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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학생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 아름답지 않습니까?
▲ 고향 울릉도에서의 조그마한 특강 고향 학생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 아름답지 않습니까?
ⓒ 배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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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 외래교수, 농학박사 박상하. 경북대학교 산학협력중심대학육성사업단 팀장, 이것이 박 교수의 직함이다. 70년대 어릴 적, 절친했던 필자의 바로 앞집에 살았고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옛날 그 집이 박 교수의 친가다. 박 교수는 어릴 적 동네후배이자 동네 전쟁놀이의 전우(?)였다.

필자와는 4살 정도 차이가 나지만 어릴 적 몸집도 크고 당시 동네에서는 제법 깡다구가 있어 두세 살 이상의 형들도 쉽게 맞짱(?) 뜨기를 망설였던 당찬 꼬마였다.

그래도 필자에게는 너무 잘해 아침밥을 먹자마다 집에 와서는 "히야~ 놀러가자"며 무척이 잘 따랐던 귀여운 동생이었다. 아침에 만나면 저녁녘이 되어서도 헤어지기가 아쉬워 손을 흔들며 서로의 집에 들어갔던 그런 절친한 사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필자는 울릉도를 떠나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박 교수는 울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주대학교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 갔다는 소문과 함께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박 교수를 보게 된다.

지금의 박 교수와 필자는 예전의 '히야'라는 호칭에서 '형님'으로의 호칭만 바뀐 것 빼고는 변한 것이 없다. 당시의 그 당찼던 꼬마가 운동선수가 아니고, 교수라는 직함으로 재회하게 되었고 울릉도의 학생들을 위해 시간이 날 때면 짬을 내, 고향인 울릉도에 와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준다는 것이 너무 대견스럽고 고맙기만 하다.

박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형님... 어릴 적 울릉도 촌놈이 육지로 전학 왔다고 놀림도 많이 받았잖아요. 별명같이 울릉도, 오징어, 호박엿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자신도 모르게 소리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 말이요. 그래서 울릉도 촌놈이라고 얘기가 나올 때마다 때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정말 공부 열심히 했어요.

고향의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저 아름답기만 합니다
▲ 고향 울릉도에서의 조그마한 특강 고향의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저 아름답기만 합니다
ⓒ 배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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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 울릉도 후배들, 육지에 나가서도 당당하게 중심잡고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줍시다. 얼마 전 육지 모 케이블방송에서 우리 울릉도 출신 선배님인 삼성전자 윤부근 사장님이 강의를 하시는데 첫 마디가 뭔지 아십니까?"

대학생 여러분! 저 울릉도 촌놈이 서울에 와서 정말 죽을힘 다해 열심히 해서 세계에서도 손꼽아주는 최대 굴지의 기업인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 사장이 됐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때 가슴이 뛰는 게 눈물납디다. 형님. 울릉인의 기상을 더 높이도록 노력합시다."

박 교수 그놈 참. 이럴 때는 꼭 형 같네... 오늘 박 교수의 강의에 지금도 가슴이 뜨겁다.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서의, 이런 감흥은 오늘 강의를 같이 들었던 학생들에겐 그 의미가 더 할 것이라 본다. 비록 작지만 박 교수의 고향 학생들을 위한, 아름다운 강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배상용기자는 관광정보사이트<울릉도닷컴>현지운영자이자,울릉군발전연구소 소장입니다*



태그:#울릉중학교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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