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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에 세워져 있는 전태일 동상
청계천에 세워져 있는 전태일 동상 ⓒ 영화 '어머니' 제작위원회

지난 6일 토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토요일에 만난 사람'이란 코너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며'라는 제목으로 두 사람을 초대했다.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씨와 친구 김영문씨였다. 13일이 전태일이 '근로 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지 꼭 40주년 되는 해이기에 마련한 코너였다. 제작진의 배려가 다사로웠지만, 시간에 쫓겨 앞부분만 듣고 허겁지겁 출근했다.

대한민국의 많은 3040들에게 전태일은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이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열악한 노동 현실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70~80년대 수많은 젊은이들이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3040 중 한 명인 나는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고등학교 때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강의실에서 단 한 번 들어보았을 뿐이었고, 언젠가 학회실에 <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이 놓여있는 모습을 본 것이 전부였다. 역사를 전공했어도 현대사를 전혀 배우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기에, 나는 그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이런 내게 '전태일 열사'를 알려준 건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었다. 수업 시간에 나오고 수능 시험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기에 난 전태일을 알아야 했고 그에 대해 학생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전태일을 잘 몰랐던 선생과 전태일을 '공부'한 학생들

수능이 며칠 남지 않은 요즘 나는 고3 수업 시간에 사실상 개인 과외(?)를 한다. 근현대사 진도는 10월 초에 이미 다 끝냈고 지금은 사탐 선택과목 중 한국 근현대사를 택한 학생들과 함께 기출문제를 풀며 정리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해당 과목을 선택한 학생도 적고, 혼자서 정리하기를 원하는 학생도 많아서 반별로 거의 한두 명의 학생과 나란히 앉아서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에게 전태일을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근현대사를 선택한 학생들은 모두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노동 운동 하다가 분신한 사람이요."
"공장에서 일하다가 노동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그거 바꾸려고 하다가 안 돼서 분신자살한 분이요."

그가 분신한 시기가 1970년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학생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거의 그 정도였다. 사실, 수능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로 충분하다. 현대사 중에서 노동운동과 관련해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내용은 유신 몰락의 한 계기가 되었던 1979년의 'YH 무역 여성 노동자 신민당사 농성 사건'과 사회에 노동 문제를 알린 1970년의 '전태일 분신 사건'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 사건에 대한 느낌이 어떠냐고 묻자 몇몇 학생이 대단한 사람,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상당수의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근현대사의 여러 사건과 의의 등등을 달달 외우는데 급급해 별 감정을 못 느껴 보았다"고…. 어쨌든 고3 지도 교사의 직업적 특성상 마지막 마무리는 이렇게 했다.

"그래, 잘 알아둬. 올해는 우리가 일본한테 병합된 지 100주년 되는 해이고, 기억하지? 6·25 전쟁도 60주년 되는 해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것도 100주년 되는 해고. 이토 히로부미를 쏜 건 1909년이지만, 순국하신 건 1910년이거든. 작년에 안중근 의사 문제가 나왔지만 올해도 혹시 몰라. 그리고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신 사건도 40주기 되는 해야. 관련 문제 나올 수 있거든. 이 내용들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꼭 기억해 둬."

"자기 목숨 던져가며 한 일인데... 달라진 게 없잖아요"

'한국 근현대사'는 많은 학교에서 3학년 때 배우는 과목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직 근현대사를 배우지 않은 1, 2학년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대부분이 모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전태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물론 모른다고 대답한 학생들도 많았다. 전태일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사회문화 시간에 수행평가로 선택해서 읽을 책 중에 <전태일 평전>이 있었어요. 전 그 책을 읽고 수행평가를 했거든요. 그래서 알고 있어요."
"사회 시간에 전태일에 대해서 배웠어요. 그래서 알아요."
"아, 아침에 아버지랑 라디오 들으면서 학교 오는데, 라디오에서 그 분 여동생이랑 친구를 초대해서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되었어요."
"어릴 때 ○○○ 만화가가 그린 학습 만화를 보았는데, 거기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저는 여기저기서 들었어요. 부모님에게도 듣고, 책에서도 보았고, TV에서도 보았어요."
"여기저기서 전태일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맨 처음 어디서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전태일에 대해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을 물어보았다. 대부분 3학년들과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두 명 정도는 조금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괜한 일을 하신 것 같아요."
"왜?"
"자기 목숨을 던져가며 한 일인데, 우리나라가 달라진 게 없잖아요. 지금 세상을 보시면 많이 슬퍼하실 것 같아요."

아이들은 전태일이 귀한 목숨을 던져가며 항거했지만, 이 사회가 원하는 만큼 달라지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하나의 역사'가 된 전태일

다양한 학생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게 공산주의는, 어떤 이에게는 멸절시켜야 마땅할 절대 악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평생을 바쳐 지향해 나가는 신념이었다. 어느 쪽이 되었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이 뒤섞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어 열정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었던 반면, 결코 대상을 객관화 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있어 공산주의는 갈등론적 시각, 저항적 시각, 혁명적 시각을 제공해주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하나의 사상에 불과했다. 교양의 차원에서 공산주의를 교과서로 배운 우리는, 윗세대들의 피를 토할 듯한 절절함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학생들에게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고 노동운동을 한 이들에게 전태일은 가슴 속에 고이 품은, 너무 소중해 꼭꼭 숨겨두었던, 신념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10대인 나의 학생들에게 전태일은 교과서, 수행평가, 학습만화 등에서 배운 하나의 역사일 뿐이었다.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나쁜 일처럼 보이진 않는다.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아무리 절실했던 이름도 그 세대를 벗어나면 피 끓는 울림이 희미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시대와는 달리 당당하게 수행평가 속에서, 교과서와 수업시간 속에서 그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그가 역사가 되었기에 많은 이가 그의 인생과 당시의 열악했던 노동 현실을 배우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야 겠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지난 지금, 10대 청소년들에게 전태일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역사가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속 전태일
근현대사 교과서 현대사 부분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항목 중 사회 부분에 '노동 운동'이라는 소단원이 있다.

이 소단원에서 교과서는 노동자들이 "경제 발전의 큰 힘이 되었다"[금성출판사 (이하 금성)], "고도 성장의 주역이 되었다"[중앙교육진흥연구소 (이하 중앙)] 라고 기술하고 있고,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렸다는 사실도 서술하고 있다.

'노동 운동' 소단원은 약 두 페이지에 걸쳐 산업화 시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상황, 현재까지 진행된 노동 운동의 전개 과정 등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전태일은 바로 이 소단원 속에 등장한다.

중앙 교과서는 전태일과 관련해 "이러한 정부 정책에 항의하여 1970년 11월, 서울 평화 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분신자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1970년대 노동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학생들과 지식인들도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비교적 간단하게 서술하였다. 금성 교과서는 페이지 하단에 학습자료 형태로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전태일의 행적과 그가 쓴 글을 조금 길고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교과서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근현대사 교과서는 전태일을 산업화 시대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노동 문제에 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노동계의 각성을 일으킨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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