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멈췄다... 필요한 건 '고무풍선' 하나

[어머님에게 부치는 편지11] 쌈느아, 라오스에는 라오스의 시간이 흐른다

10.11.19 10:28l최종 업데이트 10.11.19 10:28l

이 여행기는 2010년 4월 14일~6월 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女人)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네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기자말>

어머님,

꼭 하루 전에, 저는 씨앙쿠앙(XIENG KHUANG)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녁 8시 30여 분이 지나는 시각, 사위는 풀벌레 소리뿐이고 100여 미터 앞에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맥주 한 병과 어제와 오늘의 일을 불러와서 제 벗인 양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머님, 여행을 하면서 그날그날 일기를 적으며, 낯선 일상을 꾹 눌러쓰는 행위가 지루하면서도 재미난 것은 낯선 일상의 변화가 늘 새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루하루에 큰 변화가 없는 어제의 오늘인 나라가 있으며, 길을 걸으면서도 눈인사,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는 제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곳이 있는데 아마 이 나라, 라오스가 아닐까 합니다.

어머님,

라오스에 15일 무비자 입국 도장을 받고 들어서는 순간 보인 나메우(Na Maew)라는 국경 마을에는 가게 서 너 채가 전부입니다. 생태우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 마을 뒤편에 있겠지'라며 20kg의 배낭을 메고 뜨거운 햇살 아래를, 깊은 산을 헤매며 나아갑니다. 사람이 다니며, 외국인이 넘나드는데, 설마 마을이나 생태우 정류장이 없을까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걷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건 오직 '배낭의 무게' 입니다.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가 있는 비엥사이(Vieng xai) 마을까지는 약 50여 km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걸어간다면 새벽녘에 도착할 듯 합니다. 두 나라의 깊은 산속을 걸으며 버스를 놓았다 잡았다를 반복하다, 저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걷고 있습니다. 이 걸음걸이가 결국에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리라 생각하지만, 빈집 기둥에 놓인 자전거에 눈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길을 나섭니다.

어머님,

집을 나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여행이 여행으로 다가왔고' '거리의 풍경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하루 종일 배를 굶으며, 길을 걸으며, 제 배낭의 무게로 제 삶을 가늠합니다. 배낭 여행객은 머무르고 떠나기를 반복하기에 무엇을 더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머무르고 떠남의 반복을 통해, 진정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때때로 진지하게 묻곤 합니다.

지금처럼 배도 고프면서 배낭이 무거워지거나 하루 종일 무작정 걷게 되는 날에는, 내 배낭에서 쓸모없는 것을 하나 둘 불러내어 비워내는 생각을 가집니다. 오래도록 20kg 배낭을 멘 채 걸어보면, 크게 필요한 것이 없으며 걸음이 오래될수록 배낭의 무게가 가벼워지곤 합니다.

어머님,

제 배낭여행이 내 삶과 크게 닮아있다는 억측을 가져봅니다. 만약에 제가 지구별에 내려 온 여행자라면, 전 쓸모없는 것에 대해 크게 집착하기보다 비워내는 습관을 길들여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낯선 길을 오래 걷다 보니 진정 내게 필요한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머님,

산 속 깊은 곳에서, 버스를 찾지 못한 채 배낭을 메고 걸으며, 거창한 인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제가 진정 바라는 것은 '버스 한 대'입니다. 이렇게 한 시간을 넘게 걸어가니, 개울에서 목욕하고 나오는 꼬맹이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제 일용할 양식(비스킷)을 길거리에서 먹으며 오다, 어린아이게 모두 건네줍니다. 진정 배고픈 사람은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깊은 산골을 걷고 있는 배낭객인데……. 문득 신문 기사에 이런 이야기가 실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북라오스(North-Laos) 산골에서 배낭여행자 죽음 발견'

-배낭 안에서 미화 1.000달러 보유'

제 호주머니에는 아직 환전을 하지 못하여 100달러 지폐만 들어있습니다. 시골 산골에서 100달러의 의미는 밥 한 끼 보다 못한 듯 합니다. 새벽녘에는 마을에 닿기를 바라며 무조건 걸으며, 열두 번 쉬어 가고 있으려니, 저 만치에 다시 버스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북베트남 탄호아(Thanh Hoa) - 북라오스 쌈느아(Sam Neua)'

어머님,

반가운 마음과 함께 허탈한 마음이 제 배낭 안으로 쏙 뛰어 들어옵니다. 탄호아는 하노이에서 무수히 버스가 다니며, 4시간 밖에 떨어지지 않은 도시입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닌빈 땀꼭(Ninh Binh, Tam Coc)'에 가려다 너무 내려가서 다시 올라온 동네이기도 합니다.

