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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철(50)이 지난해 봄에 펴낸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문학동네)로 창비가 주는 ‘2010년 제12회 백석문학상’을 받게 됐다
▲ 시인 박철 시인 박철(50)이 지난해 봄에 펴낸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문학동네)로 창비가 주는 ‘2010년 제12회 백석문학상’을 받게 됐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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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밀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는 처음 그게 매년 있는 창비 행사의 참석 여부를 묻는 전화로 알아들었습니다. '다시 한 해가 가고 있구나 / 어림잡으며 / 가겠노라, 가도록 노력해보겠노라'며 대충 끊으려 할 때 그 상이 제게 주어진다는 겁니다. 김성동 선배 식으로 호흡하여 얼라?" - 박철, '백석문학상 수상소감' 몇 토막

"문학의 자존심이 사람의 미래"라고 여기는 50대 들머리에 들어선 시인이 있다. 그는 시에 대해 "말의 계단을 오르다 돌아보면 이젠 낯익은 향기, 그 속에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가, 꽃처럼 아름다운가를 노래하고 싶었다"고 주저 없이 말한다. 이 시인은 "가족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일이지만 오늘도 나는 (시를 쓰기 위해 ) 무릎에 힘을 주어야 하고, 그게 나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 시인이 박철이다. 그는 지난해 봄(3월)에 펴낸 8번째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에서 "한 권의 시집이 아니라 한 권의 시를 묶고 싶었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 말은 곧 아무리 많은 시를 쓰고, 그 시들을 묶은 아무리 많은 시집을 내더라도 뛰어난 시 한 편이면 그만이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시는 그만큼 그에게 절실한 그 무엇(?)이자 희망이다.

글쓴이는 80년대 허리춤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시인 박철을 처음 만났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은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한창 필화사건이 잇따르는 문학작품 속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최루탄을 온몸에 뒤집어쓰며 군사독재정권과 마빡을 들이밀고 싸울 때였다. 

눈만 뜨면 가투에 나가야 하고, 구속문인 석방 등을 요구하는 행사가 줄을 이었던 그때 자주 얼굴을 내비치는 용감한(?) 젊은 문인들이 있었다. 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3규+3철'이라 불렀다. '3규'는 시인 공광규, 이원규, 양문규였고, '3철'은 시인 강형철, 이승철, 박철을 가리키는 닉네임이었다.

그 시인 박철이 6월 항쟁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양대 이데올로기가 사라지자 은근슬쩍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지는가 싶더니,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백석문학상'을 들고 덜컥 문단에 다시 나타났다. "이 상은 어쭙짢은 내가 받을 상이 아니라 더 뛰어난 다른 시인들이 받아야 할 상인데…"라며, 몹시 부끄러워하면서도 겸손한 마음으로 말이다.

그 시인이 쓴 시는 고요하고 쓸쓸하여 따뜻하다 

올 가을엔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눈 내리는 밤길 달려갈 사나이처럼
따뜻하고 맞춤한 악수의 체온을-
무슨 무슨 오피스텔 몇 호가 아니라
어디 어디 원룸 몇 층이 아니라
비 듣는 연립주택 지하 몇 호가 아니라
저 별빛 속에 조금 더 뒤 어둠 속에
허공의 햇살 속에 불멸의 외침 속에
당신의 속삭임 속에 다시 피는 꽃잎 속에
막차의 운전수 등 뒤에 임진강변 초병의 졸음 속에
참중나무 가지 끝에 광장의 입맞춤 속에
피뢰침의 뒷주머니에 등굣길 뽑기장수의 연탄불 속에
나의 작은 책상을 하나 놓아두어야겠다
지우개똥 수북이 주변은 너저분하고
나는 외롭게 긴 글을 한 편 써야겠다
세상의 그늘에 기름을 부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아름다운 가을날 나는 새로운 안식처에서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한번 해야겠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서설이 내리기 전 하나의 방을 마련해야겠다-'불을 지펴야겠다' 모두

시인 도종환은 백석문학상 본심 심사평에서 “박철의 시는 외롭다. 박철의 시는 대로변에 있지 않고 가등 희미한 골목에 있다”고 말한다.
▲ 시인 박철 시인 도종환은 백석문학상 본심 심사평에서 “박철의 시는 외롭다. 박철의 시는 대로변에 있지 않고 가등 희미한 골목에 있다”고 말한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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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철(50)이 지난해 봄에 펴낸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문학동네)로 창비가 주는 '2010년 제12회 백석문학상'을 받게 됐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10월에 제정"되었다. 이 상은 창비가 주관하며, 최근 2년 안에 나온 뛰어난 시집에 주어진다.

