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DNA를 품고 있는 태아(종편)를 이대로 태어나게 할 건가?" (양문석 방통위원)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더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묵살할 수 없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국민보다는 조중동 등 종편 준비 언론사들의 시선이 더 따가웠던 것일까?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과 언론시민단체의 마지막 경고는 끝내 통하지 않았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방통위)는 10일 오전 전체회의에서 종합편성(종편) 및 보도전문 채널 사업자 승인 세부심사기준을 확정하고 바로 사업자 선정 공고에 들어갔다.
지난주 종편 선정 논의를 거부하며 퇴장한 이경자 부위원장에 이어 같은 야당 추천 양문석 위원도 이날 사업자 선정 일정을 헌법재판소 부작위 소송 결정이 예상되는 2주 뒤로 미루자는 마지막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세부심사기준 의결 직후 퇴장했다.
결국 야당 위원 2명이 모두 빠진 상태에서 최시중 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추천 위원 3명이 사업자 선정 및 심사 일정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오는 12일 예비 사업자 대상 설명회에 이어 오는 30일과 12월 1일 신청 서류를 접수하는 등 연내 선정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미디어행동 "종편 선정은 위법... 역사적 심판 받을 것"
야당과 언론시민단체에선 지난해 7월 국회 미디어 관련법 여당 단독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재투표, 대리투표 등 절차상 위법성을 들어 종편 선정 중단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특히 민주당 등 야당은 국회에서 미디어 관련법을 재논의하라는 헌재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며 국회의장을 상대로 부작위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전날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종편 도입 왜 중단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긴급토론회까지 열었던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아래 미디어행동)'은 이날 오전 10시 방통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편 선정 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조준상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헌재는 지난해 날치기 처리된 미디어 관련 법에 대해 단 한 번도 유효하다고 한 적이 없다"면서 "헌재가 결정을 미룰 순 있겠지만 이런 견해를 뒤집을 가능성은 0에 가깝기 때문에 (여당 상임위원) 세 사람은 반드시 감옥에 가게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역시 "종편 사업자를 선정하면 모든 방송이 선정적, 상업적 방송으로 전락하고 자본 논리와 조중동 이익만 판치게 될 것"이라면서 "선정 강행 시 국민의 힘으로 종편 사업자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양문석 "방통위원도 모르는 걸 청와대에서 먼저 알아"
양문석 위원도 '청와대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시민단체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양 위원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양유석 청와대 방송정보통신비서관을 직접 거론하며 "양 비서관이 심사결과 발표 이후 모든 사업계획서와 점수를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방통위 상임위원도 알지 못하는 내용을 청와대에 먼저 보고한 것 아니냐"고 사무국에 따졌다.
양 위원은 "5인 상임위원 (비공개) 워크숍에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 청와대에서 나오고 워크숍 발언 내용이 사업자에게서 나오고 있다"면서 보안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김준상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상임위원에게 사전 보고 안 한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한 적 없다"면서 "비공식적인 논의가 청와대, 국회 등에서 먼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양 위원은 "청와대 담당 비서관이 방통위원에 앞서 얘기해, 지금까지 그 사람에 의해 조정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묻는 것"이라며 종편 선정 과정에서 청와대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양 위원이 김대희 방통위 기획조정실장에게 거듭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당 추천 형태근 상임위원이 "실장이 답변할 수 없는 건 답변 말라"며 끼어들어 두 위원 간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2주만 더" 야당 위원 퇴장... 여당 위원들, 단독 의결
양 위원은 이어 신상발언에서 "방송정책전문가로서 종편은 KBS 수신료, 홈쇼핑, 미디어렙 문제 등이 해소된 뒤 선정하는 게 순서"라면서 "일단 애를 낳으면 어떻게 되겠지 식으로 무책임한 부모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어 "헌재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도 뱃속 아이가 가진 치명적 DNA 문제 때문"이라면서 "헌재 결정까지 2주 정도만 더 기다려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하지만 여당쪽 위원들은 단호했다. 형태근 위원은 "11월 30일부터 사업계획서 접수를 받겠다는 건 그만큼 시장 기대가 있는 것이고, 법규가 있는데 행정위원회가 안 하면 직무유기"라고 반박했다.
송도균 위원 역시 "사무국이 제시한 일정대로 안 하면 금년 안 선정에 차질이 있어 더 늦출 일 아니다"라면서 "사무국 일정이 불가피하고 적정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최시중 위원장은 "그동안 광범위한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고 의견을 집약해 안을 마련했고 지금은 현실적인 일정을 다루는 일"이라면서 "헌재 판단은 상당히 기다렸고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묵살할 수 없다"고 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에 양 위원은 "내 마지노선이 심의기준 의결까지였기 때문에 3대 1 구성이면 나 또한 이 자리에 앉아 있기 힘들다"며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이에 최 위원장이 "그냥 앉아 있으라, 다수결로 하면 된다"고 만류했지만 양 위원은 끝내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한편 이날 오후 4시에는 KBS 이사회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수신료 인상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임순혜 미디어기독연대 공동대표는 "KBS 수신료 인상은 결국 '조중동 방송' 재원 마련을 위한 것"이라면서 "오늘 종편 선정 일정 확정에 이어 수신료 인상까지 한꺼번에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며 언론시민단체 차원에서 적극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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