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2010년 4월 14일~6월 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의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내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기자 말

어머님,
배낭여행을 하면서 생기는 욕심 가운데 하나가, 그 나라의 유명한 음식을 먹어야지, 비싼 호텔에서 하룻밤을 여유롭게 머물러야지라는 것 보다, 남이 가보지 못한 길이나 오지 속으로 길을 찾아 들고 싶다는 오기입니다. 길눈이 밝은 것도 아니고, 영어가 물처럼 흘러나오지도 않으면서 내 안에서 자라는 영웅심인지 순수한 사람에 대한 동경인지, 애써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은 채 그네들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그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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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트남에서 라오스로 들어오는 길은 아래로 갈수록 길이 쉬어지는 반면에 북쪽을 잇는 국경은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으며, 교통편 또한 좋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깊은 산골이기에 아흔 아홉 굽이 길을 돌아가야 하며, 바가지 버스와 한판 각오도 해야 합니다.

행여나 산적이라도 길 위에서 마주치게 되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도 목숨만은 구걸해야 하는 길이지만 전, 어렵다는 그 길을 재미 삼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베트남 하노이 역에서 동하( Vietnam-Dong Ha)로 가는 기차표를 끊으려 했는데, 표가 없다 하여 처음 마음 먹었던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잇는 국경을 택했습니다. 한 가닥 희망을 역에서 구하지 못하고, 호암낌으로 들어와 지도만 보고 있습니다.

지도에 그어진 굵은 선을 따라 가니 마이쩌우로 이어지기에, 그 금을 따라 가려합니다. 하노이에서 두세 시간 걸려 마이쩌우에 와서, 행여나 버스가 있냐고 여쭈어 보니, 이 길은 버스가 다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토바이 아저씨가 버스가 다니는 곳 까지 태워다 줄 수 있으며, 두어 시간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분과 다음날 이른 아침으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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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약속 시간에 어제 저를 태워주신 아버님이 아닌, 아드님이 6시에 왔습니다. 저는 그 분의 뒷자리에 앉아 북베트남의 오지를 달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홀로 간다고 좋아라 할 터인데, 국경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해, 앞만 보고 있습니다.

너무나 길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마이쩌우에서 두어 시간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따랐습니다. 기사분은 다시 저를 버스에 태워 주시고, 버스 차장에게 라오스 간다고 들려줍니다. 버스를 타고 10여 분 달리니, 버스 차장은 삼거리에서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며, 저를 내려놓고 다른 길로 갑니다.

저는 삼거리에 내려 마을사람에게 버스를 물어보니, '모두 없다'하기에 무작정 걷기 시작합니다. 분명 마이쩌우의 오토바이 아저씨나 조금 전의 버스 차장은 '버스가 있다'라고 제게 들려주었는데, 이 마을의 아저씨는 모두 '없다'합니다. 전 '길을 걷다가 스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있다면 손을 들지 뭐'라며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길을 5분 채 가지 않아 외딴집에서 꼬맹이가 나오기에, 가던 길을 주저없이 멈추고서는 풍선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줍니다. 젊은 어머니는-나 보다 나이가 어린 듯-이 낯선 손님에게 전혀 어색함이 없으며, 아기는 해맑게 웃어줍니다. 저는 잠깐 동안이지만 아이랑 재미나게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나한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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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있으면,
어떤 날은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는 날이 있다.
꼭 오늘처럼.
베트남, 라오스 북부를 잇는 국경은 알고 있는데
가는 길에 대한 정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어제는 하노이에서 탄호아로 가지 않고, 마이쩌우로 올라왔고,
오늘 아침은 1시간 30여 분, 버스가 없다 길래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 버스가 언제쯤 내 앞을 스쳐 지나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바람은 오늘 라오스로 들고 싶다는 것.