출판사 창비는 최근 '창비' 홈피에 있는 '창비뉴스'를 통해 "올해 백석문학상은 지난 10월 29일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선정되었다"며 "이번 백석문학상 예심은 시인 문태준, 진은영이 봤으며, 본심은 문학평론가 백낙청, 황현산, 시인 도종환이 맡았다"고 밝혔다. 상금은 1000만 원이 주어진다.

시인 도종환은 백석문학상 본심 심사평에서 "박철의 시는 외롭다. 박철의 시는 대로변에 있지 않고 가등 희미한 골목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큰 목소리로 앞에 나서지 않고 헛개나무 뒤에 슬며시 숨어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의 시는 가난하고 우수에 가득 차 있다"라며 "그의 시는 치열하지 않다. 모두들 뜨겁게 살기 위해 달려갈 때도 그는 천천히 간다"고 귀띔한다.

도종환은 "그가 불을 이야기해도 그 불은 외로운 불일 뿐이다. 그의 시에는 과장된 목청이나 허풍이 없다"라며 "그의 시에는 순정이 있다. 거짓 없는 솔직함이 있다. 시를 쓰면서 사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순정함이 거기 있다. 요란하면서도 차가운 시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불을 지펴야겠다>에 실린 그의 시들은 고요하고 쓸쓸하여 따뜻하다. 더 외로운 길을 가길 바란다"고 평했다.

시인 박철은 1987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첫 시집 <김포행 막차>를 펴낸 뒤 시집 <새의 全部(전부)> <사랑을 쓰다>를 비롯해 소설집과 어린이를 위한 책 등을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를 펴낸 문학동네는 "궁극적으로 사랑을 추구하는 그의 시편에는 구구절절이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가 묻어난다"고 평했다.

"백석이란 웃어른이 손가락에 볼펜을 끼워 붕대를 감아버렸다"

아빠는 마음이 가난하여 평생 가난하였다
눈이 맑은 아이들아
너희는 마음이 부자니 부자다
엄마도 마음이 따뜻하니 부자다
넷 중에 셋이 부자니
우린 부자다-'반올림-수림이에게' 모두

시인 박철 8번째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를 읽고 있으면 어둑한 늦가을 저녁, 옷깃을 은근슬쩍 파고드는 찬바람에 여기 저기 정처 없이 뒹구는 낙엽처럼 쓸쓸하다. 하지만 그 쓸쓸함 속에서도 불빛이 띄엄띄엄 새어나오는 포장마차에서 허연 김을 뿜어 올리며 나그네들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어묵국물처럼 따뜻함이 번져온다.   

기러기, 골목길, 행주강, 게으름에 대하여, 오래된 연인, 사소한 기억, 얼음과 나, 세시에 흰 눈이 내리네, 우리는 지금 누군가를 웃기고 있을지 모른다, 노을, 걸레, 모래 위의 집, 굴욕에 대해 묻자, 한 식구에 관한 추억, 가난한 날의 행복-큰애 생일에, 종점다방, 신대포구의 그물 푸는 아내, 바람을 가르며 생각한다 등 36편이 그것. 

시인 박철은 19일 기자에게 메일로 보낸 '백석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솔직히 저는 요즘 매우 지친 상태입니다. 불행히 글만 써야 하는 처지가 되어 30여 년을 보내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사위는 적막하고 앞산은 첩첩하며 뒷산은 겹겹이었습니다"라며 "돌아가자니 멀고 나아가자니 아득하여 맥을 놓고 앉아 망연히 먼 산이나 바라보는 시절이었습니다"고 시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그는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이 무망하여 차제에 차라리 절필을 하면 어떨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해보던 차에 백석이란 웃어른이 손가락에 볼펜을 끼워 붕대를 감아버리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고 되뇐다. 이 말은 곧 시를 쓰는 스스로를 다그치는 다짐이자 시인 백석보다 더 뛰어난 시를 쓰기 위해 앞으로 더욱 열심히 시 쓰기에 매달리겠다는 뜻이다.   

