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사들의 민주노동당 관련 정치활동 혐의에 대한 재판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속개된 공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은 제출 자료의 증거 문제, 당원 여부 문제, 당원 명부 문제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날 재판에서 시국선언 사건 관련 압수물에 대한 검찰의 증거신청과 증인 채택은 법원에 의해 기각됐고, 당원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대부분이 시효 3년이 경과하여 면소 대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로서는 유죄 선고를 끌어낼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쟁점①] 시국선언 압수 자료와 투표 사이트 기록, 증거 능력 있나?
가장 먼저 쟁점이 된 것은 검찰이 증거 자료로 제출한 시국선언 압수수색에서 가져간 자료와 민주노동당 투표 사이트 검증 기록의 증거능력 여부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홍승면 부장판사)는 "압수수색영장은 압수대상물을 시국선언에 관련된 것으로 제한했다"면서 "그런데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자료는 시국선언 재판에서도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고, 10년 전 회의 자료까지 포함되어 있는 등 영장이 허락한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증거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홍 판사는 영장전담판사 출신으로 압수수색의 요건을 법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애초 경찰은 시국선언에 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전교조 측이 복사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용량이 너무 많다" "장비가 없다" "전기가 나갔다" 등의 이유로 서버를 통째로 떼어 갔고, 시국선언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10년 전 자료까지 모조리 복사해 간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로서는 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것까지 압수수색을 하고 그것을 재판에 증거로 제출했다가 법원에서 망신을 당한 것이다.
또 하나 증거 능력 존재 여부로 논란을 빚은 민주노동당 투표 사이트 접속 기록에 대한 판단에서는 이를 증거로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서버의 실질적인 운영 당사자인 민주노동당 측에 영장을 제시하지 않고 KT 측에만 제시한 것은 맞지만, 형사소송법 상 검증 영장을 어디에 제시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경찰이 불법 저질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투표사이트 검증 기록을 증거자료로 인정했다.
[쟁점②] 돈의 성격... 당비인가, 후원회비인가?기소된 교사들도 매달 1만 원 또는 5000원씩 돈을 냈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가장 큰 쟁점은 돈의 성격 즉, 이들이 당원인가, 아니면 후원회원(후원당원)인가 하는 점이었다. 재판부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당원 명부를 검증하고자 했으나 민주노동당은 당원 명부에 기소된 모든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당 서버에 입력하여 "해당없음"이라고 조회한 결과를 출력물로 인쇄하여 현재 당원 명단에 이들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민주노동당은 이에 대해 2008년 9월, 정치자금법에서 정당후원회가 폐지된 후 후원회원이었던 이들 교사나 공무원들의 자료를 모두 삭제해 정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분명히 현재도 별도의 서버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당원 명부가 들어있는 서버를 검증할 것을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원명부 확인을 위한 당사 방문 등은 하지 않고, 변호인 측에서 사실확인을 해서 제출하기로 했다.
검찰 측은 당원관리 프로그램에 기소된 교사들의 이름이 있을 것이고, 이 당원관리 프로그램이 사실상 당원 명부이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당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당원 명부는 정당법상 전자문서가 아니라 서류라는 점을 들어 당원관리 프로그램이라는 전자문서 또는 가상공간 자료가 당원 명부가 아니며, 거기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당원임을 증명하지도 못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행법상 교사와 공무원은 당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이 당원이 아니라 당우 또는 후원회원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만 번째 당우로 가입한 2살짜리 김아무개군에 관한 언론보도를 근거로 "그럼 이 2살짜리 어린아이도 당원이고, 형사처벌 받아야 하느냐?"고 되물어 한순간 재판정에 키득키득하는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들이 당원이 아니라 후원회원이었기 때문에 정당법에서 정한 당원 심사를 하지 않았고, 당연히 당원명부에도 없다는 것이 변호인의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동당 투표 사이트 접속 기록도 논란이 됐다. 검찰 측은 이들 중 상당수가 투표 사이트에 로그인되고, 이렇게 접속이 된 것 자체가 당원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투표 사이트는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민주노동당에서 별도로 투표권자로 입력을 한 사람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안내했고, 그 안내를 받은 사람들이 호기심 등으로 무엇인지 확인을 위해 접속을 했다는 것일 뿐이지 투표를 했거나 당원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 투표 사이트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로그인이 되고, 이전 접속 여부는 나타나지만 투표 여부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그 사이트는 투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사이트로 활용됐기 때문에 당원 여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많은 교사들이 민주노동당에 낸 이 돈을 연말에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해 세액공제를 받았고, 일부 학교에서는 이를 장려하기까지 했다. 만약, 이들이 검찰의 주장대로 불법적으로 정당에 가입한 것이라면 과연 이들 교사들이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개적으로 선관위에 신고해 세액공제까지 받을 수 있었고, 행정실에서 이를 장려하기까지 했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당원이냐, 후원회원이냐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오간 가운데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가 이 사건 유무죄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전망이다.
