들은 일제히 신난 듯이 그녀의 편을 들며 '흰갈매기'를 더욱 야유하기 시작했다. 다수에게 인정 받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그녀의 직업 의식과 맞물려서 이제 그녀는 더욱 득의 양양해서 고함을 지르더니 무대 위로 진입을 했었다.
 
하지만 아랑곳 없이 흰갈매기는 흰꽃이 핀 화분을 높이 치켜들고 탱고를 추기 시작했다. 그가 추는 춤이 반도네온의 아련한 멜로디 속으로 젖어들 쯤 우리 모두는 바다 한가운데로조금씩 배를 저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배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해 여름 방학, 나는 그런 배를 타고 그 시간의 속도 보다 느리게 조금씩 노를 저어서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내가 향하는 지점은 바다에 우뚝 솟은 보일듯 말듯한 작은 섬이었다. 이마에 땀이 솟는걸 느낀 순간, 내가 왜 이 배에 올랐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자, 아마도 누군가가 내 등을 떠다밀며 '너는 여기가 너 자리야!쉬지 말고 가란 말야!'하면서 윽박질렀는지도 모를일이라고 스스로 결론지어 버렸었다.
 
나는 조금의 불평도 없이 그렇게 열심히 노를 저었다. 이따금 희미한 바람이 배를 조금씩 밀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해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그 가운데 이상한 사실도 한가지 발견했다. 그 섬은 내가 노를 젓는 속도와 비례하여 앞으로 함께 전진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내가 그 섬에 당도할 일은 절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한없이 멀고 아득한 그 풍경을 보다 지쳐버린 나는 노를 놔 버리고  푸른 해원을 향해 유유히 날고 있는 흰갈매기 한 마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지독히도 요란하게 휴대폰 벨이 울리지만 않았어도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조제는 모카 자바가 담긴 컵에 코를 박고는 킁킁 거리고 있었다.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며 창밖으로 눈을 돌려보았을때 기차가 황급히 철길을 가르며 눈 앞을 스쳐지나갔고 기적소리 처럼 휴대폰 벨소리가 내 귀로 쑥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날 밤 클럽 멘도사에서 울리던 그 휴대폰 벨 소리는  깊고 깊은 숲에 누군가가 잃어버리고 간 휴대폰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느껴졌었다. 어느 오래된 고목의 둥치 위에서 누군가에게 간절히 애원하듯이 울리기 시작한 그 소리에 사람들은 서로가 얼굴을 마주 본 채로 알수 없는 불안감을 흘리기 시작했다.
 
"빨리 돌아가."
 
내가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을때 지하의 어느 깊은 곳에서 겨우 끌어올린 것 같은 목소리로 오빠는 수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너, 거기 오래 있다간 다시 빠져나갈 수가 없어."
 
내가 전화를 받고 있을 동안 안내원은 뚱하게 쳐다보더니 뭐냐고 묻기 시작했고, 다들  휴대폰과 나를 번갈아쳐다보며 웅성거렸다. 나를 지켜보며 탱고를 추던 흰갈매기는 탱고의 도약 부분에서 멜레나를 손으로 불러냈다. 계속 춤을 추는 동안 그의 눈빛은 멜레나를 향해 어서 나오라는 눈짓을 보이고 있었고, 짐짓 짜증나는 표정으로 멜레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꼬맹이와 눈이 마주쳤고, 잡고 있던 멜레나의 치맛자락을 서서히 놓으며 꼬맹이는 그녀를 무대 앞으로 떠밀었다. 이후 꼬맹이는 내 쪽을 돌아보더니 가만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지하 창고에서 그 남자는 길을 잃었어. 맞지? 거긴 페르도의 작업장과도 연결된 곳이니까 생각하기 따라선 굉장한 모험도 될거야. 하지만 넌 거기 가선 안돼."
 
 
<계속>


#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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