그는 "괴로웠지만, 시인으로서 저는 가장 행복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 누군 신동엽을 닮았다고 하고 뒤엔 김수영이 돌아왔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라고 지난 80년대 기억을 더듬는다. 이어 "외모만은 천상 시인이었던 것"이라며 "이제 겉모습이 아닌 속살이, 글 정신에 백석의 이름을 얹혀주니 저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썼다.

그랬다. 지난 80년대 허리춤께부터 우리들은 그를 만날 때마다 "시인 신동엽을 빼다 박았다" 혹은 '시인 김수영이 환생한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었다. 그 말들은 아마도 그때 시인 박철이 듣기에는 "너는 어차피 얼굴도 빼다 박았으니 천상 시인 신동엽이나 김수영처럼 뛰어난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압력으로 들렸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외로워지는 것은 생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오늘은 먼 사랑
내 인생은 겨우 강 하나 건너온 것이다
그것도 개구리헤엄조차 잊고 육중한 시멘트 다리를 빠르게 건너왔다
사람들은 오 분이면 건너는 강을 때론 오십 년이 걸려서 지나온다
오늘은 내가 다시 사랑하고 싶은 날
꿈의 불빛을 따라 김포에서 일산으로 이사와 나는 자주 강으로 나간다
물수제비를 뜨며 천둥오리 날고
나의 파랑(波浪)을 아는 안개가 더 큰 한숨을 쉬노니
안개의 흐린 눈빛은 다만 난세 탓이고
내가 점점 외로워지는 것은 그래도 생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행주강' 몇 토막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이 무망하여 차제에 차라리 절필을 하면 어떨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해보던 차에 백석이란 웃어른이 손가락에 볼펜을 끼워 붕대를 감아버리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 시인 박철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이 무망하여 차제에 차라리 절필을 하면 어떨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해보던 차에 백석이란 웃어른이 손가락에 볼펜을 끼워 붕대를 감아버리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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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철은 옛 김포라 부르는 강서구 개화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시인은 이에 대해 "별다른 명승지도 인물도 없는 들판에서 양천현감을 지낸 겸재가 양천팔경의 하나로 명명해준 서해낙조를 바라보며 어렴풋이 내 인생도 저렇게 붉고 아름답게 타올랐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며 자랐다"고 귀띔한다.

그는 "언제나 끓는 가슴은 있으나 아름답게 타오르지는 못한 것 같다. 이번 (백석문학상 수상)시집은 그렇게 가슴 속으로만 애면글면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 세상의 힘들고 지친 이들을 위해 불을 지펴야겠다는 결의로서 지어낸 참회록(?)"이라고 못 박는다. 이어 "내가 정말 백석의 글귀를 빌어 쓸 만큼 맑고 고결하게 외롭고 높고 쓸쓸한 지 자문할 땐 부끄러움 적지 않다"며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까지 지니고 있다.

그는 "요즘 시대에 크게 돈이 되지 않는 시문학으로 일생을 보낸다는 것은 낭비에 가까우며 시대를 호흡하지 못하는 우매함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라며 "다만 고교시절 문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풍진 세상 난장의 흥을 돋우는 이가 있으면 누군가는 노고를 달래며 뒷정리를 해야 한다고 믿어왔다"라고, 스스로 시를 쓰게 된 뿌리를 더듬었다.

그는 "다소, 때론 지나치게 외롭고 쓸쓸한 제 문학이 함께 울어주고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서는 위안의 손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곡하다"며 "이번 상은 창비가 저를 두 번 시인으로 만들어준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는 곧 그가 창비를 통해 시단에 나왔으며, 창비가 백석문학상을 주면서 더 열심히 쓰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시인 박철은 1960년 서울 김포에서 태어나 1987년 <창비 1987>에 '김포' 외 1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험준한 사랑> <사랑을 쓰다>가 있으며, 소설집으로는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가 있다.

한편,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자로는 황시운(34)이 뽑혔다. 수상작은 '차고 날카로운 달'이며 상금은 3000만 원. 제10회 창비신인시인상은 김재근(43), 제13회 창비신인소설상은 최민석(33), 제17회 창비신인평론상은 윤인로(32)가 받는다. 시상식은 오는 24일(수)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태그:#시인 박철, #백석문학상, #불을 지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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