[쟁점③] 당원 가입은 면소, 후원회원은 과태료인데... 처벌 사유 되나?
검찰은 이들이 민주노동당에 돈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최소 후원회원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고, 당에 가입했다면 역시 정당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 사유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 변호인 측은 이런 사실관계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주장을 법정에서 제기했다.
먼저, 변호인 측은 이들은 당원이 아니라 후원회원이라는 점이 명백하다고 주장하면서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이와는 별도로 당원 여부는 형사 처벌을 결정하는 데 아무런 판단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당법이나 국가공무원법은 당원이나 발기인 가입을 처벌 사유로 명시하고 있는데 대법원 판례는 일관되게 "가입죄는 즉시범이고, 즉시범의 시효는 그 행위가 종료된 때로부터 시작된다"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정당 가입에 대한 공소 시효가 3년이므로 검찰이 가입 시기를 특정하지 못하거나 3년을 지난 교사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당원 여부를 따지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원 가입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가입 혐의는 면소가 되어 처벌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하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당일 재판에서 아무런 반론을 펼치지 않았다.
두 번째, 검찰은 교사들이 당원으로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후원회원으로 돈을 낸 것 자체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 사유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변호인 측은 "교사들의 정당후원이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과태료 대상"이라는 점을 논증했다. 이들 대부분이 정당후원회가 합법적으로 존재하던 시기에 후원을 시작했고, 정당후원회가 폐지된 이후에 민주노동당에서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대부분 이들을 정리했고 CMS 이체도 중단됐다는 점이 첫 번째 근거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행 정치자금법 제8조(후원회의 회원)가 후원회를 규정하고 있는데 동법 제51조(과태료의 부과·징수 등)에 의하면, 제8조를 위반하여 "후원회원이 될 수 없는 자를 회원으로 가입하게 하거나 가입한 자"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점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즉, 정당후원회 가입이 당시에는 불법도 아니었으며, 설사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형사처벌 사유가 아니라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벌금은 형사벌이고 과태료는 행정벌로, 그 목적과 부과 기관이 다른 별개의 것이다.
그럼 뭐로 처벌하지? 검찰 무리수로 또 망신당하나
현재 검찰은 민노당에 가입해 당비나 후원금을 낸 혐의로 전교조 소속 교사와 전공노 소속 공무원 272명을 기소해 재판을 진행 중이다. 이들 중 일부 교사들은 벌써 기소됐다는 이유만으로 해임, 정직 등 중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16일 공판을 통해 검찰의 핵심 증거들 중 하나인 시국선언 압수수색 자료들이 증거능력을 상실했다. 새롭게 검찰에서 신청한 2명의 증인 채택도 거부됐고, 민주노동당 서버의 당원 명부에 대한 검증도 물 건너 갔다. 무엇보다도 가입죄가 즉시범이라면 대부분 공소 시효 3년을 도과해 당 가입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를 상실했으며, 후원회 가입은 기껏해야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 대상인 점이 새롭게 드러났다.
검찰은 자신만만하게 300명 가까운 교사와 공무원의 형사 처벌을 공언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중형은커녕 유죄 선고를 받아낼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PD수첩> 무죄와 한명숙 전 총리 무죄, 정연주 KBS 사장 무죄 등으로 이미 망신을 당한 검찰이 이번 전교조 사건마저 무죄가 나오면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에 대한 무리한 표적 수사로 또다시 망신을 사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이유이다.
다음 재판에서 어떤 새로운 사실이 나오고 최종적으로 재판부는 어떤 결정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