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 도움 받아야 되고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겠지만 그것만으로 기업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니까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 9월 8일 중소기업과의 간담회"중소기업에서 일하면 하나에서 열까지 다 배울 수 있고 일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어 성공의 확률도 높다." - 10월 27일 74차 국민경제대책회의"대기업이 스스로 상생문화, 기업윤리를 갖추고 시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10월 29일 비상경제대책회의최근 한두 달 새 이명박 대통령이 대-중소기업인들과 청년들을 향해 타이르듯 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나라의 기업 생태계를 바꾸는 일은 마치 노점상 없는 '보기 좋은' 거리를 만드는 일처럼 큰 국제행사를 한두 달 앞두고 밀어붙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닐뿐더러, 기업인들과 청년 구직자들을 타이른다고 달라질 문제도 아니다.
게다가 대기업의 불공정한 납품단가 관행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오히려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므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상한 논리로 피해가니 더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흔히 중소기업의 천국으로 대만을 꼽는다. 한국과 홍콩, 싱가포르 등과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리며 1950년대 이후 50여 년간 연평균 8% 안팎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한 대만. 외환위기의 파고가 동아시아를 휩쓴 1997년에도 4% 안팎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나라다.
2000년대 초반에는 대지진(1999.9)의 여파와 세계 IT산업의 위축으로 산업화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2001)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반등에 성공한 데 이어 최근에는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 강화로 이른바 '차이완(Chiwan)'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만은 2010년 1분기에 수출이 무려 42.1% 증가한 데 힘입어 13.2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31년 만에 분기 최고 성장을 이뤄내기도 했다.
대체 대만 경제는 어떤 성장 경로를 밟아왔기에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를 일굴 수 있었으며, 이처럼 흔들림 없이 고속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대만 경제의 태동기에 중소기업은 어떻게 성장했나
대만 경제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기 위해서는 대만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대만의 경제 구조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평탄치 않았던 이 나라의 역사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945~49년 일본의 패망에서 중화민국 건국으로 이어지는 대만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 A City Of Sadness, 1989)>에는 대만의 지식인들이 모여 "어차피 우리는 노예들일 뿐"이라며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당시 대만 본성인(원주민)들과 중국 본토 국민당 정부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50년간의 식민 지배 끝에 다시 맞닥뜨린 본토의 지배가 대만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1949년 이후에는 내전에서 패한 뒤 대륙에서 대만으로 대거 이주한 중국인(외성인)들과 본성인 사이의 갈등이 더해지게 된다.
중국 본토의 국민당 정부와 대만의 본성인, 또 내전에서의 패배 뒤 대만으로 넘어와 함께 살게 된 외성인과 본성인 사이의 이러한 뿌리 깊은 갈등은 대만 경제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른바 '공사(公私) 이중구조'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공사 이중구조란, 대만의 경제 구조가 비대한 국·공영 부문과 왜소한 민영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가리키는 용어다. 대만 정부는 한국과 달리 일본으로부터 몰수한 적산, 특히 기업들을 민간에 넘기지 않고 대부분 국유화했는데 그 배경에는 본성인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는 것을 경계한 국민당 정부의 배제 전략이 숨어있었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제지, 시멘트, 농림, 광업 등 4개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가가 장악한 뒤 1980년대까지 다양한 형태(국영, 성영, 시영, 군영, 당영, 퇴역군인회 사업 등)로 운영해왔다. 철강, 석유, 조선 등의 기간산업과 금융, 언론 등 핵심 서비스 산업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망라했으며, 그 결과 국·공영 기업이 대만 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대 초반 60%에 달했다. 특히, 금융 부문의 경우는 국·공영 금융기관의 비중이 무려 86%(1988~89년, 자기자본 기준)에 달할 정도로 비대했다. 대만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당국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다.
이처럼 국민당 정부가 처음부터 국·공영 기업 중심의 산업 정책을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간 부문에서 자본의 지나친 집중을 차단할 수 있었고, 이는 곧 중소기업들이 자유롭게 만들어지고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는 광활한 대지가 돼주었다. 국·공영 부문이 비대하게 커지긴 했지만 적어도 그 밖의 영역에서는 비슷한 규모의 민간 자본끼리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덧붙이자면 거대한 국·공영 부문이 이미 내수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정부의 정책 지원이나 대기업의 협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 생존의 방식을 터득해나갔다.
