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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2010년 4월 14일~6월 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네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기자말

어머님,
라오스, 북라오스에 오면, 내 마음은 루앙프라방에 먼저 달려갑니다. 북라오스의 모든 이야기는 루앙프라방에 머물며, 루앙의 전부는 새벽이 아닐까 합니다.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부처님의 나라. 루앙프라방으로 가기 위해 이른 아침 버스에 오릅니다.

라오스 폰사완(Phonsavan) 초록빛깔 북라오스 산골.
▲ 라오스 폰사완(Phonsavan) 초록빛깔 북라오스 산골.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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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북라오스의 나메우의 국경마을로 든 다음, 쌈느아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하루 종일 달려 우돔싸이를 걷쳐 폰사완에서 뚱딴지 같은 항아리의 무덤을 보았고, 산골과 시내를 보았습니다. 다시 루앙프라방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와 있습니다.

어머님,
편안한 기차 안 보다 거친 바다를 향해하는 배 위나 오늘처럼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저는 홀로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버스 안에서 40여 일 넘게 해온, 세 번째(2007, 2008, 2010) 아시아의 길을 걸으며 내 나라의 아시아를 생각해 봅니다. 제 머리는 버스와 함께 같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님,
라오스는 북부와 남부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남부가 평원이며 메콩강이 깊숙이 발 담그고 있다면 북부는 아시아에서 몇 번째 깊은 산골을 품은 마을일런지 모릅니다. 폰사완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은 산촌오지며, 간간히 산마루 길 옆에 집 몇 채가 나란히 서 있곤 합니다. 어, 저기 코이카(KOICA)도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 갑니다. 여느 집에는 1톤 트럭이 고이 모셔 있으며, 사람들은 한창 바쁘게 일하지 않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벼 수확을 하거나 준비 중이라면 이곳은 간간히 모내기를 하곤 있습니다. 라오스에 신기기를 건네주면 일의 편리를 추구할 것이라 생각한다는 건 큰 오산일런지 모릅니다. 어느 농부가 경운기로 무논을 쟁기질 하지만, 그는 오늘 하루의 일을 하고서는 경운기를 고이 모셔둘지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북라오스에는 중국의 사람과 자본이 많이 내려와 있습니다. 중국이 라오스에 고속도로를 놓아준다는 소문도 제 귀에는 진실처럼 울려 퍼지고 있으며, 윈난의 쿤밍(昆明)이나 징홍(景洪)에서 루앙프라방으로 내려오는 버스 편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단상을 정리하며, 깊은 산골을 헤집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라오스 폰사완(Phonsavan) 뚱딴지 무덤. 항아리 무덤.
▲ 라오스 폰사완(Phonsavan) 뚱딴지 무덤. 항아리 무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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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동남아시아는 그 누구보다 우리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국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으며, 인류가 지향해야 할 세계적 가치에 대한 물음을 함께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祖先)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弘益人間)'는 지고지순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 큰 관심을 두는 이는 우선 중국과 일본입니다. 중국은 몽골, 소비에트 연방, 중앙아시아의 나라들-키르키즈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과 카라코람 하이웨이(KKH)를 이미 장악했거나 고속도로, 철길 등을 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말레이 반도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여 아시아의 강국으로 거듭나려 합니다. 일본은 섬나라에 대한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바다를 통한 길(바닷길, 유럽까지 가능)을 잇기 위해서라도 동남아에 발을 디디려 합니다. 미얀마와 인도를 걷친다면 육로로 유럽까지 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보여지듯 배려심이 없으며, 일본은 2차 대전의 주범이며 전범(戰犯)이면서 과거에 대한 사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동남아시아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다양성과 존엄성을 크게 훼손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내 나라 사람의 정(情)을 들여다봅니다. 차마 안타까움을, 슬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또한 사계절이 있기에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줄 알며,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기에 옛것의 고마움을 아는 이들이라 믿습니다.

라오스 폰사완(Phonsavan)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안은 동네
▲ 라오스 폰사완(Phonsavan)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안은 동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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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저는 내 나라 사람들이 동남아를, 단순히 못사는 이들이 아닌 우리의 가난한 이웃이며, 함께 지구별을, 아시아의 꿈을 꾸는 이들이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에는 한국 기업이 많이 내려갔으며, 라오스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은행이 좋은 이미지를 얻고 있으며, 캄보디아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오곤 합니다. 태국에는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미얀마에 대한 애틋함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내 나라 사람이 아시아에 대한 따스한 애정으로 그네들과 함께 걷는다면, 분명 그네들도 우리의 진정성을 믿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부처님의 나라. 어머님의 나라.
▲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부처님의 나라. 어머님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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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물질과 문명의 발달로 세상이 점점 각박해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과거로 회귀하여 혹은 불편한 물질과 다양한 문화 속에 사는 이들의 모습을 다시 보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
언제나 느끼지만, 제가 배낭여행을 하기 전까지 아시아는 못사는 나라이거나 부정부패로 만 비춰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홀로 걷는 이 길 위의 사람들은 못산다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며 물질이 행복의 절대 기준이 아님을 들려주었습니다. 또한 뉴스에서 비춰지는 부정부패는 시장 한복판에서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서는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제가 만난 사람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였습니다. 제가 함부로 건네는 인사에 화답을 해 주시고, 제 모르는 길을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길 위에서 배웁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내 나라가 잊고 사는 것을.

라오스의 깊은 산골 오지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잠시 생각에 젖어 보았습니다.

어머님,
북라오스의 오래된 도시. 루앙프라방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2010. 05 27 북라오스 산골 버스 안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그 동네의 오후 풍경.
▲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그 동네의 오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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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오래된 도시에서 나를 마주하다.
▲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오래된 도시에서 나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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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루앙프라방#폰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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