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부터 (건설노동자) 석면피해자가 급격하게 늘 것으로 예상한다."윤간우 녹색병원 산업의학과장이 11월 17일 광양에서 열린 '광양지역 플랜트건설노동자 건강검진 결과와 그 대책'에서 한 첫 말이다. 그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광양, 여수, 울산 플랜트건설노동자 석면검진을 담당했다. 윤간우 과장은 "진작부터 석면문제가 있었던 영국, 일본, 미국 등에 비춰 우리나라 건설노동자의 석면문제는 너무 소외돼왔다"며 앞으로 드러날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국가·회사 상대로 660억 손배소 중일정기간마다 석면질환 찾기 사업을 하는 일본 건설노동조합의 2008년 조합원 27,252명의 석면검진결과 약 9.7%가 석면 관련 폐이상 소견을 보였다. 동경토건 조합원 역시 2005년 31명, 2007년 68명, 2008년 76명 등 해마다 석면관련 폐질환자 수가 증가추세였다. 노동조합이 석면질환자 발굴과 산재인정 활동을 적극으로 벌인 결과이다.
일본의 건설노동자와 유족 178명은 현재 국가와 46개 건설자재 제조회사를 대상으로 석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국가가 석면의 위험성을 알고도 관리를 소홀하게 했고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위험을 알리지 않고 석면에 노출시켰다는 이유를 물어 손해배상으로 약 660억을 청구한 상태이다. 단 한 명의 피해자를 찾기 힘든 국내 사정과는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그렇다면 한국 건설노동자 석면 피해 실태는 어떨까? 윤간우 과장은 "건설업 노동자의 석면노출 실태 및 관련 질병 발병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옥외사업장으로 분류된 건설현장이 2003년까지 작업환경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 데다 법 개정으로 작업환경측정이 가능해졌지만 석면을 포함한 건설현장 유해물질 노출 기록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윤 과장은 일부 연구에서 건설업 노동자의 석면노출을 간접 추정할 수 있다며 2006년의 건축물 석면 함유 조사(최상준·대구가톨릭대) 결과를 말했다.
"전국 84개 건축물 중 76개(90%)에서 석면이 검출되고, 1870개 시료 중 1% 이상 석면이 검출된 시료가 전체의 29%였다. 시료 중 가스켓과 방진재 석면검출율은 각각 93.4%, 73.0%로 업종 특성상 고열장비를 갖춘 발전설비, 주물사업장, 석유화학 업종에서 석면노출 위험이 더욱 높을 수 있다. 올해 초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여수·광양 역학조사에서도 전체 약 60개 시료 중 15개 시료에서 석면이 검출됐다."
4년 일한 노동자 객담에서 '석면소체' 나와건축물에 광범위하게 쓰인 석면함유 건축자재를 다루고 해체하며 철거하는 일을 맡아온 건설노동자는 짧으면 10년, 길게는 40년의 잠복기를 가진 석면질환의 특성상 이제 '석면피해자'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윤간우 과장이 2009년에 이어 2010년에 조사한 플랜트건설노동자 석면피해 실태 결과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2009년 석면검진을 받은 447명의 건설노동자 중 플랜트건설노동자(289명)는 모든 직종에서 석면 관련 폐질환(25명)이 관찰됐다(표1). 2010년 광양지역 플랜트건설노동자 319명의 석면검진 결과에서도 29명(9.09%)에게서 석면으로 인한 폐 이상이 보였다. 석면존재 여부를 알 수 있는 객담(가래) 검사에서는 13명의 노동자에게서 석면소체가 발견됐다.
기계, 도장, 배관, 보온, 용접, 전기, 배관 등 역시 모든 직종에 걸쳐 분포했다(표2). 윤간우 과장은 "2006년 처음으로 건설업에 종사한 46세의 배관공 객담에서도 석면소체가 나왔다"면서 "객담에 석면소체가 있다는 것은 현재도 석면노출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잇따라 석면 관련 정책을 쏟아냈음에도 건설업 노동자의 석면피해를 우려하는 것은 건설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윤간우 과장은 "단지 건축물을 해체, 제거하는 일부 건설노동자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정부정책으로는 심각하게 드러날 건설노동자의 석면피해를 최소화할 수 없다"면서 이들의 석면질환 예방, 진단, 보상 정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과장은 플랜트건설노동자의 석면피해를 예방하려면 일반 건축물의 석면지도 작성처럼 산단 내 시설에도 석면지도 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규모 산단은 잦은 보수, 정비가 있는 만큼 이 작업에 투입되는 건설노동자는 석면노출 위험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석면을 포함한 유해물질의 건강영향을 파악할 수 없는 수준인 현재의 건설노동자 건강검진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용직, 잦은 현장이동이라는 특성, 정보유출에 따른 고용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체계여야 한다는 것.
한편 윤간우 과장은 "석면피해 건설노동자가 현재처럼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기록으로' 노출여부를 증명하라고 하면 보상받을 노동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동료의 증언이나 근무를 입증할 수 있는 각종 서류나 사진으로도 직업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1년에 X-레이만 5~6번 찍어도 질병 발견 못하는 건강검진 고용노동부 여수지청 이순환 감독관은 산단 사업장 근로감독을 하면서 "법이 지운 책임을 떠나 도의적으로 사업장에 석면지도를 만들라고 요구했고 실제 산단 사업장에서 그렇게 하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산단 특성상, 하수급업체도 원청에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정보를 모르는 법의 한계가 있다"면서 "점검이나 설명회, 간담회 때마다 (사업주에게)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제대로 알고 있게끔 분위기 조성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고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입장은 달랐다.
광양지역에서 플랜트건설노동자로 22년을 일한 노동자는 "발암물질이 현장에 널려 있지만 원청이나 발주처가 안전 책임을 아래(하도급업체)로 넘겨 (실제 안전보건은) 소홀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노동자 "감독관은 현장지도가 잘되고 있다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현장을 보면 지금도 철거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석면에 노출되는지 공지도 안 된 채 일한다"며 노동부가 더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광양에서 노동자 건강검진 결과를 갖고 이렇게 토론회를 한 적이 없었다는 광양시의회 허정화 의원은 "(플랜트건설)노동자들 작업이력과 특검 등을 관리하는 산업보건센터 설립을 위해 노조, 지자체,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함께 노력을 기울이자"고 했다. 플랜트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 차용석 노안국장은 현재의 건강검진 구조에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채용 전 검사로 "1년에 5~6번씩 엑스레이를 찍는 사람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는 신체검사가 올바른가?"라며 "지역에 산업보건센터를 설립해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검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대 산업의학과 이철갑 교수는 "건설노동자의 건강검진은 고용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있다"면서 노동자가 안심하고 건강검진을 받고 채용에도 불이익이 없으려면 노동자 정보를 잘 관리할 수 있는 노조가 운영의 중심이 되는 산업보건센터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토론회 자리에는 포스코 직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환경안전관리팀 소속이라고 밝힌 직원은 "법과 제도에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이런 토론회를 해도 실효성이 없었다"며 "실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하나하나 실행해야 발주처도 자발해서 나갈 것"이라며 법제도 개선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일과 건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