또한 대만 인구의 약 85%를 차지하는 본성인의 상인근성도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던 중요한 요인이다. 이는 오늘날 이야기하는 창업정신, 또는 기업가정신과 맞닿아있는 사상 문화적 전통이다. 대만 본성인의 대부분은 명나라 말기에 중국 본토의 복건성·광동성(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보고 있는 지역) 일대에서 건너온 한족으로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상인정신이 강해 동남아 일대의 경제권을 장악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경향은 농촌 지역의 활발한 창업 흐름에서도 드러난다. 1960년대 대만 전체 농가 가운데 경업농의 비중은 이미 절반이 넘는 52.4%에 달했으며, 1970년대에는 대만 공장의 60%, 생산총액의 44%, 종업원 수의 48%가 농촌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다.
결국 대만 경제의 태동기에 이미 많은 중소기업이 존재했거나 새롭게 만들어졌고, 이들은 국가의 '관심' 밖에서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가운데 스스로 수출이라는 길을 개척하며 지난 수십년 간 대만 경제와 함께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IT·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한 대만 정부의 노력
지금부터는 대만 정부가 중소기업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대만의 IT·반도체 산업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대만의 IT·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 이후 대만 경제를 이끌고 있는 핵심 산업이자 대만 정부가 그동안의 이른바 '온화한 산업 정책'을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개입에 나선 분야로 손꼽힌다.
대만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만 정부는 1973년 공업기술조사연구원(ITRI, Industrial Technology Research Institute)을 설립해 전자통신 부문에 대한 연구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곧 이어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ITRI 산하에 EROS(Electronics Research Service Organization)를 설립한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라는 민간 대기업이 한국반도체를 인수(1974)하며 반도체 산업에 발을 담그기 시작하던 때였다.
미국에 기술 인력을 파견하는 등 몇 년 간의 노력 끝에 EROS가 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인 웨이퍼(wafer) 시험생산에 성공하자 대만 정부는 민간 기업을 키우기 위해 두 가지 정책을 편다.
첨단산업단지를 건설해 조세 감면, 수출보조금 및 연구개발비 지원책 등을 내놓으며 민간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ITRI가 44%를 투자하고 민간의 투자를 끌어들여 UMC라는 회사를 창업한 것이다. EROS는 UMC에 180명의 기술인력과 4K DRAM 기술은 물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파일럿 설비까지를 모두 이전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10여 년 뒤인 1987년 대만 정부는 다시 메모리 부문에 진출하기 위해 필립스를 비롯한 민간 기업들을 모아 TSMC를 설립했다. 현재 UMC와 TSMC는 모두 반도체 파운드리(제조)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업체로 성장했다.
이처럼 대만 정부는 후발 주자이자, 대규모 자본력을 가진 민간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R&D 투자에 나서 상품 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인력을 확보한 뒤 이를 민간에 넘겨주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첨단산업단지와 같은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었다. 대만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창립한 지 37년이 된 ITRI는 현재 1만 개의 특허를 보유했으며 매년 700여 개의 특허를 민간에게 제공하며 새로운 상품 개발과 창업을 돕고 있다.
또한 대만 정부는 2002~2006년에 '이조쌍성'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2006년까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1조 대만달러(한화 30조 원) 규모로 키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련 기업으로 지정된 업체에 대해 R&D 예산의 50%를 지원하는가 하면, 5년간 법인세를 면제하는 등 파격적 조건을 내세웠다.