버스에 올라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탄호아에서 이 버스를 타고 왔더라면. '단 번에', '아주 편안하게' 국경을 건널 수가 있었을 텐데……. 오전에 겪었던 일들이 더운 여름날 뭉개구름처럼 피어오릅니다. '배낭의 무게가 삶의 무게'라는 말이 갑작스레 유치해집니다. 그저 이렇게 쉬이 갈 수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헛웃음만 입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버스 기사가 물과 베트남 초코파이를 건네주기에, 밥이라 생각하며 허급지급 먹습니다. 그리고 여유롭게 두 발을 올려놓고, 몸은 의자에 편안하게 기댄 체 북라오스의 풍경을 창문 너머로 바라봅니다.

어머님,

오후 5시가 너머, 베트남 탄호아에서 달려오는 국제 버스를 보았고, 전 다시 그 버스에 바가지를 쓴 채 올라, 비엥사이를 건너 쌈느아라는 마을에 닿았습니다. 저녁 7시 즈음, 하루 동안, 약 250여 km를 움직이면서, 수없이 길을 찾고 헤매며, 그곳에 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었고, 나에게 '갈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으며, 제가 지쳐서 더 이상 걷지 못 할 때 몇 번이고 버스가 나타나 저를 태워주었습니다.

쌈느아에 저녁 늦게 잠자리를 구한 다음, 아주 조그마한 강변 시장을 둘러보고, 하루를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다시, 씨앙쿠앙 폰사완(Phonsavan)에 들었습니다.

어머님,

저는 간간히 그곳이 얼마나 깊은 곳인지, 떠나고서 느끼게 되는데, 쌈느아라는 마을 역시 그렇습니다. 9시간 산길을 굽이굽이 백만 번 돌아서 버스는 달려오는데, 사위가 산입니다. 저 너머에 산마루가 걸쳐져 있으며, 길옆에는 야자수 나뭇잎으로 지붕을 엮은 나무집이 띄엄띄엄 있고 사람들은 고래(古來)적 부터의 삶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버스는 잘 다니다 어느 고갯길에서 멈춰서 버립니다.

냉각수 호수가 터졌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버스가 멈춰서면 숲으로 자연스레 들어갑니다. 버스 기사는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면, 항상 길 옆에 버스를 세우곤 하십니다. 아저씨는 내 배낭에서 고무풍선을 꺼내, 터진 호수를 '꽉' 묶고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달립니다. 라오스의 버스를 탄다면, 마음을 느긋하게 하시고, 고무풍선을 한 뭉치 가지고 타야 할 듯 합니다.

어머님,

라오스는 그런가 봅니다. 라오스의 로컬버스를 타면 라오의 삶이 느껴지고, 창밖으로는 라오의 삶이 그림처럼 놓여져 있습니다. 저녁 늦게 다시 폰사완 버스 터미널에 들었고, 여기에 있는 숙소에 잠자리를 구합니다.

어머님,

씨앙쿠앙, 폰사완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의한 폭탄(미사일)이 불발탄으로 아직도 수거되지 않은 채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렇기에 길을 함부로 벗어나는 건 지뢰밭을 걷는 행위가 된답니다. 여행 안내소에는 이를 경고라도 하 듯, 미사일을 담벼락 아래에 진열해 놓았는데, 제 눈에는 고철 같기만 합니다. 낯선 이에게 전쟁은 옛이야기 같지만 이곳에서는 상처입니다.

툭툭에 올라타, 10여 분 채 못 가면 스무 개 정도 발견 된 항아리 무덤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지고 가까운 곳에 닿습니다. 뚱딴지같은 항아리는 믿지 못할 전설을 간직한 채 언덕에 누워있습니다. 누구는 무덤이었다 하고, 누구는 전쟁을 치렀는데, 성전을 하여 항아리에 술을 받아먹었다곤 합니다.

항아리 무덤을 보고서는 시장에 들러 밥 한 끼를 챙겨 먹습니다. 여행 안내소에 들러 우체국을 물어보고 – 바로 옆집이 우체국인데 오늘은 문을 닿아 놓았습니다. 저는 중심가로 나와 툭툭 기사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항아리 무덤을 찾아갑니다. 어쩜 폰사완에 오는 이유가 지뢰에 대한 탐구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항아리 무덤을 만나기 위함일는지 모릅니다.

저녁에는 사위가 어두워진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며 라오 맥주를 마시며 지난 시간을 음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