길 위에 있으면,
어떤 날은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는 날이 있다.
꼭 오늘처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 5월 23일, 베트남 북부/라오스국경 100여 km를 놔두고

누나한테 편지를 쓰고, 아이랑 놀고 있으니, 버스가 달려옵니다. 이 동내 아저씨가 30분도 안 갈 거짓말을 내게 흘려놓았습니다. 저는 낯선 길 위에서 친구라도 만난 듯, 홀로 떠 있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큰 배를 만난 듯, 어린이 마냥 버스를 불러 세웁니다. 하지만 버스는 산길을 신나게 한 시간 여를 달린 다음 다시 어느 마을 앞에 멈춰서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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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마이쩌우에서 오토바이로 한 번, 버스로 10여분 그리고 이제 한 시간. 다시 버스가 끊겼습니다. 더 나아가지 않는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무엇을 찾지만 이제는 주머니에는 돈도 없습니다.

너무 더운 날씨에 배낭을 멘 채 걷기가 힘들어 잠시 쉬고 있으니, 아저씨가 25만(d)[동-베트남 화폐 단위: 2010년 6월 현재 1000원=약 9500d]을 주면 국경까지 태워주신다는 데, 제 주머니에는 13만(d)이 있습니다. 아저씨는 20만(d)으로 깎아주셨지만 제 모든 돈을 드려도 안 된다고 합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배낭을 멘 채 다시 걷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걸어가면 새벽 두서너 시에 국경에 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0여 분을 걷고 몇 번이고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돌리기를 반복합니다. 깊은 산 속에 집은 아주 띄엄띄엄 있습니다. 이렇게 두 시간을 걸어 간 다음 '더 이상 못 걷겠다'고 하늘에 악을 쓰며 주저앉아 버리려 하니, 버스가 저만치에 달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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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헌데 나 보다 더 반가워하시는 분이, 버스 기사분 입니다. 커다란 덩치에 똘맹이(베트남 버스에는 버스 기사와 함께 사춘기를 갓 지난 소년들이 차장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를 데리고 내린 기사는 내게, 아주 힘 있게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30만(d)이라는 믿지 못할 버스값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냥 오르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는 나 보다 먼저 버스 문 앞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으며, 덩치는 저의 두 배 이상입니다.

내가 돈이 없다고 하니깐 똘맹이를 데리고 다시 버스에 올라, 나를 내버려 두고 갈 모양새입니다. 그는 다시 한 번 내게 흥정을 요구하는데, 예의 25만(d)입니다. 북베트남 국경을 달리는 이 버스 기사는 무례하면서 그 무례함에 어떠한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행여나 버스가 가 버릴까 조바심 나는 것은 저입니다.

저는 지갑을 보여주며 전 재산(베트남 동)을 내어줍니다. 미화는 꼭꼭 숨겨 두었습니다. 그는 그제야 웃으면서 버스에 오르라 하고, 저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신 깜은'(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길 위에서 길을 잃어 버렸고, 언제 국경까지 닿을지 막연하게 느껴지기만 했는데, 이렇게 버스에 앉아 있으니 지난 걸음과 시간이 저 너머에서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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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버스가 없다 했는데 버스가 오면, 싱글벙글 웃으며 '이래서 여행은 재미있다니깐'하다가도, 다시 버스에 내려서 걷게 되면 '과연 내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사히 내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다시 길 위에서 지치다 버스를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인생아 사랑한다'라고. 하루에 서 너 번의 청룡열차를 타고 질주하는 듯 합니다. 국경 정문 앞에서 버스는 멈춰 섰습니다. 저는 그 바가지 기사꾼에게 몇 번이고 인사를 건넸고, 그도 '잘 가라'하며 배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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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믿지 못할 북베트남을 뒤로하고, '다시 올 것이냐'는 국경 경비원의 물음에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고 라오스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2010. 05. 23 북베트남 국경 -남쏘이(Nam Xoi)에서

* 베트남은 15일 동안, 라오스는 한 달 동안 무비자 입국이 가능합니다.
* 사진은 2008. 05월 남베트남 메콩델타의 풍경입니다.
-메콩델타를 통해 캄보디아로 입국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