2001년에는 섬 전체를 'Green Silicon Island', 즉 거대한 '실리콘 밸리'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담긴 '비전 2008 : 국가발전중점계획'을 발표했다. 실제로 대만 정부는 이미 1980년대부터 타이완 최대의 첨단 공업단지인 '신주공업단지'를 비롯해 북부·중부·남부에 대규모 산업과학단지를 조성하고 반도체, 항공, 정밀기계, 광전자 등의 분야에 대한 연구와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대만 중소기업의 독특한 분업·
협력 구조대만의 IT·반도체 산업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또 있다. 바로 중소기업들 사이의 분업과 협력 구조다. 반도체 공정은 보통 설계 → 제조 → 패키징 → 테스트 등의 네 단계를 밟게 되는데, 대만에서는 이 네 분야를 서로 다른 기업들이 맡아서 처리한다. 가령, 설계 공정을 가리키는 팹리스(fabless, 공장이 없다는 뜻) 업체의 대표 주자는 MediaTek으로, 세계 최고의 팹리스 업체 25개 가운데 6개가 대만 기업이다. 제조 공정을 가리키는 파운드리(foundry) 분야는 앞서 소개했듯 세계 1, 2위가 모두 대만 업체다. 특히 TSMC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무려 68%에 달한다. 패키징과 테스트 공정 역시 대만이 세계 시장정유율 47%와 68%로 모두 세계 1위다.
각 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업체 간의 철저한 분업 구조는 어떤 의미에서는 단단한 협력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세계 최대의 패키징 업체로 꼽히는 ASE는 제조 분야에서 먼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TSMC 등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통해 성장했다. 이에 대해 산은경제연구소의 보고서 <대만 반도체 산업 현황>(2008)은 "대만은 종합반도체 업체보다는 팹리스·파운드리 업체가 발달하면서 전문적인 패키징·테스트 업체가 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힘의 논리에 따른 하청 관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대만 기업들 사이의 이러한 협력 구조가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이는 대만의 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중요한 '공존의 법칙'이다.
대만의 기업 생태계가 힘의 논리보다는 공존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앞서 소개한 세계적인 두 회사인 UMC와 MediaTek은 하나의 회사였다가 1997년에 설계 분야를 담당하던 MediaTek이 떨어져 나와 독립한 경우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UMC가 가진 MediaTek의 지분이 1.5%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만의 기업들은 서로 협력할 뿐 지배하지 않는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투자, 분업, 협력'... 대만의 성공 신화가 주는 시사점최근 대만에도 '기업집단'이라 불리는 계열화된 기업군들이 늘면서 중소기업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는 하다. 대만의 경제 구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 두 나라가 산업화라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날아오르기까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1998년, 한국의 10대 대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3.5%에 달하던 시절, 대만은 그 1/3에도 못 미치는 19.6%였다는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대-중소기업의 상생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지도 벌써 몇 달이 흘렀다. 따지고 보면 이미 수십 년도 더 된 화두이기도 하다. 적어도 박정희 정부 이후에는 중소기업에 관심을 두지 않은 정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중소기업들의 설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 한 사람의 젊은 시절 무용담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인식의 한계,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줄 대안 모델이다.
정리하면, 대만 중소기업의 성공 신화 뒤에는 중소기업들이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는 공정한 경쟁 구도, R&D와 인력·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아낌없는 투자, 그리고 기업들 간의 수평적 분업·협력 구조 등의 세 가지 요소가 버티고 있었다. 여전히 중소기업들을 향해 혁신과 글로벌화를 주문하며 더한 경쟁력을 갖추기만을 다그치는 한국의 현실에서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대목이다. 정부는 좋은 중소기업이 좋은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업 생태계가 좋은 중소기업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참고>- 국민호, 「한국, 대만, 일본의 산업정책과 경제발전에 대한 연구」- 김준, 「대만 경제의 특성과 장개석ㆍ장경국」- 오동윤(2001), 「대만 경제 침체와 시사점」- 윤상우(2003), 「대만 경제성장모델의 신화」- 이윤찬, '세계 휩쓰는 대만 IT의 경쟁력은'(이코노미스트, 2010.6.22)- 임성학, 「한국, 대만의 경제발전과 전통사상」- 윤상우(2004), 「중국ㆍ대만의 경제통합과 대만 성장모델」- 정명기(2002.4), 「대만 산업 정책에 관한 연구」- 홍지승(2003), 「대만의 신산업정책과 시사점」 덧붙이는 글 | 새사연http://saesayon.org에 원문 보고서가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